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삼성의 올 시즌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끝은 아름다웠다. 수원 서정원 감독도 이 과정에서 숱한 눈물을 쏟았다. FA컵 우승을 달성한 수원 선수들이 서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상암|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수원삼성 서정원(46) 감독의 목소리는 모처럼 밝았다. 그와 전화통화를 나눈 것은 3일 늦은 밤. 막 구단 납회식을 마치고 퇴근한 길이라고 했다. 수원은 이날 ‘2016 KEB하나은행 FA컵’ 정상에 올랐다. ‘영원한 라이벌’ FC서울을, 그것도 적지에서 승부차기 끝에 제쳤으니 감격의 여운은 더 없이 짙었다.
‘망한 부자’의 3년차는 지독했다. 내용도, 결과도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 ‘설마’했지만, ‘정말’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스플릿 라운드 그룹B(7~12위)로 떨어졌다. 서 감독의 잠 못 이루는 밤 또한 많아졌다. 간신히 선잠을 청해놓고도 갑작스러운 답답함에 깨어나기 일쑤였다. “어떻게 제대로 잘 수 있겠느냐.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였다. 정말 긴 시간이었다.”
수원은 한때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K리그 이적시장에서 ‘큰 손’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4년 4월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뀐 뒤로는 크게 달라졌다. 지금의 정책은 분명하다. “유소년을 키워서 활용하라!”
적어도 기업의 마스터플랜이 바뀔 때는 얼마간의 유예기간을 준다. 그런데 수원은 뚜렷한 대책도 없이 허리띠부터 졸라맸다. 물론 다른 이야기도 들린다. 구단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마냥 돈을 줄이지 않았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대대적인 축소는 아직 시행하지 않았다. 지난해와 올해 예산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구단에서 효율적으로 자금을 쓰지 못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헛돈’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어찌됐든 수원은 올 시즌 클래식 농사를 망쳤다. 늘 웃은 얼굴로 ‘스마일 가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서 감독의 낯빛도 점차 시커멓게 바뀌었다. 평소 거의 입에 대지 못하는 소주 생각도 많이 났다. 고난의 행군을 하며 사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2014년과 2015년 연속해서 클래식 준우승을 일군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팀들도 많다. 중국, 일본 등에서도 러브 콜이 왔다. 그럼에도 서 감독이 수원에 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명예회복 때문이 아니다. 책임의식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게 주어진 역할은 해야 한다. 아름다운 출발 못지않게 마무리도 중요하다”는 것이 서 감독의 오랜 지론이다.
일단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지만, 수원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중도에 한 번 연장된 서 감독의 계약기간은 내년까지다. 수원은 계약기간이 남은 상황에서 역대 사령탑과 헤어진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칼자루를 서 감독이 쥐고 있다. 지금까지처럼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서 감독은 간결한 메시지를 전했다. “어렵게 따낸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쉽게 준비하고 싶지 않다.” 모든 K리그 팀들의 ‘숙명’인 국제무대에서 망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합리적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제 구단이 응답할 차례가 왔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