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scene) 스틸러’.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탄탄한 연기력으로 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눈길을 잡아끄는 확연한 개성을 드러내는 조연급 연기자를 일컫는 말이다. 때로는 주연보다 이들 ‘신 스틸러’의 활약이 더욱 시선을 모으기도 한다. 그 ‘원조격’으로 불릴 만한 연기자 가운데 조형기(사진)가 있다. ‘탤개맨’(탤런트와 개그맨의 합성어로,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연기자라는 의미)이라는 말도 그에게서 생겨났다.
조형기가 1995년 오늘, ‘스타’라는 이름의 뒤에 숨은 인간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MBC ‘스타쇼’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연인’으로서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1994년 가을 개편으로 신설된 ‘스타쇼’가 여전히 가벼움과 지나친 희화화로 스타들의 모습을 비춘 것과는 대조를 이루며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조형기는 이날 시청자에게 낯익은 코믹함을 보여주면서 고교 동창생인 가수 홍서범의 입을 통해 발랄했던 10대 시절의 추억도 전했다. ‘몰래카메라’ 형식을 통해서는 소박한 면모로 시청자에게 한 발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도 했다.
배우 조항의 아들로, 1982년 MBC 15기 공채탤런트가 된 그는 1987년 MBC 주말극 ‘사랑과 야망’ 그리고 1989년 MBC ‘완장’으로 시청자의 시선에 들었다. 특히 ‘완장’을 통해 권력의 무상함을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연기하며 호평 받았다. 1990년대 초반 ‘마누라 죽이기’ 등 영화를 통해 코믹함과 악역의 이미지를 동시에 확고히 다진 그는 그야말로 ‘감초 연기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1993년 MBC ‘엄마의 바다’와 이듬해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더욱 눈길을 모았다.
이를 계기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독특한 ‘콩글리시’ 억양과 어눌한 발음으로 ‘톱 오브 더 월드’ 등 팝음악을 부르는 모습은 시청자의 웃음을 크게 자아냈다. 이 같은 인기를 발판으로 1994년 10월 실제 팝 음악 앨범을 내기도 했다.
이즈음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탤개맨’이라는 말을 처음 입에 올렸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녀석이 일기장에 우리 아빠는 탤런트도 했다 개그맨도 했다 탤개맨이다고 써놓았다. 하지만 제 자리는 어디까지나 탤런트다”(1994년 10월21일자 한겨레)는 언급이었다. 조형기는 이를 한 토크쇼에서 인용했고 이후 ‘탤개맨’은 또 하나의 신조어가 되어 신문지면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널리 회자됐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