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북한초소에서 은밀하면서도 즐거운 만남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JSA프러덕션
긴박하게, 코믹하게 ‘관객 녹이는 음악’
이건명·김승대·최명경 절묘한 호흡도
이런 작품을 쓰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천재이거나 적어도 3대가 덕을 쌓은 것은 아닐까. 세 번을 봐도 재미있는 작품은 없지 않지만, 세 번을 보되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애정을 갖게 되는 작품은 흔치 않은 법이다. 뮤지컬의 주인은 ‘음악’이다. 스토리가 엉성한 뮤지컬은 넘어가 줄 수 있어도 음악이 허접한 뮤지컬은 용서받기 어렵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작곡가 맹성연의 음악은 긴박하게, 불안하게, 유연하게, 코믹하게 관객의 귀와 마음을 흔들었다. 멜로디와 리듬, 구성이 절묘하여 음악이 대사처럼 들리는 마술을 부렸다.
● 이건명·김승대·최명경의 연기호흡이 ‘삼각 패스’처럼 척척
작가 이희준의 스토리는 바늘로 긁어도 흠 하나 나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남북군의 ‘몰래 한 우정’과 그 속에 도사린 공포, 중립국 소령 지그 베르사미의 개인사가 얽히고설키며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를 자아낸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은 베르사미 소령과 남한의 김수혁 상병, 북한의 오경필 상등병의 호흡이 삼각 패스하듯 탁탁 맞아 떨어져 줘야 한다. 한 명이라도 느슨해지는 순간 극의 긴장감이 흩어지고 만다.
베르사미 소령 역의 이건명은 초연 때부터 이 역으로 이름을 날려 온 이정열과는 또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이정열이 처절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면 이건명은 공감이 가는 아픔을 꺼냈다. 그래서 좀 더 짠하고 애틋하다. 이런 표현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이건명이 가진 고유의 선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만의 색깔이 잘 묻어나왔다.
김수혁 상병을 맡은 김승대는 장난꾸러기 같다. “제발 군대 가서 철 좀 들어서 와라”하고 부모에게 등 떠밀려 입대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청춘의 모습이다. 김승대는 작품이 거듭될수록 노래가 점점 더 좋아진다. 아직도 ‘더 좋아질’ 공간이 남아 있었다니.
북한군인 오경필 상등병의 최명경의 연기가 참 좋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군인을 그대로 무대에 올려놓은 느낌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해도 동생들을 챙기는 고운 마음 씀씀이를 섬세하게 그렸다. 한 가지 불만(?)은 최명경이 담배(88담배) 피우는 연기를 하도 ‘맛있게’ 하는 바람에 객석에 앉은 금연 결심자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굳이 하나의 흠을 찾는다면 무대다. 미니멀한 무대도 좋지만 좀 더 스케일이 나와 주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무대가 작다보니 남한군인과 북한군인이 돌을 던져 쪽지로 처음 안부를 주고받는 명장면이 왜소하게 느껴졌다. 이런 문제는 역시 제작비와 관련되겠지만. 베르사미와 오경필 상등병의 마지막 대화는 여운이 길다. 아무래도 네 번째 관람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예감이다. 12월6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에서 공연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