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감성 좋고 코믹 좋고…‘힐링 걸’들의 웃픈 이야기

입력 2016-05-1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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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비메탈걸스는 신나고 웃기면서도 애틋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마지막 반전이 최대의 관전 포인트. 헤비메탈걸스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이 총출동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 연극 ‘헤비메탈걸스’

강성진 첫 제작프로듀서 맡은 화제작
최원종 연출 메탈시리즈 세 번째 작품
구조조정 위기 네 여자의 찡∼한 휴먼


제목이 눈을 끌었다. ‘헤비메탈’과 ‘걸스(Girls)’. 딱히 그림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헤비메탈이란 음악적 장르 자체가 걸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헤비메탈을 하는 걸들이라면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하다. 그것도 꽤 무거운(헤비) 사연이란 것이.

연극 헤비메탈걸스는 대학로 연극계의 강자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김수로 프로젝트의 16탄으로 막을 올렸다. 김수로가 “최고의 친구이자 배우”로 인정하는 강성진이 처음으로 제작프로듀서를 맡아 더욱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대본을 쓴 최원종이 연출 지휘봉까지 잡았다. 이른비 ‘최원종 메탈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2001년 데스메탈을 소재로 한 ‘에어로빅 보이즈’가 그의 첫 연출작이었다. 2014년 50대 남자들의 블랙메탈 밴드 이야기를 다룬 ‘내 심장의 전성기’에 이어 세 번째로 헤비메탈걸스가 탄생했다.

웃픈 이야기이다. 16년간 몸 바쳐 일한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할 위기에 처한 네 여자가 주인공. 네 사람은 하나같이 해고되어서는 안 될 기막힌 사연들을 품고 있다. 식품개발부의 팀장으로 임신 7개월 만삭의 몸인 주영, 식품개발부의 만년 연구원 정민, 남편과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내 학비를 벌어야 하는 악착 기러기 엄마 은주. 이름도 부진, 실적도 부진 심지어 연예마저 부진한 어리바리한 막내 부진.

노래방에서 단체로 소녀시대 춤까지 추며 로비를 했지만 부장은 “실은 나부터 잘릴 것 같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나 해댄다. 하지만 진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하나쯤은 남아 있는 법. ‘곧 짤릴’ 부장은 “새로 부임하는 사장이 헤비메탈 광팬”이라는 1급 정보를 알려준다. 고심 끝에 한 달 후 열리는 전 직원 단합대회에서 헤비메탈 공연을 펼쳐 새 사장의 마음을 움직여보기로 결심한 네 사람. 괴팍한 두 남자 승범과 웅기가 운영하는 음악학원을 찾은 네 사람은 과연 한 달 속성으로 ‘헤비메탈걸스’가 될 수 있을까.


● 마지막 바닷가 장면 ‘애틋’ … 365일 공연되어도 좋을 수작

그저 신나게 한번 웃고 말 작품이라고 하기엔 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경제침체와 실업난, 여성의 사회진출과 경력단절 등등의 헤비한 주제들을 날카롭게 파헤치거나 꼬집은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제목 그대로 헤비메탈 예찬론만 펴는 작품이라 할 수도 없다. 사실 이 연극에는 인간의 성장과 변화에 대한 밑그림이 깔려 있다.

부재와 상실을 느낀 사람들이 무언가를 매개체로 선택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매우 열심히 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성장하고 변화해 간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성장과 변화는 무언가로 인한 결과와는 별 상관이 없다”라는 것이다.

연극 헤비메탈걸스의 엔딩 장면이 참 오래 남는다. 커튼콜을 겸한 신나는 공연장면이 엔딩이지만 ‘진짜 엔딩’은 직전의 바닷가 장면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헤비메탈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한 네 여성의 자기고백이 애틋하기 짝이 없다.

임신 7개월 만삭의 몸으로 헤비메탈걸스의 리더를 맡은 주영 역의 김로사의 연기가 참 좋았다. 감성이 좋고 코믹감각도 좋은데, 뭐랄까 웃는 표정연기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까칠하면서도 털털한 식품개발부 연구원 정민 역의 차청화도 눈길을 끌었다. 이런 말하기는 뭣하지만, 욕을 참 찰지게 했다.

모처럼 머리가 흔들리도록 신나고, 허리가 접히도록 웃기면서 세상 살 맛이 나도록 해주는 연극을 만났다. 이런 작품은 365일 연중무휴로 공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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