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남자 1,500m 예선전에 출전한 황대헌, 서이라, 임효준 모두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며 가볍게 각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다만 중국의 세 선수가 황대헌, 임효준과 함께 준결승 3조에 들어가 쉽지 않은 한 판 승부를 예고했다.
바로 이때 화제의 북한 응원단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의 최은성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프레스 석 왼쪽 스탠드 한 구역을 몽땅 차지한 북한 응원단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응원으로 단숨에 수많은 이들의 이목을 빼앗았다. 하지만 황대헌 선수와 예선 3조에서 뛴 최은성은 세계 수준과는 현격한 격차를 보이며 꼴지로 탈락했다. 이후 북한 응원단은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하며 ‘’반갑습니다‘, ’고향의 봄‘ 등 다양한 응원가를 불렀고, 일부 응원단은 화려한 한복 의상과 함께 부채춤 등을 선보이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미국의 헌터 펜스 부통령과 함께 예선전을 관람하면서 인파가 몰려 아이스 아레나는 경기 외적인 요소로 시끌벅적했다. 남자 1,500m 예선전 후 북한 응원단과 문재인 대통령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이동했다.
여자 쇼트트랙대표 김아랑(왼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선수 선발의 문제점을 드러낸 여자 500m 예선
이후 벌어진 여자 500m 예선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선수들. 아쉽게도 심석희, 김아랑 선수는 모두 조 3위에 그치며 예선에서 탈락했고 오로지 최민정 선수만이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하며 13일 벌어질 결승전에서의 선전을 기대케 했다. 이러한 결과는 경직된 국가대표 선발전 방식의 개선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결과였다. 현행 선발전은 종목별로 출전 선수를 선발하지 않고 종합 성적순으로 올림픽 출전 선수를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중장거리에 강한 선수들이 단거리인 500m에 출전하여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드는 경우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대표팀만 한정해서 본다면 500m에서 경쟁력을 보여준 바 있는 김예진이 출전했다면 보다 좋은 성적을 얻을지도 모른다. 차후 올림픽에서 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종목별 선수 선발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아쉽게 탈락한 서이라(왼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간발의 차이로 탈락한 서이라와 상대들을 압도한 임효준과 황대헌
이후 1500m 준결승에 출전한 남자 선수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준결승 1조에 출전한 서이라는 경기 막판까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지만 캐나다의 백전노장 샤를 아믈랭에게 간발의 차이인 0.002초 차이로 밀리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에 반해 3조에 동반 출전한 황대헌과 임효준은 나란히 1, 2위로 골인하며 남자 대표팀 원투 펀치의 위용을 과시했다. 아쉽게도 금, 은, 동 싹쓸이는 무산됐지만 영혼의 단짝 임효준, 황대헌이 시상대에 나란히 오르는 모습은 기대할 수 있는 결과였다.
● 넘어지고도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여자 대표팀과 바로 그 기록을 깬 라이벌 중국
그 다음 벌어진 여자 계주 준결승에서 여자 대표팀은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대표팀 막내인 이유빈 선수가 경기 도중 넘어지면서 결승 진출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행히도 레이스 초반인 23바퀴째에 넘어져서 에이스 최민정을 비롯하여 모든 선수들이 혼신의 역주를 한 덕분에 1위로 달리던 캐나다를 제치고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결승에 진출했고 관중석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여자 대표팀이 세운 4분 06초 387의 기록은 이어 벌어진 준결승 2조의 중국 팀이 경신하며 역시 숙명의 라이벌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1994년 릴레하메르 올림픽 이후 24년째 지속되고 있는 여자계주 한중전은 5승 1패로 대한민국의 절대적인 우위.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이 다시 한번 승리의 역사를 써낼지 20일 경기를 지켜보도록 하자.
레이스 도중 넘어진 황대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레이스 도중 넘어진 황대헌과 선두를 지킨 임효준, 두 룸메이트의 상반된 결과
남자 1,500m 결승전은 어드밴스로 올라온 선수가 3명이나 돼 결과적으로 9명의 선수가 뛰는 바람에 결과 예상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월드컵 세계랭킹 1위인 황대헌, 2위인 네덜란드의 싱키 크네트흐, 3위인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 4위인 임효준이 제일 유력한 후보들임에 틀림 없었다. 레이스 초반엔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과 사무엘 지라드가 1, 2위를 달렸고 대한민국의 두 선수는 중위권에 머물렀다. 9바퀴째에서 임효준과 황대헌이 함께 앞으로 나갔고 싱키 크네트흐가 3위에 위치했다. 6바퀴째에 싱키 크네트흐가 선두로 나서면서 임효준은 살짝 삐끗했으나 금세 안정을 되찾고 3위 자리를 지켰다. 3바퀴째에서 싱키 크네트흐를 제치고 선두로 나선 임효준은 이후 선두를 내주지 않고 1위로 골인한 반면, 황대헌은 넘어지며 입상에 실패했다.
3번의 큰 부상과 7번의 수술을 이겨내고 마침내 금메달을 따낸 임효준은 ’제2의 안현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반면, 고등학생 스케이터 황대헌은 큰 무대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두 선수는 태릉선수촌 룸메이트로 오랫동안 함께 생활했고, 월드컵 1차 대회 1,500m와 1,000m에서는 사이좋게 금, 은을 차지한 바 있다. 비록 1500m에서는 상반된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이후 경기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준결승에서 아깝게 탈락한 서이라까지 분발하면 남자 대표팀이 개인전과 계주에서 역대 올림픽 최고의 성적을 거둘 것을 기대해 봐도 좋다.
이렇게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첫날 경기는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으로선 최상은 아니어도 목표치는 달성한 성적이었다. 이후 경기에선 또 어떤 명경기와 이야기가 펼쳐질지 지켜보도록 하자.
강릉 l 권혁신 빙상칼럼니스트·‘빙상의 전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