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은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마스터’ 인터뷰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영화와 캐릭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풍성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의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스터’의 조의석 감독은 배우와 의논하는 스타일이다. 항상 ‘선배님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면서 숙제 같은 것을 주더라. 그래서 계속 생각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 또한 영화에 참여하는 느낌이 들더라”고 털어놨다.
진회장의 하얀 머리부터 필리핀식 영어까지 ‘마스터’ 곳곳에는 이병헌이 차곡차곡 채운 아이디어와 애드리브가 녹아있다. 살인을 사주한 후 뉴스를 보면서 ‘붉은 색’의 주스를 마시는 모습 또한 이병헌의 아이디어. 무심결에 지나갈 수 있는 아이템이지만 주스 하나로 이병헌이 연기한 진회장의 캐릭터를 아주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병헌은 “대본에는 ‘진회장이 TV를 보면서 웃는다’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인간’이라는 점이 느껴져야 더 섬뜩할 것 같더라. 악행을 저지르고 나서 순간적으로 자기 합리화하는 모습이 더 살아있는 악마 같지 않나.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오히려 더욱 무서운 느낌으로 작용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일부러 비트 주스를 갈아마셨다. 상징적인 비주얼이니까”라면서 “비트의 양과 물 비율에 따라서 색깔과 농도가 다르더라. 입가에 묻는 설정에서도 ‘악마의 이빨’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여러 번 찍었다”고 덧붙였다.
이병헌은 캐릭터의 디테일을 살리는 아이디어뿐 아니라 웃음을 유발하는 대사도 많이 제안했다. 그의 웃음 코드는 이미 ‘내부자들’ 모히토 대사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검증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병헌과 조의석 감독은 입장차를 보였다고.
이병헌은 “야심차게 내놓았다가 조의석 감독에 의해 커트된 아이디어가 많다. 사람마다 코드가 다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시사회에서 조의석 감독이 주장해서 편집된 것에 관객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졌다’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아이디어와 애드리브의 화수분이지만 항상 모든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제안하지는 않는다는 이병헌.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 열전을 “질보다 양”이라고 겸손하게 평했다. 이병헌은 “딱 쓸 것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5~6개의 아이디어를 다 이야기하면 감독이 골라쓰지 않을까 싶은 것”이라면서 “영화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전체적인 내용을 변형하지 않는 선에서 아이디어를 말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촬영 중인 영화 ‘남한산성’ 같은 경우 애드리브가 아예 허용되지 않는 영화다. 그래서인지 좀 허전하긴 하더라”면서 미소지었다.
한편,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 ‘마스터’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쫓는 지능범죄수사대와 희대의 사기범, 그리고 그의 브레인까지, 그들의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다. 이병헌과 함께 강동원 김우빈 진경 오달수 등이 출연한 작품으로 21일 개봉한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