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칸 리포트] 박찬욱 감독이 ‘항일’ 대신 ‘사랑’을 택한 이유

입력 2016-05-1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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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한국영화가 택해온 비슷한 시선에서 ‘아가씨’ 한 발벗어나 있다.

1930년대를 그리지만 ‘항일’의 색채보다 개인과 개인들이 맺는 관계와 사랑, 욕망에 더욱 집중한다. 새로운 시선이라 더 흥미롭다.

이 같은 선택에 박찬욱 감독은 답을 내놨다.

“한국인과 일본인 혹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도식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독특한 상황을 보이고 싶었다.”

영화 ‘아가씨’(제작 모호필름·용필름)를 갖고 7년 만에 다시 칸 국제영화제를 찾은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14일 오후(한국시간·이하 동일기준) 기자 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또 ‘아가씨’를 통해 “계급과 국적을 초월한 사랑까지 그려 보이고 싶었다”며 “근대성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도입됐는지, 그것이 어떤 식으로 한국인의 내면에 형성됐는지 추적할 수 있는 기회라고 봤다”고 했다.

‘아가씨’는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인 원작소설 ‘핑거 스미스’를 영화로 옮기면서 박찬욱 감독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택했다.

배우 김민희가 맡은 주인공 아가씨는 일본인이고, 그의 이모부 역의 조진웅은 친일로 부를 축적해 일본의 귀족이 된 인물이다. 이들과 관계를 맺는 백작 역의 하정우 역시 일본인으로 자신의 거짓 신분을 내세운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질문은 대부분 박찬욱 감독에게 집중됐고, 그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뒤섞인 영화 분위기’와 관련한 질문도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은 한 해외매체 기자로부터 ‘영화 아가씨에 한국 사람과 일본사람이 함께 나오는 등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인으로서 일본적인 요소나 식민지 시절이 표현되는 것에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갖기 마련”이라고 운을 뗀 박찬욱 감독은 “그러나 그럴수록, 시대가 이만큼 진행된 마당에, 좀 더 내면적이고 복잡한 개개인의 관계를 표현하는 영화도 나올 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오리엔탈리즘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1930년대의 재현에 있어 중절모를 쓴 신사처럼 스타일리시한 것들을 창조하기는 좋지만 나의 관심은 전혀 다른 쪽에 있다”며 “이질적인 것들이 한 데 모여서 생기는 낯선 분위기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찬욱 감독은 ‘일본식 건물과 한국식 건물의 대조’, ‘서양식 연미복을 입은 남성들이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등을 예로 들었다.

“아무렇게나 모은 잡탕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 근대가 처음 도입된 풍경은 뭘까, 그 모습을 한 눈에 들여다보는 미술과 의상을 시도했다”고도 밝혔다.

박찬욱 감독은 앞서 ‘올드보이’와 ‘박쥐’로 거둔 성과와 명성의 영향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느 배우 못지않은 ‘스타’로 통하고 있다.

30여 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의 거의 모든 질문은 박찬욱 감독에 집중됐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각국에서 모인 취재진은 박찬욱 감독에게 몰려들어 사인 요청을 하기도 했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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