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권경원의 꿈 ‘유럽 보다 태극마크’

입력 2017-08-0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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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슈퍼리그 톈진에서 활약 중인 권경원은 칸나바로 감독의 든든한 신뢰 를 바탕으로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축 수비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출처 | 톈진 취안젠 홈페이지

자이언티 ‘양화대교’는 곧 그의 이야기
뒷바라지한 부모 위해 공을 차는 ‘효자’
전북·알 아흘리 거쳐 133억 톈진 이적
수비의 전설 칸나바로감독도 애지중지
특급수비수 찾는 대표팀 레이더에 포착


뜀박질을 할 때 구령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하나 대신 엄마, 둘 대신 아빠를 외쳤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프로에 정착한 지금도 그렇다.

부모님 말씀이라면 뭐든 하는 속 깊은 청년. 그가 초록 피치를 누비는 이유는 자신만의 야망이 아니다. 오직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자신을 성장시키고 뒷바라지를 해준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다.

래퍼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는 여전히 그의 애창곡이다. ‘우리 집에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중략) 엄마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 항상 행복하자!’ 피곤과 싸우며 택시를 몰던 아빠와 자주 몸이 아픈 엄마는 전부 자신의 가족 이야기였다. 반드시 성공해야 할 단 하나의 이유.

‘만능 수비수’ 권경원(25·톈진 취안젠)은 결국 해냈다. 한 걸음씩 새로운 길을 찾고 개척한 결과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북현대에서 프로 데뷔한 그는 2013시즌 20경기(1도움)에 출전했지만 이듬해 5경기 출전에 그쳤다. 실망하지 않았다. 2015년 초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가진 동계전지훈련이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UAE 걸프리그 알 아흘리에서 영입을 제안했다. 첫 번째 제안은 임대. 전북이 거절하자 4년 6개월 완전이적을 요청했다. 전북도 선수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조건.

변변치 못한 이력의 무명 선수가 멋진 인생을 개척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17년 초 깜짝 뉴스가 또 터졌다. 알 아흘리에서 중국 슈퍼리그(1부) 톈진 취안젠으로 옮기며 기록한 이적료(추정)는 1100만 달러(약 133억원). 해외 진출한 역대 한국선수들 중 2번째로 높은 액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가 손흥민(25)을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영입할 때 들인 이적료 3000만 유로(약 381억원)는 깨지 못했지만 엄청난 잭팟이었다. 연봉도 엄청나다. 5년 계약기간에 1500만 달러(약 181억원), 연간 약 36억원이 순수 급여다.

물론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중국축구협회가 갑자기 외국인 선수 출전을 제한하는 규정을 적용해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었다. 하지만 노력과 실력은 언제든 빛을 발하는 법. 톈진의 파비오 칸나바로(이탈리아) 감독은 ‘권경원 카드’를 버릴 수 없었다.

현역 시절, 이탈리아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친 칸나바로 감독은 환경의 전환을 위해 임대를 요청해온 권경원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 ‘톈진식 카테나치오(이탈리아 대표팀 빗장수비)’를 네가 중심이 돼 만들어야 한다”고 달랬다. 정말 기회가 왔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 10승5무3패(승점 35)로 슈퍼리그 3위에 오른 톈진의 상승세에는 권경원의 지분이 상당하다. 7월 29일 옌지에서 열린 옌볜 푸더와의 정규리그 19라운드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온몸을 던지며 투지를 불태운 권경원의 힘이 컸다.

“뛰지 못할 때는 너무 답답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선수가 가치를 입증하려면 뛰어야 하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 기다림의 시간이 짧았다. 매 순간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물론 여기서 그칠 생각은 없다. 아직 개척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았다. 유럽진출의 포부도 크지만 무엇보다 태극마크가 간절하다. 이미 국가대표팀 신태용(47) 감독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김남일(40) 코치가 최근 중국 현지로 파견돼 그를 지켜봤다. 한국축구는 탄탄하게 뒷문을 틀어막을 준비된 수비수를 찾고 있다. 이란(8월 30일 홈)∼우즈베키스탄(9월 5일 원정)으로 이어질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10차전을 앞두고 8월 21일 강화훈련을 시작할 대표팀 최종 발탁 여부를 떠나 적어도 후보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반증이다.

“묵묵히 노력하고 기다리면 대표팀에서 언젠가 불러주시리라 믿는다. 부지런히 정진하며 항상 준비된 자세로 스스로를 성장시키겠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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