소프트뱅크 이대호(왼쪽)가 3일 메이저리그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안정된 길을 버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고독한 도전을 택했다. 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된 대표팀 훈련에 합류한 이대호(왼쪽)가 김인식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척|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남다른 승부욕…“낮은 연봉도 감수”
높은 경쟁력과 계약 상황도 뒷받침
“결정 주저할 때 아내가 큰 힘 됐다”
이대호(33·소프트뱅크)는 왜 부와 명예가 보장된 안정된 길을 스스로 마다하고, 모든 것이 새롭고 험난할 수밖에 없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했을까. 곧 태어날 둘째, 보장된 거액 연봉, 소프트뱅크의 우승 공신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의외의 결정이다.
이대호는 평소 야구선수로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남다르다. 지향점이 같은 이승엽(삼성)이 마음속으로 인내하고 정상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스타일이라면, 이대호는 훨씬 더 직설적이다. 이대호는 롯데 소속이던 2010년 타격 부문 7관왕에 오르며 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시상식 당일 수상 소감이 남달랐다. 그는 “2006년에 비참한 마음으로 이 자리(MVP 투표 및 시상식)에서 퇴장했다. 상 4개를 갖고도 쓸쓸하게 퇴장한 선수는 나 밖에 없었을 거다. 역대 2번째 타격 3관왕에 올랐지만, 홈런이 30개도 안 됐다. 타점이 100개도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날 이후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시원시원했지만, 섬뜩할 정도로 승부욕이 담긴 말이었다.
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대표팀의 대만 타이중 훈련장. 이승엽이 김현수(두산)에게 “올해 몇 년차지?”라고 물었다. “올해가 8년차입니다”라는 답이 나오자 이승엽은 “한창 좋은 나이다. 열심히 하면 정말 큰 선수가 되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곁에 있던 이대호가 “형님, 현수 나이 때 타점 몇 개나 했습니까?”라고 묻자 이승엽은 “2003년에 144개 했지”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에 이대호는 “우와, 나도 그 때쯤 133타점 했는데. 정말 많이 올렸다고 했는데 형님한테는 안 되네.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오고간 농담 속에서 이대호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이대호는 3일 메이저리그 도전을 발표한 직후 ‘일본 소프트뱅크의 보장된 연봉(5억엔·약 47억원)보다 낮은 액수라도 미국에 가겠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곧장 “연봉이 첫 번째가 아니다. 처음 야구를 했을 때부터 꿈인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루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고 답했다. 스스로 “행복한 야구인”이라고 표현하며 한국과 일본에서의 성공에 큰 자부심을 보여왔지만, 최고 타자가 되고 싶은 승부욕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도전을 택했다는 얘기다.
부산 수영초등학교에서 자신에게 야구를 권했고, 중고교 시절 부산지역 최고의 투·타 라이벌이었던 추신수(텍사스)의 존재도 이대호에게는 항상 건강한 자극제였다. 이대호는 친구 추신수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메이저리그 도전의지를 불태워왔다.
현재 이대호가 갖고 있는 경쟁력과 계약 상황도 과감한 도전을 뒷받침했다. 계약조건 차이로 메이저리그행이 불발될 경우, 소프트뱅크는 두 팔 벌려 이대호를 환영할 전망이다. 소프트뱅크와의 계약은 2016년까지 보장돼 있다. 몇 해 뒤가 될지 모르지만, 선수생활 유종의 미를 장식할 수 있는 친정 롯데도 있다. 여전히 동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친형 이차호 씨와 곧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며 도전을 망설일 때, “가장의 결정을 언제나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한 아내 신효정 씨의 헌신도 든든한 힘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