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영봉승? 공식 야구용어가 아닙니다

입력 2016-06-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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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헥터(가운데).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KBO 공식기록 연감 어디에도 없는 ‘영봉승’
韓·日에선 ‘완봉’-미국서는 ‘셧아웃’만 집계
2명 이상 투수 등판 무실점 승리가 ‘영봉승’?
日칼럼니스트 “일본도 연감에 영봉 기록 없어”


“일본에서도 영봉승, 영봉패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영봉승 기록을 집계하나요?”

한국야구 전문가로 통하는 일본인 칼럼니스트 무로이 마사야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 한국의 야구기사에서 ‘영봉승(零封勝)’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영봉승’과 ‘영봉패’라는 용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일부 매체에서 잘못 쓰는 용어로 치부하고 넘어갔으나, 최근엔 마치 야구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용어처럼 굳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완봉(完封)’이라는 용어가 분명히 있는데, 왜 ‘영봉’이라고 할까. 이에 대한 해석이 그럴 듯하게 전파되고 있다. 완봉은 원래 ‘야구에서 투수가 상대 팀에 득점을 허용하지 아니하면서 완투하는 일’로 정의돼 있다. 그런데 2명 이상(복수)의 투수가 이어 던져 무실점 승리를 거두면 ‘영봉’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하자면 ‘완봉’은 1명의 투수(선발투수)가, ‘영봉’은 복수의 투수가 경기 끝까지 무실점 투구로 승리를 이끄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정확히 얘기하자면 야구에서 이에 대한 구분은 없다. 투수가 1명이든 2명 이상이든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냥 ‘완봉’으로 통일돼 있다. 다만 투수 1명이 무실점으로 완투승을 올리면 '개인 완봉', 2명 이상이 무실점 승리를 거두면 '팀 완봉'으로 구분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셧아웃(Shutout)’ 하나로만 통용된다. 2명 이상의 투수가 무실점 승리를 거두는 일을 두고 ‘셧아웃’ 외에 다른 용어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때도 '팀 셧아웃'이다.

실제로 KBO가 매년 한국프로야구 기록을 집대성한 연감 어디에도 ‘영봉’ 항목은 없다. ‘완봉’만 있다. 가령 ‘2016년 KBO 연감’ 237페이지를 보면 원년인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통산 팀 투수 성적’이 집계돼 있다. KIA(해태 포함)가 완봉 327회로 가장 많고, 두산(OB 포함)이 완봉 302회로 2위에 올라 있다. 이 완봉 항목은 1명의 투수가 완투한 것이든, 복수의 투수가 합작한 것이든 무실점 승리를 모두 ‘완봉’으로 본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KBO가 항상 기록을 집계해 발표하는데, 여기서 ‘팀 3호·역대 57호 완봉‘ 식으로는 발표하지만, ‘팀 3호·역대 57호 영봉’ 식으로는 발표한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KBO 문정균 홍보팀장은 이에 대해 “KBO에서 집계하는 기록 중 영봉은 공식적으로 없다.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면서 “굳이 구분하자면 ‘개인 완봉’과 ‘팀 완봉’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본프로야구 연감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완봉’은 있지만 ‘영봉’ 기록은 없다. 한국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야구용어가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들어온 점을 고려하면 일본에서도 쓰지 않는 ‘영봉승’은 누군가가 잘못 주장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그야말로 국적 불명이자 출처 불명의 야구용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본 야구기사를 보면 종종 ‘영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언론에서 사용하는 ‘영봉’은 오히려 ‘투수가 자신이 던진 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한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다나카 5이닝 영봉’, ‘나카지마 3이닝 영봉’ 식이다. 무로이 씨는 이에 대해 “일본에서도 영봉은 공식 야구용어가 아니고, 투수가 무실점 투구를 했다는 의미로 기사에서 가끔씩 접하게 된다. 0점을 강조하기 위해 무실점과 번갈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구에서 용어는 하나의 언어이자 약속이다. 물론 시대적 요구에 따라 용어도 분화하고 다양해질 필요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먼저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식 항목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면 충분한 논의와 합의 후에 정리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KBO도 공식기록으로 집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불명의 용어와 기록이 범람한다면 야구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팬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게 된다. KBO에서 야구 용어를 정리하고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통일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사족 하나 더. 야구중계를 듣거나 야구기사를 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접하게 되는 겹말이 많다. 겹말은 ‘같은 뜻의 말이 겹쳐서 된 말’을 일컫는다. ‘1루 베이스’, ‘폴대’, ‘라인선상’, ‘그물망’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역전앞’과 같은 겹말 사례다. ‘역전(驛前)’이 이미 ‘역앞’이라는 뜻인데 ‘전(前)’이 또 붙으면 중언부언이 된다. ‘누(壘)’는 ‘베이스(base)’, ‘폴(pole)’은 ‘장대’, ‘라인(line)’은 ‘선(線)’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폴대를 벗어나는 파울”은 “폴을 벗어나는 파울”, “1루 베이스를 밟고”는 “1루를 밟고”, “라인선상을 타고 흐르는”은 “라인 위(또는 선상)를 타고 흐르는”, “그물망”은 “안전그물”로 바꿔서 사용해야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될 일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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