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지간 10년 만에 ‘마음의 빚’을 갚다

입력 2017-04-20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김수철이 4월15일 열린 XIAOMI ROAD FC 038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승리한 후 ROAD FC 정문홍 대표에게 안겨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정문홍 대표-김수철 ‘두 남자의 눈물’

2007년 수련생과 관장으로 인연
제자는 배움의 보답 하고 싶었고
스승은 기회 못 준 미안함에 울컥


4월15일 두 남자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XIAOMI ROAD FC 038의 메인이벤트 밴텀급 타이틀매치 뒤였다. 전 챔피언 이윤준(29, 팀강남/압구정짐)이 건강 탓에 포기한 챔피언벨트를 결정하는 경기.

김수철(26, 팀포스)이 김민우(24, 모아이짐/MMA스토리)와 치열한 대결 끝에 3-0 판정승을 거뒀다. 승자가 선언되자 ROAD FC 정문홍 대표가 김수철의 허리에 챔피언벨트를 채워주기 위해 다가섰다. 김수철은 눈물을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 정문홍 대표도 눈물을 훔치며 벨트를 김수철에게 넘겨주고 돌아섰다. 챔피언벨트를 어깨에 두른 김수철은 케이지 중앙에서 울었다. 정문홍 대표는 케이지 기둥 쪽에서 한동안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눈물의 사연이 있었다. 두 사람은 대회 주최사 대표와 챔피언 이전에 사제지간이었다. 2007년 체육관 관장과 수련생으로 만난 지 10년 만에 프로모터와 챔피언으로 케이지 위에 섰기에 영광의 자리에서 눈물이 나온 것이다.

정 대표는 김수철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타이틀매치에 도전할 실력과 전적이 충분한 선수였지만 의도적으로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갈 길을 멀리 돌고 돌아서 마침내 챔피언이 된 제자를 보자 미안함에 눈물이 흘렀다. 그런 마음을 아는 제자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관장의 시각으로 봤을 때 김수철은 3년 전 쯤에 타이틀전을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제자이기 때문에 일부러 타이틀전을 주지 않았다. 계속 해외로 경기를 보내면서 강자들과 싸워서 많은 패배를 경험하게 하고,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 하지 못하고, 지적할 수 없을 단계가 됐을 때 타이틀전을 주려고 했다. 못난 스승을 만나 어쩔 수 없이 불이익을 당했던 김수철이어서 더욱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정문홍 대표는 털어놓았다.

그동안 김수철의 타이틀전이 왜 추진되지 않는지 궁금해 했던 이유가 처음으로 풀린 순간이었다. 10년의 인연을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한 사제의 얘기를 ROAD FC 밴텀급 4대 쳄피언 김수철에게 물었다.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로드FC 38‘ 경기가 열렸다. 메인이벤트 -61.5kg 밴텀급 타이틀전 김수철(레드)와 김민우(블루)의 경기에서 김수철이 판정승을 거둔 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충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정문홍 관장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2007년 내가 고1 시절에 처음 만났다. 당시 프라이드, K-1 등이 인기였다. 그런 경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 앞 5분 거리에 국제종합체육관이 있었다. 지금의 팀포스다. 당시에는 합기도 도장이었다. 몇 번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었는데, 받질 않았다. 그러다가 전화가 왔는데, 관장님이었다.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나이부터 물어본 뒤 ‘지금 당장 나오라’고 했다. 시간이 늦어 다음날 체육관에 갔더니 관장님께서 다짜고짜 글러브를 끼라고 했다. 내가 껄렁껄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바로 스파링을 했는데 니킥과 하이킥을 맞고 쓰러졌다. 관장님이 ‘까불지 말라’고 했다. 그때 나를 쓰러트린 관장님이 멋있게 보였다. 관장님처럼 멋진 킥을 하고 싶었다.”


-정문홍 관장이 지도할 때 강조했던 것은?

“예의범절이다. 어른들을 대할 때나 형님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알려줬다. 경기는 경기고 사회생활은 다르니까.”


-김수철에게 정문홍 관장은 어떤 사람인가?

“은인이다. 체육관을 다닐 때 부모님도 반대하고 몰래 다녀서 돈이 없었다. 그런데 관장님이 돈을 안 내도 된다고 했다. 내가 열심히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체육관비도 받지 않았고 배고프다고 하면 밥도 사줬다. 내게는 사회의 아버지다. 내가 내 미래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먼 내 미래를 봐주시는 분이다.”


-정문홍 관장이 해외로 많은 경기에 내보낸 걸로 알고 있다.

“맞다. 소위 뺑뺑이라고 한다. 해외에서 경기를 많이 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도 많이 쌓인다. 그때 해외에서 했던 경기들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나는 몸도 느리고, 할 줄 아는 건 힘쓰는 것 밖에 없다. 운동신경이 없다. 관장님도 아신다. 나 같은 스타일은 지는 게 약이다. 해외에서 경기를 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해외에서 챔피언이 됐을 때도 같이 울었다던데.

“일본의 라이징온과 싱가포르의 원 챔피언십에서 챔피언이 됐다. 그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원 챔피언십 타이틀전 4주 전 쯤에 경기를 했다. 트레이너가 경기에 뛰지 말라고 했는데 관장님이 ‘이기면 되지’라고 한마디 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걱정을 정말 많이 해줬다. 그때 챔피언이 되고나서 그동안 같이 고생했던 감정들이 폭발해 같이 울었다.”


-이번에 ROAD FC 챔피언이 됐을 때도 함께 눈물을 흘렸는데.

“챔피언이 되고 나서 웃으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데 저절로 눈물이 났다. 그때 관장님도 울면서 벨트를 넘겨주더라. 관장님도 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정말 감사드린다. 관장님 덕분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