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엘리펀트 송’ 스릴러를 드러내자 비춰지는 인간의 상처와 사랑

입력 2017-09-09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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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모계사회에 살고 있죠. 코끼리는 동족의 뼈를 알아봐요. 게다가 가족의 죽음을 슬퍼한대요. 다윈이 말했어요. 코끼리는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악어를 제외하고요. 코끼리는 포유류 중 임신기간이 제일 길다고 해요. 22개월간 새끼를 품고 있대요.”

정신과 의사 로렌스 박사가 실종이 되자 병원장 그린 버그가 마지막 목격자인 환자 마이클을 불러 로렌스의 행방을 묻는다. 하지만 마이클은 동문서답이다. 처음에는 코끼리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자신이 로렌스의 자살을 도왔다”, “우리는 부적절한 관계였다” 등 의심스런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자 몇 년 전 성(性)추문 사건으로 인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린 버그는 마이클과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러자 마이클은 세 가지의 조건을 걸고 그린버그가 원하는 답을 해주겠다고 한다. 첫 번째는 자신의 진료 차트를 보지 말 것, 두 번째는 자신에게 초콜릿을 줄 것, 세 번째는 수간호사 피터슨은 여기에 개입시키지 말 것. 마이클을 만나기 전, 피터슨에게 “이 상황을 이용해 당신을 갖고 놀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그린 버그는 마이클의 조건을 받아들인다.

그린버그와 마이클 대화 사이에 오가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스릴러’라는 장르를 포장하고 있는 연극 ‘엘리펀트 송’은 사랑 받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의 상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퍼즐과도 같은 마이클의 이야기와 그린버그와의 신경전은 좀처럼 ‘스릴’을 놓칠 수 없게 한다. 마이클이 꾸준히 이야기하는 ‘코끼리’는 그가 말하고자 했던 상처와 사랑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동물이다. 결국 마이클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야 퍼즐이 완성된다. 로렌스의 행방도, 마이클이 정말 하고자 했던 이야기도 말이다. 스릴러와 드라마를 모두 잡은 셈이다.

배우 자비에 돌란의 주연작 ‘엘리펀트 송’(2014)에서 그린버그와 피터슨이 아이를 잃어버린 후 이별한 부부였다는 설정 외에 연극 ‘엘리펀트 송’은 대사까지 비슷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에서 보여준 마이클의 죽음 이후 조사를 받는 그린버그와 피터슨의 모습, 피터슨과 이별을 한 후 새로운 출발을 한 그린버그의 모습은 드러낸 채 온전히 마이클과 그린버그의 대화, 그리고 그 모습을 경계의 눈빛으로 관찰하고자 하는 피터슨에 집중했다. 이에 마이클과 그린버그의 신경전과 함께 하는 대화가 촘촘하게 진행된다.

초연에 이어 재연 그리고 삼연까지 ‘엘리펀트 송’의 무대는 마이클의 코끼리에 대한 트라우마와 사랑에 결핍을 상징한다. 마이클이 남아프리카에서 아빠가 죽인 코끼리를 본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조명 효과와 더불어 벽에 넝쿨과도 같은 잎들이 관객들에게 높은 몰입을 선사한다. 기존 무채색 배경의 무대와는 달리 밝은 색상이 눈에 띈다.

그린 버그 역에 고영빈과 마이클 역의 전성우, 그리고 피터슨 역의 고수희는 기존 배우들인 만큼 완성도 높은 연기를 선사한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잠시나마 띄우는 고수희의 웃음소리 연기가 눈길을 끈다. 11월 26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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