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형법상 문제 없는 ‘사인 훔치기’…KBO 규약 위배

입력 2017-04-1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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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올해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선 사인 훔치기(Sign Stealing)와 관련한 유쾌한 해프닝이 있었다. 상대팀에서 사인을 훔친다고 생각한 감독이 덕아웃 앞으로 나와 상대편 벤치에서 훤히 보이도록 사인을 낸 것이다.

야구가 시작된 이후로 사인이 생겼고, 상대편의 사인을 훔치기 위한 노력도 동시에 생겼다. 그 때문에 사인을 숨기기 위해 사인이 매우 복잡해졌다. 메이저리그의 어떤 투수는 2루주자가 포수의 사인을 훔쳐 타자에게 전달할까 두려워 일부러 보크를 하기도 했다. 주자를 3루로 보내면 3루에선 포수의 사인을 보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이처럼 사인은 극도의 보안을 요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굳이 훔치려고 하는 행위! 이런 사인 훔치기는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까?

먼저 ‘훔치기’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자. 훔친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통상 절도죄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사인을 훔치면 정말로 절도죄가 성립할까?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절도죄는 ‘재물’을 훔쳐야 성립하는 범죄다. 구체적으로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체와 전기처럼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이 바로 재물에 해당한다.

사인은 선수와 선수, 코치와 선수 사이에 교환되는 정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투수와 포수 사이에 이뤄진 볼 배합과 관련된 정보다. 이런 정보도 재물이 될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물리적 형태가 없는 정보가 물리적 형태가 있는 물건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현대처럼 정보화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보는 어떤 상황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사인이라는 정보를 훔쳤다고 하더라도 절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A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B회사의 직원이 우연히 A회사에 놀러갔다가 기밀문서를 발견하고 복사해왔다고 치자. 이 경우 A회사의 기밀내용을 훔친 것에 대해 절도죄가 성립할까? 아니다. 기밀은 재물이 아니므로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허락 없이 복사용지 1장을 가져온 것에 대한 절도죄가 성립할 뿐이다. 물론 영업비밀침해에 대해 별도의 죄가 성립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인 훔치기의 정확한 말뜻은 아마도 사인 ‘훔쳐보기’일 것이다. 투수와 포수 사이에 비밀스럽게 교환하는 사인을 훔쳐보는 것이 사인 훔치기의 전형적 모습이다. 비밀을 훔쳐보는 것과 가장 가까운 죄명은 ‘비밀침해죄’다. 사인 훔치기가 혹시 이런 비밀침해죄에 해당하지는 않을까?

비밀침해죄는 형법 제316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봉함 기타 비밀장치한 사람의 편지, 문서 또는 도화를 개봉한 자’를 처벌한다. 문자 그대로 비밀장치가 돼 있는 편지, 문서, 그림 등을 개봉할 때 성립한다. 그런데 사인은 비밀스럽게 주고받을 뿐 비밀장치가 돼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편지도, 문자도, 그림도 아니다. 따라서 비밀침해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허용되는 행위라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규약 제26조에서는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 금지’라는 조항을 두고 있다. 먼저 벤치, 코치,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 투수의 구종을 전달하는 행위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수단 관계자들이 경기 시작 후 벤치와 그라운드에서 휴대폰, 노트북 등 정보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경기장 밖에서 카메라로 상대 투수와 포수의 사인을 촬영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위반하면 퇴장과 제재가 가능하다.

사인 훔치기는 메이저리그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인을 훔치지 않는 팀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메이저리그에선 사인 훔치기를 경기의 일부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메이저리그의 경우인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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