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찬욱의 뮤즈…‘아가씨’ 김민희에 홀리는 순간

입력 2016-05-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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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는 칸에서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찍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자벨 위페르는 스윗했다. 나에게 ‘달링’이라고 하더라.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매혹적이시네요.”

박찬욱의 신작 ‘아가씨’에서 백작이 아가씨를 보고 한 말이다. 백작과 후견인 하녀의 중심에서 이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아가씨는 어딘가 비밀스럽다. 마냥 순진무구해보이던 그는 베일이 한 꺼풀 벗겨질 때마다 숨겼던 속내를 드러낸다. 그리고 상대는 자신도 모르게 ‘아가씨’라는 매혹적인 늪에 빠져든다.

실제로 만난 김민희 또한 그랬다. 그의 손짓과 눈빛은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김민희는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면서도 이따금씩 머리칼을 넘기며 수줍게 웃었다. 숙희와 함께하던 순간의 히데코처럼.


Q. ‘아가씨’는 어떤 영화인가.

A. 조진웅 선배가 말한 건데 ‘향이 짙은 영화’ 같다. 박찬욱 감독님의 색깔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고운 향이 나는 영화다.


Q. 박찬욱 감독과 처음으로 작업했는데.

A. 감독님의 전작을 특이하고 재밌게 봤다. 좋아하는 작품은 ‘올드보이’인데 정말 재밌게 봤다. ‘박쥐’도 특색 있더라.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면서 항상 ‘나도 작업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가 와서 좋았다. 이야기가 재밌더라. 기대한 것보다 더 재밌게 읽어 내려갔다. 며칠 고민하다 결정했다.


Q. 박찬욱 감독은 어땠나.

A.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볼 때 철저하게 준비하고 공을 많이 들이는 분이더라. 하나하나 미술에 신경을 많이 쓰고 의미를 많이 담았다. 철저하게 준비해 작업하는 모습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 감독님이 농담을 하는 데 안 웃기다.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같이 작업한 스태프들은 감독님의 개그를 이해하더라. ‘그 개그가 조금 있으면 먹힐 거다’라고 하는데 음….


Q.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누구였나.

A. 아무래도 하정우 선배였다. 하정우 선배와는 연기할 때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다. 선배가 평상시에도 워낙 잘 배려해주는 성격이기도 하고. 조진웅 선배는 촬영장에서 말씀이 별로 없었다. 특수 분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얼굴 근육을 많이 쓰는 캐릭터라 촬영 전에는 가만히 있으시더라.


Q. 김태리와의 호흡은 어땠나. 상대가 신인이라 어려운 점은 없었나.

A. 김태리는 처음 봤을 때부터 당차고 야무진 친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주눅 든 적은 없었다. 촬영 전부터 준비를 많이 했더라. 박 감독님과 따로 만나서 리딩 연습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현장에서도 감독님이 만들어준 부분이 많은데 김태리가 그대로 잘 하더라. 내가 도와줄 부분은 없었다. 호흡도 잘 맞았던 것 같다.


Q. 촬영하면서 가장 어렵거나 힘들었던 순간은.

A. 베드신은 처음이어서 어렵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에서 필요한 장면이었고 감독님의 머릿속에 이미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정확한 콘티가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창조적으로 신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감독님과의 대화로 이 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Q. 베드신은 아무래도 여배우로서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인데.

A. 스태프들도 많이 배려해줬다. 스태프를 최소화했고 촬영 감독님도 현장 밖에 계셨다. 베드신은 밖에서 카메라를 원격 조정하는 식으로 촬영했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A. 독해 장면. 나 혼자 연기하는 신이기도 하고 앞에 신사들을 장악해야 하는 신이었다. 남자와 여자를 오가며 1인 다역을 하는데 재밌었다. 이 장면을 위해 일본어를 많이 연습했다.


Q. 일본인으로 설정된 캐릭터라 독해 장면뿐 아니라 일본어 대사가 많기도 했다. 어떻게 준비했나.

A. 캐스팅되고 나서부터 일본어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았다. 일어를 배웠다기보다는 시나리오를 토대로 공부했다. 히라가나를 발음 기호 없이 문제 그 자체를 읽을 수 있는 정도로는 익혔다. 읽고 쓸 수 있는 수준 이후에 대사를 연습했다.

처음에는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읽을 줄 알게 되니까 재밌더라. 노래를 흥얼거리듯이 일본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선생님도 ‘다들 일본어를 잘한다’고 하더라. 칸에서 만난 한 일본 기자도 ‘다 알아 들을 수 있었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영화는 다른 작품에 비해서 일본어 수준이 높은 것 같다.


Q. 칸 영화제에 처음 방문했는데 어땠나.

A. 좋았다. 사실 분위기가 다를 뿐 영화제는 똑같다. 부산 영화제와 닮았다는 생각도 했다. 처음 간 것인데도 낯선 느낌 없이 편했다. 여러번 가면 기뻐하면서 즐길 수 있겠지만 처음이라 불안한 느낌도 받았다. ‘아가씨’ 상영 후 기립박수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레드카펫은 오히려 더 편했다. 길이도 짧아서 좋았다.

‘아가씨’를 상영 후 불이 켜졌을 때는 정말 떨렸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즐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다들 어떻게 봤을지 생각이 많아지더라. 지금 돌이켜보니 좋았던 것 같다.


Q. ‘아가씨’ 이후 앞으로 작품을 선택할 때 더욱 자유로워질 것 같다.

A.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다. 한 캐릭터나 장르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선택한 적은 없다. 그 순간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더라. 내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작품의 연이 좋았던 것 같다.

아, 공포 영화는 못 보기 때문에 그래서 (출연도) 안 한다. 시나리오도 못 보겠다. 작품이 들어와서 본 적은 있는데 몇 페이지 읽다가 덮었다. 앞으로도 공포 영화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Q. 드라마는 ‘연애결혼’(2008)이 마지막이다. 향후 드라마 계획은 없나.

A. 드라마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영화에 집중하고 싶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연기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작품은 무엇인가.

A. 드라마 ‘굿바이 솔로’(2006)를 할 때부터 연기가 재밌었다. 영화로는 ‘뜨거운 것이 좋아’(2008)였다. 이 작품으로 영화에 대한 매력을 느꼈고 그때 이후부터는 영화 작업의 매력에 빠졌다.

‘화차’는 정말 고민 없이 단번에 ‘마음’으로 선택했다. 사무실에서는 내가 그 작품을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놀라더라. 나는 정말 하고 싶었다. 당시 나에게 들어오는 작품 중에 모든 면에서 좋았다. 새로운 모습이 될 수 있는 캐릭터였다.


Q. ‘아가씨’는 배우 김민희에게 어떤 작품인가.

A. 2016년 영화고 35세의 작품이다. 1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하고 있는데 어느 시기를 생각하면 그때의 작품이 떠오른다. 그 시간이 다 내 삶이었다. 그래서 모든 작품이 특별하다. 무엇 하나가 특별하면 나머지는 안 특별한 게 되니까.


Q.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나.

A. 들려주기보다 내가 듣고 싶다.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가장 소개하고 싶은 것은 ‘아가씨’의 반전이다. 끝까지 놓칠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개봉 후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김태리)와 아가씨의 후견인(조진웅)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아가씨’는 6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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