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추남일기] 1990년 무슨 일이? 두 번째 포수감독의 맞대결

입력 2016-11-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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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LG 감독 백인천-전 삼성 감독 정동진(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삼성 라이온즈

한국의 레너드 코페드(美 명예의 전당 헌액 야구기자)로 불리는 고 이종남(1953~2006) 기자의 저서 ‘인천야구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그 중 1990년 한국시리즈(KS) 3차전을 조명한 부분은 훗날 많은 후일담 혹은 논란을 남겼다.

이 기자가 당사자들을 취재해 남긴 기록은 다음과 같다. ‘그해 삼성과 KS 1~2차전을 모두 승리한 LG 백인천 감독은 3차전 3-0으로 앞선 9회말 삼성 중심타자 이만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포수 김동수를 덕아웃으로 불렀다. 그리고 주자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만수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로 직구사인을 내라고 지시했다. 김동수의 사인에 투수 정상흠은 고개를 흔들었지만 ‘감독의 지시’임이 전달됐고 ‘맞거나 말거나’라는 심정으로 공은 던졌다. 결과는 2점 홈런이었다.

그러나 백인천 감독은 만족해했다. 4차전 삼성 포수가 투수 리드가 뛰어난 박정환이 아닌 이만수가 그대로 출전하길 바라는 일종의 함정이었다.’ 이만수 전 감독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할 수 있는 기록이지만 백인천 감독의 의중은 책에 쓰인 내용 그대로였다.

2016년에 1990년을 되돌아본 이유는 그 해가 KBO 역사상 첫 번째이자 2015년까지 단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는 포수출신 감독의 KS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포수출신 삼성 정동진 감독은 4패로 우승을 내준 뒤 “3차전이 분수령이었다. 선발투수로 고민이 많았는데, 내리 3경기를 내준 것은 모두 내 책임이었다”며 LG와 전력차이를 떠나 백인천 감독과 지략싸움에서 패했음을 깨끗이 인정했다.

NC 김경문 감독-두산 김태형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2016년 KS는 감독 사관학교로 불리는 OB포수 출신 김경문 NC 감독과 김태형 두산 감독의 일전이다. 역대 두 번째 포수 출신 감독의 대결이다. 두 사령탑의 지도자 스타일은 꽤 비슷하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그라운드에서 그대로 밀어붙인다.

포수출신 감독은 투수를 꿰뚫어보는 데 있어 최고 전문가다. KBO 역대 최고의 투수출신이자 지도자로도 명성을 날렸던 선동열 전 감독은 “투수는 더 던지고 싶어 하지만 포수가 고개를 가로 저을 때는 포수 의견을 따른다”고 말했다. 포수출신 감독들은 투수가 맞는 파울의 방향과 궤적을 보고 교체를 선택할 때도 있다.

일본의 전설적인 포수이자 감독인 노무라 가쓰야 전 감독은 포수에 대해 “경기 중 포수는 감독의 분신이다. 포수는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선수지만 감독의 지시를 그라운드에 투영하며 경기를 했다. 감독을 대신해 스코어 등 모든 것을 종합해 수비 포메이션도 결정한다. 무엇보다 포수는 타인(투수)의 힘을 빌려 경기를 운영하는 경험을 수 없이 쌓았다”고 정의했다.

감독은 직접 그라운드에서 뛸 수 없다. 타인(선수)의 힘을 빌려 승리해야 한다. 포수출신 감독이 메이저리그는 물론 일본과 한국에서도 각광받는 이유다.

포수출신 감독의 특징은 빠른 판단이다. 현역시절부터 한 경기에 130개가 넘는 공 하나하나에 판단을 내려야 했다. 김경문 감독은 올해 KS에서 중심타자 이호준에게 희생번트 사인을 내거나 경기 중반 무사 1루에서 강공을 지시하는 등 뚝심 있게 선 굵은 야구를 펼치고 있다. 김경문 감독을 선수 때는 선배로, 코치 때는 감독으로 모셨던 김태형 감독은 두산의 강점인 선발투수진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마운드운영으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마지막 결론이 청출어람일지 백전노장의 분투일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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