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희주. 스포츠동아DB
2008년 K리그 결승 1차전 천금 동점골
‘역경을 뒤집으면 경력이다!’ ‘오늘을 바꿔야 내일을 바꾼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수원삼성의 곽희주(36)가 좋아하는 글귀다. 예기치 못한 역경이 찾아올 때나, 고통이 따를 때나 그는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헌신과 열정의 아이콘이었다. 찰거머리처럼 따라붙는 끈질긴 플레이로 내로라하는 상대 공격수들을 괴롭혔다. 수원의 ‘영원한 라이벌’ FC서울이 자랑하는 동갑내기 스트라이커 데얀이 가장 껄끄러워한 수비수가 바로 곽희주다. 한때 K리그의 대표 흥행카드 ‘슈퍼매치’가 열릴 때면 스포트라이트는 둘의 진검승부에 쏠리곤 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곽희주는 한쪽 눈으로만 그라운드를 누볐다. 9세 때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면서 오른쪽 눈으로만 싸웠다. 0.5 안팎에 불과한 시력으로 정상급 수비수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2009시즌과 2012시즌 2차례 주장 완장을 찼다. 수원은 전통적으로 선수단 투표로 캡틴을 결정하는데, 거의 만장일치의 결과가 나왔다는 후문이다.
굴곡도 겪었다. 입단 첫해인 2003년 말 스스로 한계를 느껴 무단이탈 파문을 일으켰지만, 코칭스태프는 끝까지 그의 잠재력을 믿었다. 차범근 전 감독은 곽희주를 주전으로 기용했다. 쟁쟁한 진용에서 거의 유일한 무명이 곽희주였다.
2008년 K리그 결승 1차전 당시 동점골을 넣고 환호하는 곽희주. 스포츠동아DB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곽희주 최고의 순간은 대개 슈퍼매치 때였다. 특히 2008년 서울과의 K리그 결승 1차전 원정을 잊을 수 없다. 0-1로 끌려가던 후반 34분 그의 오른발에서 천금같은 동점골이 터졌다. 이 한방으로 흐름을 되찾은 수원은 홈 2차전에서 2-1로 이겨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수원은 아직 K리그를 제패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된 2016년 6월 서울 원정에서도 0-1로 뒤진 후반 막판 염기훈의 프리킥을 헤딩 동점골로 연결했다.
곽희주는 2016시즌이 한창일 때 일찌감치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선수로는 더 이상 뛸 수 없는 몸 상태였다. 그러나 자신의 거취 문제가 팀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더욱이 FA컵 결승 상대는 서울이었다. 동료들이 승부차기 혈투 끝에 우승컵에 입맞춤한 순간, 관중석에 자리 잡고 있던 곽희주도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