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생각하고 움직여라”…유비의 디테일 축구

입력 2018-02-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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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유상철 감독.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2011년 대전 사령탑땐 의욕만 앞섰더라
질 좋은 패스 위해 볼배급 습관부터 훈련
정규리그 중위권·亞 챔스리그 출전 목표

“상대에 대응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다.”

K리그1(클래식) 전남 드래곤즈 유상철(48) 신임 감독의 이야기는 또렷했다. 스스로가 먼저 확실히 준비돼 있어야 좋은 축구가 가능하다고 봤다. 상대에게 마냥 끌려만 다니는 소극적인 경기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전남은 태국 방콕에서 1차 동계전지훈련을 마친 뒤 연고지 광양에서 2차 강화훈련을 진행 중이다. 높은 습도와 섭씨 35도의 무더위와 싸우면서도 체력을 잘 다질 수 있어 상당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최근 광양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유 감독은 ‘습관’과 ‘디테일’을 강조했다. 패스와 동작 하나하나에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불필요한 자세를 교정해 체력소모가 적은, 짜임새 있는 플레이를 거듭 주문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있다. 새 시즌을 앞두고 부임한 신임 사령탑과 선수들과의 거리도 상당히 좁혀졌음을 느낀다. “선수들이 먼저 생각하고, 먼저 시도하려는 자세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는 전남을 확인하고 있다”며 웃었다.

전남 유상철 감독.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 이제는 주류로 향한다!


-2018시즌 전남의 방향은 뭔가.

“그저 상대에 맞추는 시간은 지났다. 물론 상대를 무시한다는 게 아니다. 전술적인 대응은 기본이지만 그 이전에 우리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시즌 전까지 이 부분을 완전하게 마무리하려 한다.”


-1차 훈련을 마쳤는데.

“최대한 체계적인 훈련을 하고 있다. 몸에 GPS를 달아주고 심박수를 측정하며 선수들이 각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뭘 채워야 할지를 알게 해준 뒤로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최근 팀 훈련의 화두는 무엇인지.

“패스와 집중력이다. 10m 거리의 동료를 향한 볼 배급이 3m보다 쉽다면 믿어지나? 집중력이 이런 차이를 낸다. 멀리 있는 동료에게 훨씬 좋은 패스를 한다. 패스의 선택부터 질, 주변의 움직임, 볼을 놓쳤을 때의 반응까지 차근차근 일러줬다. 물론 다들 알고 있는 부분인데, 습관이 안돼 있었다. 의식을 변화시키고 작은 습관을 바꿔주고 있다.”


-선수들이 어려워하지 않나?

“아무래도 기존 훈련과는 다른 방식을 도입하면서 약간의 혼란은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시행착오는 크지 않다. 잘 따라오고 있다.”


-최근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줬나.

“내가 움직이기보다 볼을 움직이게 해서 상대를 힘들게 하는 축구를 하자고 했다. 무의미한 킥도 지양하려 한다. 다만 축구는 선수들이 한다. 감독은 현장에서 최대한 좋은 선택을 내리게끔 도우면 된다. 선수들이 이유를 알게 되고, 묘미를 느끼게 해주려 한다.”

전남 유상철 감독.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 아쉬움의 반복은 없다!

유 감독에게 전남은 사령탑으로 몸담게 된 2번째 프로 팀이다. 2011년 7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K리그2(챌린지) 대전 시티즌을 이끌었다. 그러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1년 반의 짧은 시간 동안 뭔가를 바꾸기 어려웠고, 새로운 시도조차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때 나는 많이 어렸다”고 했다. 의욕만 앞서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 이후 체계적인 지도자 코스를 밟으며 ‘매니저’가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


-프로 2번째 도전이다.

“40대 초반 감독은 혈기와 패기가 과했다. 자신감과 이상만 가득했다. 좀더 디테일해야 했다. 명확한 팀 컬러, 선수단 구성에 맞는 전술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그냥 내가 생각한 것만 강조했다. 지금은 아니다. 팬들은 물론 구단 식구, 스폰서, 미디어까지 다양한 부분을 신경 쓰게 됐다. 감독 매니지먼트를 공부하며 역할의 폭이 상당히 넓다는 걸 알게 됐다. 경험이 무섭다는 게 그래서인 것 같다.”


-그래도 자신의 축구철학은 확고할 텐데.

“전남만 이야기하겠다. 우리 장점이 뚜렷해야 한다. 상대가 우릴 만만히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개개인 몸값은 많이 부족하더라도 ‘팀’으로 뭉쳤을 때 뒤지지 않는 축구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질 때 지더라도 뿌듯함을 느끼는, 또 무언가 교훈을 얻는 축구를 해야 한다. 여기에 변수가 생겼을 때 유연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 걸음씩 강팀으로 향할 수 있다.”


-본인에게 올해는 어떤 의미일까.

“대전에서의 경험은 지금 큰 자산이다. 시행착오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 어느 정도 압박도 즐기게 됐다. 연승도, 연패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지만 어려움을 보다 지혜롭게 대처하고 극복할 것 같다. 내년은 의미 없다. 올해가 없다면 내년도 없다. 최대한 즐기려 한다. 내가 재미있고, 선수들도 즐거워야 외부에서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전남의 목표가 궁금한데.

“일단 정규리그에서는 중위권을 목표한다. 마음으로는 더 높은 순위를 노리지만 6∼8위 정도는 꾸준히 유지해야 쫓기지 않고 우리의 축구를 할 수 있다. 솔직히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생각한다. 1∼3위가 어렵다면 FA컵이 있다. 단판승부는 우리 역시 충분히 할 수 있다. 타이틀도 필요한 타이밍이다. 우승의 맛을 알아야 다음에 도약할 수 있다.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광양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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