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가 만난 사람] 정몽규 前 협회장 “천재형 인재 포용할 ‘창의적인 한국축구’ 방법론 필요”

입력 2016-07-1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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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전 회장이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내 집무실에서 3년 6개월에 거쳐 협회를 이끈 소회와 함께 자신의 비전을 밝히고 있다. 그는 21일 열리는 제53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 스포츠동아DB

U-20 월드컵 유치·장기 비전 로드맵 뿌듯
K리그 TV중계권 활성화되지 못해 아쉬워

심판게이트·판정논란…축구팬·국민께 죄송
시스템적인 문제점 개선할 부분 더 노력해야

슈틸리케 감독과는 장기적인 발전 방안 공유
한국축구 기술적·마케팅적 성공 기여하고파


대한축구협회는 21일 제53대 회장 선거를 치른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을 추진해온 정부 방침에 가장 먼저 호응해 올 2월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와 통합을 이룬 데 따른 후속 절차의 일환이다. 제52대 수장으로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었던 정몽규(54)전 회장은 신설된 선거규정에 따라 차기 회장 선거 출마를 위해 지난달 20일 사임했다. 11∼12일 후보 등록을 마치면 공식 선거전으로 돌입한다.

축구계에선 정 전 회장이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중연 전 회장에 이어 2013년1월 취임해 3년 6개월 동안 협회 행정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중에선 성인월드컵 다음으로 규모가 큰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내년 국내에 유치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재계 서열 46위의 현대산업개발 오너로 경영 활동에도 분주한 정 전 회장을 만나 한국축구의 현안을 짚어보고, 미래를 이끌어갈 포부를 들어봤다.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조직위원장도 맡고 있는 정 전 회장은 8월 브라질에서 열릴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할 대한민국 선수단의 단장으로도 바쁜 여름을 보내야 한다.


-축구계에 몸담은 지 20년이 넘었다. 울산현대, 부산 아이파크 등 프로구단주,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두루 역임하는 동안 축구를 대하는 관점 또는 시야는 어떻게 바뀌었나?

“50대 중반인데 여전히 배운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즐겁고,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구단주를 할 때는 ‘어떻게 하면 경기에 이겨서 우승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고,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아서는 ‘어떻게 리그를 잘 운영할까’만 고민했던 것 같다. 협회 일을 한 지도 3년 반이 됐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아 하루하루 배우고 있다. FIFA 사람들을 만나고, AFC(아시아축구연맹) 집행위원을 하면서 우리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또 배우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장으로 3년 6개월을 재임했다. 제53대 회장 선거 출마를 위해 잠시 직을 내려놓았는데, 지난 성과들 가운데 꼭 3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을 들 수 있나?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내년에 열릴 FIFA U-20 월드컵을 유치한 것이다. ‘비전 해트트릭 2033’이라는 장기 비전을 통해 협회를 이끌어갈 로드맵을 만든 것도 자랑스럽다. 연맹 총재를 해보니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연맹과 협회가 공동으로 마케팅을 하는 것이었다. TV중계권 사정은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더 활성화되지 못해 아쉽다.”


-K리그는 최근 ‘심판 게이트’(전북현대 스카우트의 심판매수 혐의)로 우려를 사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판정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K리그가 팬들의 신뢰와 사랑을 되찾고, 구성원들 역시 수긍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축구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팬들과 국민들께 송구스럽다. 개인적인 차원, 도덕적인 차원, 시스템적인 차원 등 여러 원인이 뒤얽힌 문제겠지만 개인적인 차원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개선해야겠고, 시스템적인 차원은 연맹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좋아지긴 했지만 국민들이나 팬들의 눈높이에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래도 3∼4년 전만 해도 모든 사람이 ‘어느 팀이 이긴다’고 하면 그 팀이 꼭 이겼는데, 요즘은 어느 팀이 이긴다고 예측하기 힘들어 약간은 좋아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들어 광주나 상주 같은 팀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면, 그 전보다는 뭔가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할 부분은 상당히 많다. 연맹도 더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연맹과 협회가 함께 상의해야 할 문제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전 회장. 스포츠동아DB



-내년 국내에서 개최되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의 성공적 개최도 당면한 과제다. 대회 준비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나?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15년 만에 FIFA 주관의 큰 대회를 치르게 됐는데, 약간 낙후됐거나 FIFA 기준에 맞지 않는 시설들을 조금 고치면 하드웨어적 측면의 준비는 끝난다. 대회가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팬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각 팀을 자발적으로 응원해주셔야 한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그런 준비는 (U-20 대표팀 선수단이) 열심히 잘하고 있다. 요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때문에 경기가 우려스러운데, (FIFA U-20 월드컵을 후원할) 국내 스폰서도 열심히 모아야 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할 한국선수단을 이끌 수장의 중책도 맡았다. 선수단장으로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스포츠가 주는 미덕,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 선수들이 우리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지카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 안전·보건에 큰 관심이 쏠리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내 역할을 다 하겠다. 또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많은 것이 ‘금메달 몇 개, 메달 몇 개를 따느냐’인데 우리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받침하겠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축구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높다.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따낸 터라, 축구계는 물론 국민적 기대도 더 커졌다.

“손흥민 선수를 비롯해 여러 와일드카드 선수들이 참여하고, 지금까지 잘해왔기 때문에 나 역시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속한 C조에는 지난 대회 금메달을 딴 멕시코와 부동의 세계 1위인 독일이 있기 때문에, 운과 노력이 겹쳐야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예선을 통과해야 메달을 노려볼 수 있다. 선수들과 감독이 잘 준비하고 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참패와 최근 스페인과의 평가전 완패(2-6) 등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의 성과를 제대로 잇지 못한 채 세계 수준과 여전히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축구가 더욱 강해지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가?

“여러 가지가 복합된 문제일 텐데, 그 중의 하나가 스페인전을 마친 뒤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얘기했지만 ‘스페인은 예술가처럼 하는데, 우리는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성실하게만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정신적인 측면만 강조해온 것 같다. 물론 나쁜 얘기는 아니다. 우리 경제도, 기업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이만큼 성장했지만 더 발전하려면 다른 방법론이 필요하다. 천재형 인재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사회적·문화적 포용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직장생활에서도 얌전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대우받고 특이한 사람들은 배척받고 있는데, 축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좀더 창의적이어야 할 것 같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게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평소 슈틸리케 감독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인 같은 분위기가 많이 풍기고, 겉으로 봤을 때는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속도 깊고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도 깊다. 당장의 대표팀 성적보다는 ‘한국축구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장기적인 측면에서 대화를 많이 나눈다. 그런 부분에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고맙다.”


-FIFA 평의회 위원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 전망은 어떤가? 또 FIFA 평의회 활동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겠고, 세계 축구의 발전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 선거니까 어찌될지는 모르겠고, 3개월 남았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친(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을 비롯한 현대가(現代家)의 선대들에 이어 사촌형제들 또한 한국체육계에 큰 족적을 남겨왔다. 이 때문에 ‘업적’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할 듯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나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 같은 큰 업적까지 쫓아가기는 벌써 틀린 것 같다(웃음). 지난 3년 반 동안도 그래왔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장기적으로 한국축구의 기술적인 발전, 상업적으로나 마케팅적으로나 더 성공적인 측면, 그런 것들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정몽규 회장은?


생년월일=1962년 1월 14일(서울)
출신교=용산고∼고려대∼영국 옥스퍼드대(정치·철학·경제학 석사)
주요 경력=현대자동차 회장(1996년 1월∼1998년 12월), 현대산업개발 회장(1999년 3월∼현재), 울산현대 호랑이 프로축구단 구단주(1994년 1월∼1996년 12월), 전북현대 다이노스 프로축구단 구단주(1997년 1월∼1999년 3월), 부산 아이파크 프로축구단 구단주(2000년 1월∼현재), 한국프로축구연맹 제9대 총재(2011년 1월∼2013년 1월),AFC 프로리그특별위원회 위원(2011년 4월∼현재), 대한축구협회 제52대 회장(2013년 1월∼2016년 6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조직위원회 위원장(2016년 3월∼현재)

clip ‘비전 해트트릭 2033’은?

대한축구협회(KFA)가 창립 80주년을 맞은 2013년 11월 22일 발표한 2033년까지 달성할 추진 목표와 과제. 창립 100주년인 2033년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위 이내 진입·주요 세계대회 파이널 진출 ▲KFA 아카데미 설립·온라인 플랫폼 구축 ▲대의원 및 회장선거제도 개선 ▲KFA 예산 3000억원·축구저변1000만명 달성 ▲사회공헌활동 예산 비율의 KFA 수입 대비 3∼5%, 축구의 3대 윤리이슈 제로 달성 등 5대 추진 목표로 구성돼 있다.

정재우 스포츠1부장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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