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결성 20주년을 맞은 가리온의 MC메타(왼쪽)와 나찰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기에 배고픈 나날도 행복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티스트라면 자신의 예술세계를 보여줘야 함에도 요즘 래퍼들은 엔터테이너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997년 2인조 결성 ‘한국형 힙합의 대부’
‘퇴진 영순위’ ‘우리가 함께 하는 이유’ 등
사회성 짙은 음악 추구…올봄 3집 출시
한국 힙합의 토대를 닦은 가리온(MC메타·나찰)은 ‘한국 힙합의 대부’로 추앙 받지만, 대중에겐 아직 낯설다. 이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한 촛불집회를 통해 비로소 회자됐다. 작년 11월19일 4차 촛불집회에서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퇴진 영순위’로 공연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송년특집 엔딩곡으로 삽입된 ‘우리가 함께 하는 이유’로도 주목받았다. 가리온에게 시국의 노래와 촛불집회 무대는 ‘힙합의 사명감’도, ‘정치적 소신’도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우리가 움직일 수밖에 없을 만큼 상황이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래퍼로서 소리를 내야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가리온은 이전에도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12년 5월 MBC 노조 파업 100일 행사, 같은 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추모 행사 등에도 나섰다. 2011년 일본 대지진 피해가 심각했던 조선학교를 돕는 비영리기구 ‘몽당연필’ 기금 마련 공연도 했다.
“태생적으로 무게 있는 주제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음악은 대중성과 거리가 있다.”
이들은 말 그대로 ‘묵직한’ 길을 걸어왔다. 힙합이 생소했던 1997년 결성해 국내 힙합의 터를 닦은 두 사람은 ‘한국형 힙합’의 정착을 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팀 이름부터 ‘검은 갈기의 백마’라는 우리말이고, 노래엔 영어가 한 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추임새로 쓰이는 ‘요∼’ 같은 말조차 쓰지 않는다.
“힙합은 자기표현이다. 한국인에게 자기표현의 가장 자연스런 언어는 한국어다. 우리말로 우리 생각을 어필하자 생각하면서 우리말 랩을 고집했고 확신이 됐다.”
힙합듀오 가리온.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990년대 댄스음악에 랩이 양념처럼 쓰이고, 노랫말도 영어권 래퍼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힙합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자” “예술로 인정받겠다”는 다짐도 커졌다. 자연스럽게 사랑노래보다는 “깊은 내면의 노래”에 천착했다. MC메타는 대형 병원의 주차요원, 클럽 매니저, 막노동 등으로 살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대중성을 좇지 않고, 본질에 다가가려 노력했다. 생활이 지옥같이 힘들었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 음악이 미워지지 않았다. 굶어죽더라도 우리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가리온은 올해 봄 3집을 낸다. 결성 20주년에 3번째 정규앨범이라니, 작품수가 너무 적다. 공연을 하면서 신곡을 내고, 이를 모아 앨범을 내는 방식을 취하다보니 경력에 비해 디스코그래피가 적다.
“각자 먹고사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곡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또 우리 생각과 철학을 담으려면 큰 바위를 깎아내듯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리온 탄생 이후 2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힙합은 주류가 됐다. 스타 래퍼도 많다. 가리온은 “앞으로 한국 힙합은 다양성이 확대될 것 같다”고 낙관했다.
이들은 “우리는 못할 줄 알았던 결혼도 했다”면서 “고희(古稀, 70살) 힙합이 꿈”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하고 싶다. 우리말 가사도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 영어를 쓴다면, 이는 우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절대 콘셉트가 아니다.”
● 가리온
▲MC메타(이재현·46), 나찰(정현일·40)의 2인조 ▲H.O.T가 데뷔한 1997년 PC통신 하이텔의 힙합동아리 ‘검은 소리’에서 만남 ▲1998년 1월부터 팀 활동 시작 ▲2004년 1집, 2005년 싱글 ‘무투’, ‘그날 이후’, 2010년 2집 발표 ▲MC메타는 현재 실용음악학원 랩 트레이너, 나찰은 국제예술대 힙합과 교수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