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배구 꿈나무 육성, 프로가 나서라

입력 2016-01-1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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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방신봉-현대캐피탈 여오현(오른쪽). 스포츠동아DB

초등학교 배구팀 지난해 7개 사라져
지원비율 지나치게 상급학교에 몰려
프로구단 책임 아래 유소년 육성 필요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은 초등배구연맹으로부터 우울한 연락을 하나 받았다. 남자 3개, 여자 4개의 초등학교 배구팀이 올해 없어졌다는 얘기였다. 배구 꿈나무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 학교엘리트스포츠의 위기가 차츰 다가오고 있다고 걱정해왔지만, 이처럼 빨리 현실화할지는 몰랐다.

대전의 배구명문 중앙중·고도 최근 해체됐다. 신춘삼 전 KEPCO 감독을 비롯해 이경수(은퇴), 방신봉(한국전력), 여오현(현대캐피탈) 등 V리그를 빛낸 스타들을 키워낸 배구명문이었다. 기존 선수는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절차를 밟고 있다. 대한체육회에 통고만 하면 대전 중앙중·고 배구부는 사라진다. 울산 삼산여고도 지난해 해체됐다. 감독이 지역 교육청과 체육회에 하소연하고 팀을 유지할 방법을 수소문했지만, 학교 운동부의 존속 여부는 교장선생님의 재량에 달려있다.


● 왜 학교와 교장선생님은 운동부 좋아하지 않나?

한마디로 매력이 없다. 운동부를 유지하면 돈이 드는데, 학교 재정상 쉽지 않다. 스포츠를 장려했던 제5공화국 시절에는 모든 학교에 의무적으로 운동부를 만들도록 했다. 담당교사에게 가산점 등의 메리트를 부여했지만, 이제는 그런 혜택도 없다. 운동부는 다른 학생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고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라고 보는 교사들과 학부모의 의식도 부담스럽다. 선수가 줄어들자 학부모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진다. 제 자식이 최고인 학부모가 나서면 팀은 시끄러워진다. 금전적 문제까지 개입되면 팀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학부모는 전학이라는 무기로 학교와 팀을 압박한다. 대들보 선수가 팀을 옮기면 최악의 경우 그 팀은 없어진다. 대전 중앙중·고 배구부가 해체에 이른 것도 팀 운영을 놓고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 유망주들이 그 학교를 외면한 채 다른 지방 학교로 진학했고, 그 결과 선수단 구성조차 어려워져 대회에 나가지도 못했다. 성적이 좋았더라면 팀을 유지할 명분이라도 됐겠지만, 성적도 못 냈고 선수들의 대학진학 성과도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사라졌다.

그나마 전통이 있는 학교의 경우 이사장이나 교장선생님의 열의에 따라 유지되지만 지원이 필요하다. 선수들이 프로 드래프트에 성공하면 학교지원금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다.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면서 운동부를 잘 운영하라고 장려하는 돈이 많은 학교의 의욕을 더 꺾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분배의 왜곡이 만든 결과다. 지원비율이 지나치게 상급학교에 몰린 것도 문제고, 선수를 프로에 보냈느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도 너무 컸다. 2년 전 신인드래프트에서 여자부 1∼3순번을 휩쓴 진주 선명여고는 3억원을 받았다. 프로선수를 1명도 배출하지 못한 학교는 10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나마 이 돈이 생산적으로 선수와 팀을 위해 쓰이면 좋겠지만, 다른 학교에서 선수를 빼오기 위한 돈으로 변질되면서 여기저기에서 반발이 생겼다.


● 프로가 나서야 학원스포츠 문제는 해결된다!

고사상태에 빠진 학교엘리트스포츠를 되살릴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학교는 운동부를 유지하거나 새로 만들기를 꺼리고,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운동보다는 공부를 하기 원한다. 설사 운동을 시키더라도 뒷바라지에 너무 많은 돈이 드는 까닭에 부담스러워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결국 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꾸준히 공급받아야 하는 프로구단과 경기단체가 어떤 식으로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KOVO는 유소년배구 육성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지만, 학원스포츠에 큰 효과를 주진 못했다. 해답은 ‘구단이 엘리트선수 육성과 유망주 발굴의 책임을 지고 성과까지 함께 챙기는’ 발상의 전환에서 찾을 수 있다.

V리그가 참고할 성공사례는 프로축구에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모든 프로팀이 연령별로 유소년팀을 보유하도록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AFC의 권고를 수용해 각 구단에 유소년팀을 갖추도록 했고, 반대급부로 우선지명권을 줬다. 그 결과 지난해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프로 유소년팀 소속 선수들이 큰 활약을 펼쳤다. 유럽의 여러 리그도 클럽에 산하 유소년팀 출신 선수를 일정 비율까지 보유하는 강제조항을 만들어 프로에 선수 육성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드래프트라는 약탈적인 방법을 통해 투자 없이 선수를 데려오던 시대는 지나갔다. 프로구단이 어떤 형태로든 학교와 학부모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운동부를 유지하고 많은 꿈나무가 운동을 선택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15일 KOVO 실무회의에서 연고학교 지정 등 구체적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지금부터라도 실질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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