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김상우-최태웅 감독의 한국배구 생각

입력 2017-01-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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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전성시대를 거쳐 지도자로서 한국배구의 트렌드를 이끄는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우리카드 김상우 감독(왼쪽부터)이 한 자리에 모였다. 현직 감독 3명이 모이는 일인지라 과정이 복잡했지만 “우리가 그렇게 섭외가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웃는 세 감독의 도움 덕분에 기획이 실현될 수 있었다. 천안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우리카드 김상우(44) OK저축은행 김세진(43) 현대캐피탈 최태웅(41) 감독은 그들의 생각이 어떻든 한국배구의 ‘주류(主流)’로 통한다. 센터(김상우) 공격수(김세진) 세터(최태웅) 포지션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세 감독은 어느덧 지도자로서 V리그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세 감독이 배구계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곧 책임감과 비례한다. 그래서 셋의 생각을 동시에 들어보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그 기회는 22일 올스타전이 열린 천안밖에 없었다. 위상이 높아질수록 세간의 시선이 무겁게 느껴질 현실 속에서도 세 감독은 섭외에 흔쾌히 응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 배구를 위한 선의가 없었다면 성사될 수 없는 자리였을 것이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우리카드 김상우 감독(왼쪽부터). 천안|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기자 : 김세진 감독님은 이제야 김상우 감독님 심정이 이해가 가겠네요.(웃음)


김세진(이하 세진) : 팀 얘기는 하지 마시죠.(웃음) 경험이 없었을 뿐이지 성적 안날 때 기분이야 뻔하죠. 그래도 웃어요.


김상우(이하 상우) : 저희들이 지도자로서의 세월 자체는 길지 않잖아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는데…. 우승 2번한 감독(김세진)한테 제가 뭐라할 입장은…(웃음)

세진 : 그래도 위로 한 번 해줘.(두 김 감독은 동기이고, 최태웅 감독이 3년 후배다.)

상우 : 술로 위로할 수밖에.(웃음)


기자 : 세 감독님은 경기 전후에 악수가 아니라 포옹을 하시더라고요.


최태웅(이하 태웅) : 외로우니까 그러는 거죠. 감독들만 아는 그런 정서가 있어요. 또 그때가 아니면 언제 포옹하겠어요?(웃음)

세진 : (포옹 아이디어는) 제가 만든 거예요. 남들과 똑같이 악수하고 헤어지지 말자고.


기자 : 세 분의 관계를 떠올릴 때, 승부에서 평상심 유지가 쉽지 않을 듯하네요.

태웅 : 아무 생각 안 하려고 해요.

세진 : 30년 지기 친구(상우), 대학후배(태웅)와 팀(삼성화재)에서 선수생활도 같이 하고 그랬는데. 두 양반이 매너도 좋은 사람들인데, 졌다고 감정 드러내면 그게 더 부끄러운 짓이겠죠.


기자 : 최 감독님은 후배인데 지금은 어렵지 않죠?

태웅 : 지금도 어렵죠. 당시 3년 차이면 쳐다보지도 못할 때인데.(웃음) 사실 감독 되고 나서 아무래도 팀 생각을 하다 보니 사생활 못 즐기는 편이라 많이 연락은 못했네요.

세진 : 그런 게 있어요. 감독 되고 나면 팀 스케줄, 내 선수들 챙기는데 시간 뺏겨요. 유대관계를 유지할 시간이 없어져요.

태웅 : 시즌 중에는 통화도 괜히 이상해요. 친구 석진욱 코치(OK저축은행)와 그렇게 친한데,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통화해도 무언가 벽이 작용해요. 그러다보니 연락이 쉽지 않더라고요.


기자 : 지도자로서 서로 영향도 받을 거 같아요.

세진 : 김상우 감독은 감정 제어와 기술 전달력이 굉장히 좋아요. 최태웅 감독은 할 수 있는 거 다하죠. 준비 안 되면 못하는 거예요. 연구하는 자세는 존경스러울 때도 있어요.

상우 : 좋은 선수가 있어야 좋은 성적이 나는 것은 만고의 진리에요. 아무리 연습시켜도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해설위원 때부터 지켜봤는데, 김세진 감독은 팀을 아우르고 장악하는 능력이 김세진다워요. 최태웅 감독은 시행착오가 없어요. 예전부터 ‘지도자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태웅 : 김세진 감독은 선수 시절처럼 형처럼 대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요. 강심장, 가슴이 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죠. 지시가 아닌 대화를 끌어내는 감독이에요. 김상우 감독은 변화요, 1년 만에 다른 팀을 만드는 과감성을 정말 배우고 싶어요.

삼성화재 현역시절 김세진-김상우-최태웅(왼쪽부터). 사진제공|KOVO·삼성화재



기자 : 왕조 시절 삼성화재 멤버들이 지금 뛴다면 몇 등쯤 할까요?

태웅 : 용병이 필요 없죠.(웃음)

세진 : 나도 그 얘기하려고 했어. 어차피 검증이 안 되겠지만 용병 없이 우승할 자신 있어요.

태웅 : (현대캐피탈에 둘이 현역으로 있다면) 저는 놀면서 하죠.(웃음) 현역 때의 김상우 감독처럼 볼 올려주면 만들어 처리해주는 센터가 지금은 없어요.

세진 : 세터가 주는 대로 만들어 때리는 센터는 지금은 있어도 빠르지 못해요.

태웅 : 지금은 세터에 의해 경기가 좌지우지 될 때가 많은데, 당시 삼성화재는 세터가 머리를 안 써도 물 흐르듯 흘러갔어요. 세터와 공격수 사이에 믿음의 타이밍이 있었죠.


기자 : 왜 지금은 김세진 김상우 최태웅 같은 독보적 클래스의 선수가 잘 안보일까요?

상우 : 김세진 감독은 ‘심볼’이잖아요. 그것은 (실력만으로) 못 넘죠. 지금도 김 감독이 OK저축은행 선수들과 어디 가면 사람들이 (김 감독을) 제일 많이 알아볼 거예요. 신영철 감독님(한국전력 감독) 현역 때 제가 ‘어디까지 올려주시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면 딱 맞춰 줘요. 최 감독까지 제가 딱 2명을 그렇게 경험했어요. 두뇌 회전과 볼 컨트롤 능력이 겸비된 것이죠. 요즘 선수들도 잘하지만 지금은 없는 능력 같아요.

세진 : ‘(삼성화재 시절) 이 멤버로 나가면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감독, 코치님이 더 독하게 훈련을 시키셨어요. 그 고생을 했는데 삼성화재만 우승한다고 지탄을 받기도 했죠. 그러면 더 악착같이 이겨야지,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기자 : 지도자로서 돌아보니 당시 삼성화재는 왜 강했던 것 같나요?

태웅 : 뭉치는 신뢰요. 벽이 없었어요. 중간에 (신)진식(전 삼성화재 코치)이 형이 역할 잘해줬고…. 어려운 상황이 되면 말하지 않아도 전부가 집중했고 몰입했어요.


기자 : 그러나 현 시점에 당시 삼성화재 방식이 전부 유효하지는 않을 텐데요.

상우 : 그 방향이 큰 틀에서는 옳다고 생각해요. 다만 똑같이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때처럼 지금 선수들한테 시키면 못 따라와요. (시대에 맞춰)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되겠죠.


기자 : 한국 남자배구의 국제경쟁력이 걱정입니다.

세진 : 카리스마, 리더십을 떠나서 선수가 갖춰져야 작전이라는 것도 만들어져요. 지금 국가대표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원점으로 돌아가서 유소년 단계부터 차근히 끌어올려야 할 때에요. 프로 감독도 책임감을 갖고, 대한배구협회 일에도 눈길 줘야하고, 해외배구에 관한 기본정보는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기자 : V리그 외국인선수 공격 편중은 어떻게 보시나요?

상우 : 트라이아웃을 해서 연봉이 떨어지는 선수가 와도 공격 점유율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어요. 어쨌든 피지컬에서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있죠. 관중은 눈높이가 올라갔는데 지금 이 선수들마저 없으면 볼거리가 사라져요. 최소한의 시스템 유지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측면도 있죠.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우리카드 김상우 감독-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왼쪽부터). 천안|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기자 : 배구 인기가 지속가능하다고 보시나요?

태웅 : ‘코트에서 독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머지 것들은 팬들을 위해 하자’ 그렇게 되면 한선수, 문성민, 김요한 등이 5년 정도 코트에 남아있을 테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그 다음은 계속 육성해서 이어가야겠죠.


기자 : 현대캐피탈 스피드배구는 계속됩니까?

태웅 : 저희팀 스타일의 배구는 변화 없어요. 다만 분위기 반전이 쉽지는 않은데, 국내선수들 정비를 더 해야죠. 외국인선수가 정해지는 시기에 따라 변화를 준비해야죠.


기자 : 김세진 감독님은 올 시즌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세진 :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중심 못 잡았어요. 부상자, 외국인선수를 떠나 감독이 세팅을 못한 거예요. ‘더 섬세하게 준비 해야겠다’고 느끼죠.


기자 : 김상우 감독님, 지는 팀과 이기는 팀의 차이는 뭡니까?

상우 : 짧은 지도자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 안 되는 팀과 되는 팀의 차이는 첫째 기량, 둘째는 마음가짐이에요. 그 마음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입니다.


기자 : 리더십이란 무엇 같습니까?

세진 : 신뢰. 믿어야 끌고 가고, 안 믿는데 나를 줄 수 없어요. ‘손해 본다’는 의심 없이 줘야 선수가 따라올 수 있더라고요.

상우 : 성과. 아무리 좋은 방향이어도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져?’ 이러면 리더십이 안 생겨요. 일단 되면 의심 없이 따라가게 되어요. 리더십의 척도는 좋은 성과에 있어요. 그 전까지가 어려운 것이에요.


기자 : 지도자가 되면 선수가 미울 때도 있지 않나요?

태웅 : 솔직히 미워질 때 있죠. 다만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왜 이렇게 밖에 못해?’ 이렇게는 생각 안 해요. ‘내가 잘해줬다’가 아니라 그건 내 운영방침이니까요.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우리카드 김상우 감독(왼쪽부터). 천안|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김상우 감독

▲1973년 7월31일 생

▲선수경력 : 성균관대∼삼성화재

▲지도자경력 : LIG코치(2008년 6월∼2010년 2월)∼LIG 감독대행(2010년 2∼4월)∼LIG 감독(2010년 4월∼2011년 9월)∼성균관대 감독(2013년 11월∼2015년 4월)∼우리카드 감독(2015년 4월∼)


● 김세진 감독

▲1974년 1월30일 생

▲선수경력 : 한양대∼삼성화재

▲지도자경력 : OK저축은행 감독(2013년 7월∼)


● 최태웅 감독

▲1976년 4월9일 생
선수경력 : 한양대∼삼성화재∼현대캐피탈
지도자경력 : 현대캐피탈 감독(2015년 4월∼)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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