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잃은 서정원 감독 “지금은 재창단하는 심정”

입력 2016-01-0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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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간 공들여 쌓은 탑이 허물어질 위기를 바라보는 수원 서정원 감독의 겨울은 유독 춥기만 하다. 7일 남해공설운동장에서 제자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남해|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전력보강 전무에 주축 이탈 가능성도
‘공격 2선·미드필더 진용’ 그나마 위안

‘5→2→2’ ‘21→14→6’

괜한 숫자 늘어놓기가 아니다. 앞은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수원삼성의 최근 3년간 순위 변동, 뒤는 정규리그 챔피언과의 승점차다. 지난 세 시즌 동안 수원은 큰 폭의 발전을 이뤘다. 사령탑 서정원(46·사진) 감독은 올해로 부임 4년차가 됐다.

흔히 감독이 성공리에 안착하는 데는 최소 3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 해의 정착기, 2번째 해의 발전·도약기를 거쳐 3년째에 비로소 완성기로 접어든다는 의미다. 서 감독이 그랬다. 우승 트로피는 품에 안지 못했으나 최근 2시즌 연속 준우승했다. ‘1강’ 전북현대에 당당히 맞서며 큰 박수를 받았다. ‘이제는 해볼 만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수원의 상황은 아주 좋지 않다. 발전은커녕 오히려 퇴보한 분위기다. 수원 선수단이 동계훈련캠프를 차린 경남 남해에서 7일 만난 서 감독의 표정도 몹시 어두웠다.


재창단의 심정으로!

2016시즌 준비를 위해 4일 상견례를 한 수원 선수단은 6일 남해로 이동해 본격 담금질에 돌입했다. 선수는 용병 3총사(카이오·산토스·일리안)를 포함해 30여명이지만 확정인원이 아니다. 상당수가 계약서에 사인하지 못했다. 언제든 이탈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환하고 선한 미소가 사라진 서 감독은 핼쑥했다. 꾹 다문 입술에서 마음고생이 읽혔다.

그럴 만 하다. 전력보강이 사실상 전무하다. 2년 연속 패권을 차지한 전북은 더 발전하려고 뛰고 있고, 오랜 라이벌 FC서울도 나름 알찬 행보로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수원은 빈손이다. “(지금 상황은) 다시 창단하는 것과 다름없다. 답답하다. 집을 리모델링할 때 최소한의 기둥들은 남긴 뒤 벽돌을 바르고 지붕을 올려야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기둥마저 뽑혀갔다.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집을 지어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형국

모기업 제일기획이 2년 전 구단을 인수한 뒤 자생력 강화를 주문하면서 수원은 유망주를 발굴하고 키우는 시스템으로 정책을 바꿨다. 그러나 제일기획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리란 주변의 우려에 대해 “이기는 경기를 하는 투자는 지속한다”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필요하다면’ 외부 영입도 한다고 약속했는데,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보로 봐선 아닌 듯하다.

“주축들의 이탈을 이제 막을 도리가 없다. 어린 선수들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다만 이들은 ‘롤 모델’로 삼을 만한 기둥을 보며 성장한다. 그 기둥이 많지 않다. 더 이상 뭔가를 약속하고 동기부여를 할 수 없어 더 없이 슬프다.”

2연속 준우승을 하며 서 감독은 선수들에게 꾸준히 이야기했다. “보상이 적지만 열심히 하고 열정을 쏟으면 좋은 날도 올 것”이라고. 결과적으로 스승은 떠난다는 제자들을 붙잡을 명분을 잃은 셈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 공들여 쌓은 탑이 대책 없이 허물어질 위기에 놓인 것을 바라보는 서 감독은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저 헛헛한 웃음과 함께 “남들이 데려가지 않은 일부 선수들이라도 데려오고 싶다. 여전히 팔팔한 이병근, 최성용, 고종수, 신범철 등 우리 코칭스태프를 선수로 등록시키면 어떻겠느냐”는 농담으로 답답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래도 어두운 구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요소도 분명 있다. 미드필드 진용은 여전히 부딪혀볼 만하다. ‘기존 실력 유지’라는 가정 하에 공격 2선과 일부 미드필드 진용은 그럭저럭 버텨줄 수 있다고 서 감독은 기대한다.

지난해 3년 재계약을 한 서 감독의 임기는 이제 2년 남았다. 좋은 팀을 만들어내기까지 최소 3년이 필요하지만,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또 고만고만한 영건들만 모아놓고선 큰 폭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올해와 내년, 수원은 어떻게 달라질까.

남해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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