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단일팀, 남북이 합쳐 일본을 상대하던 날

입력 2018-02-14 2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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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올림픽 사상 최초로 결성된 남북여자아이스하키단일팀이 조별리그 여정을 마쳤다. 14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B조 예선 일본과의 3차전에서 분전 끝에 1-4로 패했다. 그러나 마침내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이 터졌다.

단일팀은 탄생부터 조별리그 마무리까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지난달 20일 남북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스위스 로잔에서 출범시킨 단일팀은 우리 선수들의 ‘기회 박탈’ 논란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곧 단일팀을 향한 적잖은 반대로 이어졌다. 특히 기회의 균등과 과정의 공정성을 출범 일성으로 내건 현 정부가 벌인 일이었기에 실망감이 적지 않았다.
단일팀은 이런 반론을 뚫고 세상에 나왔다. 지난달 25일 북한선수 12명이 진천선수촌에 합류하면서 초시계가 작동됐다. 올림픽 개막까지는 불과 보름이 남은 시점이었다.

논란 속에 탄생한 단일팀은 호흡 맞추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새라 머레이(30·캐나다) 감독은 선수들이 효율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구상하고 또 구상했다. 그러나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할 상황에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 단일팀은 결국 세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스위스와 스웨덴을 상대한 1~2차전에서 모두 0-8로 대패했다. 일찌감치 4강 플레이오프(PO) 진출에 실패했다. 그토록 바라던 첫 골과 첫 승은 나오지 않았다.

예선 탈락이 확정된 뒤 치른 조별리그 최종전 상대는 공교롭게도 일본이었다. 영원한 숙적이자, 잊을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을 안긴 일본을 남북이 뭉쳐 상대하게 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일전이 열린 14일 관동하키센터는 전 세계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일찌감치 매진된 좌석은 가득 들어찼고, 취재석 역시 각국에서 온 기자들로 북적였다. 외신 기자들 가운데 일부는 한국 기자와 관중들에게 일본전의 의미를 물으며 관심을 표했다. 북한응원단도 함께했다. 무리지어 관중석을 차지한 이들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힘내라. 우리 선수 이겨라”를 외쳤다.

0-2로 뒤진 2피리어드 9분31초, 귀화선수인 랜디 그리핀이 마침내 감격적인 단일팀의 첫 골을 터뜨리자 경기장은 떠나갈 듯 들썩였다. 그러나 여전히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일팀은 3피리어드 후반 두 골을 더 내주고 1-4로 졌다.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 나선 머레이 감독과 주장 박종아, 랜디 그리핀은 표정이 밝지 못했다. 첫 골의 기쁨보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쳤다는 안타까움이 짙게 묻어났다.

머레이 감독은 “선수들은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모든 것을 희생했다”면서 “남북을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의 팀(One Team)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일본전 역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라이벌을 상대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조별리그를 전패로 마감한 단일팀은 18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5~8위 순위결정전을 치른다.

강릉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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