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태성 음악감독 “‘1987’ ‘강철비’…흥행의 OST 감독? 망한 적 많습니다”

입력 2018-01-31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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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영화의 음악은 김태성 음악감독의 ‘손’ 안에 있다. 젊은 감각과 음악에 대한 고집으로 영화 ‘명량’ ‘1987’ ‘강철비’ 등 숱한 흥행작의 음악을 도맡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영화판 강동원만큼 뜨거운 남자, 영화음악감독 김태성

# 1. 영화 ‘1987’의 기억

엔딩곡 ‘그날이 오면’
관객들 모두 광장으로
달려 나가게 하고 싶었죠

# 2. 새 영화 ‘골든슬럼버’는

가장 비싼 음악저작권료
비틀스 노래를 만진다는 건
엄청난 의미이자 도전

# 3. 할리우드서 녹음하는 이유

‘워너브라더스스튜디오’
황홀한 사운드·공평한 제작환경
돈 많이 들어도 포기 못 해


눈에 띄는 한국영화 흥행작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는 이가 있다. 음악감독 김태성(39)이다. ‘명량’부터 지난해 연말 개봉해 지금까지 화제인 ‘1987’과 ‘강철비’의 음악도 그가 맡았다. 앞으로 내놓을 영화도 이어진다. 3년간의 일정이 꽉 찼다고 했다.

티켓파워를 과시하는 톱스타만큼이나 제작진이 욕심내는 김태성 음악감독을 최근 서울 논현동 그의 스튜디오 모노폴에서 만났다. 14일 개봉하는 강동원 주연의 영화 ‘골든슬럼버’ 작업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음악인이냐 영화인이냐 묻는다면 ‘영화음악인’이라고 답하겠다”는 그는 ‘한공주’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같은 저예산 독립영화부터 ‘시라노 연애조작단’, ‘최종병기 활’, ‘굿바이 싱글’ 등 상업영화까지 장르의 경계 없이 활동하는 실력자이다. “스튜디오의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이라 최근 대작을 많이 해 부각됐지만 사실 내 뿌리는 독립영화이기에 놓칠 수 없다”는 ‘주관’도 가졌다.

영화 ‘1987’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그가 최근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1987’과 ‘강철비’의 극적인 분위기를 돋운 음악을 만든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어서다. 특히 ‘1987’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초침 소리부터 엔딩곡으로 삽입된 ‘그날이 오면’까지, 음악의 설계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으로 작업했다”는 그는 “관객을 동참시켜 광장으로 달려 나가게 하는 음악이길 원했다”고 작업 과정을 돌이켰다.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김태성 음악감독은 1학년을 마친 1999년 휴학했다. 어릴 때부터 원했던 영화음악의 “실전”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영화음악을 하려고 클래식을 택했는데 맞지 않았다. 무조건 필드로 나갔다. 운 좋게 ‘챔피언’의 예고편 음악을 맡았고, ‘황산벌’ ‘연애소설’ 같은 작품을 하다 2004년 ‘안녕 UFO’를 통해 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초반 작품들은 거의 다 망했다.(웃음)”

활발히 활동하는 영화음악감독들이 대부분 40대∼50대인 것과 비교해 김태성 감독은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한다. 일찍 뛰어든 탓에 시행착오도 수없이 겪었다.

“가장 크게 망한 영화가 ‘가루지기’다. 내가 존경하는 음악가가 엔니오 모리꼬네이다. 그분과 작업하는 연주자들을 모아 100인조 오케스트라, 합창단을 꾸려 불가리아에서 작업했다. 그런데 음악이 영화와 전혀 맞지 앉았다. 그때 바닥을 쳤다. 여기서 끝이구나 싶었다.”

같은 시기 마침 그는 또 다른 영화 ‘크로싱’ 작업도 병행하고 있었다.

“그때까진 슬픈 장면에 슬픈 음악이 깔리면 쿨하지 못하고, 멋지지 않다고 여겼다. 감독과 수없이 싸웠다. 그렇게 ‘크로싱’을 공개했다. 예상과 달리 외국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유럽에서 활동 의뢰까지 받았다. 내가 고집한 세계가 전부가 아니란 걸 그때 알았다. 좋은 음악이 좋은 영화음악은 아니다. 물론 아직도 내공이 부족하다. 공부 중이다.(웃음)”

김태성 음악감독.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새로운 시도 역시 멈추지 않는다. 한국영화에서 처음 할리우드 워너브라더스스튜디오에서 음악작업을 시작해, 유일하게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시작으로 ‘1987’과 이번 ‘골든슬럼버’까지 그랬다. 돈도 많이 들고, 난관의 연속인 할리우드 녹음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사운드가 훌륭하다. 또 선진화된 영화음악 시스템을 한국에 가져오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한국영화는 음악감독이 작곡부터 편곡, 연주자 섭외까지 다 한다. 할리우드는 음악의 모든 분야가 세분화돼 있다. 물론 예산은 많이 든다. 그래도 관객의 극장체험에서 사운드만큼 좋은 게 없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무리를 하고 있다.”

한국영화시장 안에서 영화음악의 위치, 작업방식과 그 한계에 대한 고민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할리우드에서 작업할 땐 반드시 현지 노조를 통한다. 내가 받은 개런티의 일정 퍼센트, OST 지분의 일정 부분을 노조에 줘야 한다. 힘들지만 그러면서 배우고 싶다. 사실 한국영화 제작환경이 좋아졌다고 해도, 음악 같은 후반작업 비용은 10년 동안 크지 달라지지 않았다. 더 깎이기도 한다. 작업해놓고도 크레디트를 빼앗기는 신인 작곡가들도 많다. 제대로 이름을 올려야 한다. 내가 총대를 멨는데, 사실 무거워 죽겠다. 하하!”

영화 ‘골든슬럼버’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작업도 게을리 할 순 없다. 곧 공개되는 ‘골든슬럼버’는 특히 음악이 중요한 영화다. 그의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할 기회다. 영화제목으로도 쓰인 비틀스의 노래 ‘골든슬럼버’는 영화에도 삽입됐다. 이를 위해 한국영화 사상 가장 높은 음악저작권료가 지불된 것으로 알려졌다. 웬만한 톱스타의 영화 개런티와 맞먹는 액수다.

“저작권 해결을 위해 많은 분이 공을 들였다. 음악의 최종 허락은 폴 매카트니가 한다. 원곡과 똑같은 음악은 사용하지 못하게 하니까, 편곡할 수밖에 없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비틀스의 노래를 만져본 건 엄청난 의미이고 도전이다. ‘골든슬럼버’에는 고 신해철의 미공개 목소리의 노래도 담긴다.”

앞으로 작업할 영화의 목록은 화려하다. 설경구·한석규의 ‘우상’부터 이정재의 ‘사바하’, 김혜수·유아인의 ‘국가부도의 날’, 류승룡의 ‘극한직업’이 그의 음악을 통해 완성된다.

“좋은 영화음악감독의 자격은 이야기의 함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를 아는, 인문학적인 소양인 것 같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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