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 롯데 박시영, “힘드냐고? 던질 때 가장 행복해”

입력 2017-04-18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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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박시영.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롯데 조원우 감독은 13일 문학 SK전을 앞두고 특이한 조치를 하나 내렸다. 롯데는 14일부터 사직에서 삼성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장거리 이동을 감안해 14일 선발로 내정된 박진형은 미리 부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박진형과 동행한 투수가 1명 더 있었다. 박시영(28)이었다.

박시영은 12~13일 SK전에서 연투를 했다. 조 감독은 “14일은 무조건 안 쓸 생각이었다. 그래도 눈에 보이면 혹시 모를까봐 아예 내려 보냈다”고 슬쩍 웃었다. 롯데 불펜에서 박시영이 차지하는 위상이 압축되어 있는 에피소드다. 이제 롯데 마운드 운영은 박시영이 나오는 경기와 나오지 않는 경기로 나눠 봐야 한다. 롯데가 박시영을 투입하는 것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의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2017년 롯데 투수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박시영의 육성을 들어보고 싶었다. 투구 스타일처럼 화법도 필요한 말만 간결했다. 그래도 단문 속에 알맹이는 다 들어있었다.


● 오직 전력투구만 생각할 뿐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나?


“중요한 상황에 계속 등판하니까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라는 것을 느낀다.”


-왜 잘 된다고 생각하나?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절박함이 전에는 지금보다 덜했다. 결혼하고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강해졌고, 무언가 성숙함이 생겼다.”


-이제 ‘내 공이 통한다’는 자신감이 들겠다.

“자신감 없이 마운드에 올라간 적은 없다. 성적이 좋으니까 더 생기는 것 같긴 하다.”


-투수는 고비에 나올 때 정신적, 체력적 소모가 더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다르지 않다. 패전조라도 점수 주면 팀의 흐름이 넘어간다. 다만 팀이 리드하거나 접전일 때 집중도가 더 올라가는 것은 맞다.”


-캠프 때까지 선발, 중간 모두 가능한 상황이었다.

“다 준비했다. 어차피 캠프에서 공을 많이 던지는 스타일이다.”


-연투는 힘들지 않나?

“그렇게 힘들지 않다. 단 시간이 지나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 관리하고 있다. 이용훈 불펜코치께서 ‘몸 풀 때, 공을 적게 던지라’고 조언해준다.”


-데이터를 보면 삼진 비율이 높은 편이다.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직구를 던진다. 스플리터(일명 반(半)포크볼, 일반 포크볼보다 스피드가 빠르다)가 주무기인데 (그 외 구종도) 거의 제구력이 잡혀가고 있다. (스플리터를 많이 던지면) 팔에 무리가 가기도 하는데, 지난시즌부터 다시 던지고 있다. 스플리터가 살게끔 다른 변화구도 던진다.”


-몸에 부담이 갈 걱정은 안 드나?

“모든 투수가 다 그렇게 아프다. 다 안고 가는 것이다.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제구력이 좋아졌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불펜에서부터 포수 미트만 보고 전력피칭을 넣는다. 실전 들어가서도 그렇게 한다.”


-야구할 맛나겠다.

“공 던질 때 제일 좋다.”


● JSA에서 인생을 배웠다


-소위 3박(朴) 중에서 박세웅, 박진형에 비해 무명시절이 꽤 길었다.

“그 전에는 간절함이 부족했다.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살았다. 군대 다녀오고 ‘1년만 죽자 살자 해보자. 내 몸이 부수어져도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자’ 이렇게 생각했다. (군 제대 후 심경은 벼랑에서) 뒤꿈치 하나 걸친 느낌이었다.”


-인천 제물포고 때는 어떤 투수였나?

“스피드는 조금 있는데 컨트롤 안 되고. 팀도 두각 못 나타내는 그런 보통 투수.”


-그런데 롯데의 지명(2008년 2차 4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기쁘다기보다 그냥 ‘프로 가는구나’ 그런 느낌. 고교 때에도 절박함이 없었다. 지명 못 받고 대학 진학할 줄 알았는데…. (프로 지명이 얼마나 영광인지) 그런 걸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어릴 때 팀원들과 같이 야구하는 분위기를 즐겼던 것뿐이지, 이것이 내 직업이라는 생각이 부족했다.”


-재능에 대해서는?

“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다. 열심히는 했는데 처절하게는 안했다.”


-군대를 JSA(공동경비구역)로 가서는 야구 생각이 났나?

“군대 가기 전까지 야구를 쉬었다. 아쉬웠다. 다녀와서 한번 해보자 생각했다. 군대에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른들 속에서 삶의 지침을 얻었다.”


-기억나는 말 있나?

“소대장님이 ‘남자가 뭘 하든 하나만 파면 다 되된다. 너는 나가서 잘될 것이니까 야구 하나만 생각하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조직에 잘 적응하는 성격 같다.

“그런 것 같다. 다 잘해줬다. 영어도 조금 배웠다.”


● ‘리틀 오승환’을 향한 꿈


-아버지도 ‘사내는 볼질 하는 것 아니다’고 했다던데.

“어릴 때부터 하시던 말씀이다. 나도 공감한다.”


-작년 12월 결혼(동갑의 신부 이유정 씨)을 했다. 연애는 오래했나?

“무명이고 잘 안 됐을 때부터 응원해주고, 힘이 되어준 사람이다. 지인소개로 8년을 만났다. 프로 갓 입단하자마자 만났다.”


-기다려준 와이프가 대단하다.

“야구선수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좋아해줬다. 만나면 야구 얘기는 잘 안 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더 배려해준 거 같다.”


-롤 모델은 누구인가?

“오승환 선배님. 마운드에 서 있는 그런 느낌(포스)이 너무 좋다. 저렇게 서 있으면 그 누구도 얕잡아보지 못할 것 같다. 나도 마운드에서 비리비리 안 하고, 무조건 전력피칭 하려고 한다.”


-결과가 안 좋은 날은 어떻게 털어내나?

“고참 형들이 많으니까 좋은 말들 해준다. 다 겪어서 이 자리까지 온 선배님들 아니겠는가? 경험을 얘기해주고 ‘얼마 안 지났다. 잊자’고 격려해준다. 나도 성격적으로 잘 잊는 편이다. 집에 가기 전까지만 생각하다 버린다. 내일 또 다시 해야 하니까. 누가 나 대신해 던져줄 수 없는 것 아니까.”


-솔직히 안 떨리나?


“마운드 올라가는 것 자체가 (기질에) 맞는 거 같다. 못 던질 것 같은 긴장감, 두려움이 아니라 올라가서 여기서 이걸 막고 잘 던지면 느끼는 희열에 대한 기대감이 든다.”


-이제 목표도 생길 법도 한데.

“최대한 많이 나가고 싶다. 내가 팀이 그만큼 필요로 하는 선수임을 보여줄 수 있는 방편은 마운드 하나뿐이다. 최대한 많이 올라가서 잘 던지고, 못 던져도 씩씩하게 던지고. 그것이 목표다.“


●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


-돌이켜보면 야구인생의 고비는?

“군대가기 전 방황했을 때. 아프기도 했고, 한 1년 정도 야구공을 안 잡았다. 잘 안 되니까 주눅이 들더라. 야구에 대한 흥미도 잃었다. 그러다 마음을 다시 잡고 JSA로 갔다. 테스트 받아서 갔다.”


-프로 데뷔 때 많이 맞았더라.

“데뷔전이 기억난다. 넥센전인데 강귀태, 김일경 선배한테 홈런 맞고 강판됐다. (벤치로 들어가는 나를 따라서) 쓰레기와 욕설이 따라 붙으며 날라 왔다. ‘거기(사직 마운드)가 어디인데 네가 올라가느냐’고 했던 야유가 기억난다. 그때는 상처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그 덕분에 내성이 생겨서) 누가 뭐라고 해도(웃음)… 다 그만큼 사랑해주시니 화도 내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초연하다.”


-부산에서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나?

“사복 입으면 못 알아본다. 야구장에서는 유니폼 입으면 등에 이름이 써 있으니까 알아보고(웃음).”


-야구 잘할수록 더 욕심이 날 것 같은데.

“야구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든다. 팀에 도움이 되니까 너무 좋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고, 필요로 하는 장소에 있다는 성취감이 너무 좋다.”


-과거가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헛된 시간은 없었다. 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직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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