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버지를 찾아서’…50년 전 아버지가 간 길, 아들이 복원하다

입력 2016-04-07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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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아버지를 찾아서’ 출간…기억과 기록이 협업한 ‘로드무비’


‘아버지를 찾아서’-통영으로 떠나는 시간 여정 (김창희 지음 l 한울 펴냄 l 480쪽 l 2만3500원)


● 아버지의 ‘티끌’을 모아 아버지의 ‘태산’을 그리다

여기 한 가족의 사적인 이야기가 있다. 20년 넘게 신문기자로 일했던 저자는 7년 전 어느 날, 집 안 한 구석에서 우연히 낡은 종이 상자를 발견한다. 그 속엔 필름 꾸러미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50여 년 전 아버지가 찍은 것들이었다. 바로 그날, 필름에 관련한 상세한 정보가 담긴 메모와 개인수첩을 어머니로부터 넘겨받았다. 1966년 마흔 네 살, 저자의 나이 아홉 살에 세상을 등 진 아버지의 유품. 저자는 지인과 함께 짬을 내 필름을 한 장 한 장 인화했다.

인화된 1000여장의 사진 속엔 아버지가 살았던 1950년대 중후반 경남 통영의 정겨운 풍경, 해방공간의 일상사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저자는 아버지의 유품을 기반으로 사진과 수첩을 맞춰가며 ‘아버지를 찾아서’이라는 퍼즐을 풀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간 길을 다시 찾아가 아버지와 관련된 ‘티끌’을 모아 아버지의 삶이라는 ‘태산’을 그리는 ‘말도 안 되는’ 작업이었다.

티끌 모으기의 가장 중요한 행선지는 아버지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통영. 아버지가 찍은 1950년대 중후반 통영의 사진 수백 장이 담긴 아이패드는 여행의 필수품이었다. 여중, 여고의 입학식과 졸업식, 소풍, 시가행진, 강구항 등 50여 년 전 일상이 담긴 ‘아버지의 사진’과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세월의 켜를 보며 향수에 젖는다. ‘아버지의 삶’을 복원하는 여정은 아버지가 살았던 만주에서 평양, 서울 북아현동, 계룡산을 거쳐 다시 통영으로 이어진다. 이 여정들은 ‘아버지를 찾아서-통영으로 떠나는 시간 여정’이라는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 이 책이 ‘남의 아버지 이야기’가 아닌 이유

이 아주 개인적인 가족사는, 그러나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을 넘어선다. 그것은 저자의 아버지가 살았던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과 휴전, 그리고 이승만 정권과 4.19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모두 커버하는 ‘평범한 한 시민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소시민들의 삶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면 이것은 분명 ‘평범하지만 위대한’ 작은 역사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저자의 취재력이다. 저자는 20년 넘는 기자생활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글로 옮겼던 경험을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때론 단 한 개의 전화번호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캐어’ 하와이에 사는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7년여의 시간을 고스란히 길바닥에 뿌리고서야 ‘흔적’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이 책은 50년 전 아버지의 사진이라는 ‘기록’과 그 기록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아버지 지인들의 머리 속에 남은 ‘기억’을 꺼내 ‘아버지의 삶’을 복원한 것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은 한 편의 ‘로드무비’를 연상케 한다. ‘인간의 흔적과 기억은 시간과 함께 지워지지만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다.

저자가 ‘그저 남의 아버지 이야기에 불과하니 읽고 나면 다 잊어달라’고 겸손하게 당부하지만 방대한 증언들과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소소한 삶이 그대로 배어있기에 ‘남의 아버지 이야기’를 쉽게 잊을 수 없다.


● 아버지와 아들

저자의 아버지는 김필목 씨다.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하얼빈과 만주의 선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평양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에서 20대에 대학생활을 했다. 이후 계룡산 지역을 거쳐 통영에서 중학교 교사를 지냈다. 이후 서울에서 약국을 경영하다 1966년, 44세로 생을 마감했다. 어린시절 결핵 등 병마로 고생했다.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으로 각종 증명서와 수첩 사진 편지 등의 수많은 기록물을 남겼다.

아들이자 저자인 김창희 씨는 1958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서울로 이사했다.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한 후 1983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정치부 기자 및 독일특파원, 국제부장 등으로 20여 년 신문기자로 일하다 2005년 퇴사했다. 이후 프레시안 편집국장 및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위원장, 통의도시연구소 이사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엔 서울의 원형을 추적한 책 ‘오래된 서울’을 쓰는 등 저술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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