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들의 수다①] 연기자 김현숙 “영애씨로 12년, 자부심과 아쉬움의 공존”

입력 2018-02-1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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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돼먹은 영애씨’ 속 김현숙은 이 시대 여성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꼬박 12년 동안 전해왔다.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현실과 꿈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드러낼 줄 알았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막돼먹은 영애씨’의 일, 육아 그리고 꿈 김현숙

일은 일대로 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안 돼
애교 섞어가며 남편에게 해 달라고 하고
남편은 배려의 아이콘…호칭은 바깥양반
난 ‘슈퍼우먼’이 아냐…집에선 50점 아내

10년 넘게 시리즈물…영애가 인생의 일부
결혼한 ‘막영애’ 이제 인생 2막 시작이죠


그녀 앞에선 어떤 말이든 일단 털어놓고 싶다. 왠지 고민에 명쾌한 해답을 줄 것 같은 기대가 있어서다. 누구보다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언니’, 연기자 김현숙(40)이다. 이제는 실제 이름보다 ‘영애씨’ 혹은 ‘막영애’로 더 유명한 주인공. 햇수로 12년간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를 시즌16까지 이끈 저력의 소유자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많은 시청자에게 공감을 얻고, 위로를 줬다는 뜻이다.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영애씨’를 설 명절을 앞두고 ‘여기자들의 수다’에 초대했다. 예정대로라면 한 시간 동안 진행될 인터뷰는 그가 쏟아내는 일과 육아, 가정 그리고 꿈을 향한 대화로 이어지면서 계획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연기자이자 누군가의 아내이고, 아이의 엄마 그리고 며느리까지. 여성에게 주어진 다양한 책임과 역할은 김현숙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현실을 자신의 방식으로 ‘쿨’하게 헤쳐 나가고 있다.

바쁜 워킹맘 김현숙은 “일도 가정도 전부 챙길 수 없는 건 일하는 엄마가 겪는 현실”이라며 “나는 밖에서 열심히 일하니까 아이에게 미안한 죄책감은 조금 덜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같이 푸는 ‘절친’ 연예인으로 배우 김옥빈과 방송인 백지연, 가수 박선주의 이름을 꺼낼 땐, 어쩔 수 없이 ‘센 언니’의 포스가 느껴졌다.


● 슬기로운 명절나기? 힘들어도 티 안 내는 것!


-이번 명절에는 ‘며느리’ 모드인가.

“연휴에 놀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드라마 ‘추리의 여왕2’ 촬영을 할 것 같아서다. 친정 부모님은 경남 밀양에, 시부모님은 부산에 계신다. 사실 명절이 아니면 온 가족이 모이기도 쉽지 않잖나. 다 같이 밥 먹을 기회도 적고. 그래서 명절엔 되도록 시댁도 가고 친정도 가려고 하는 편이다.”


-연예인 며느리도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지 궁금한데.


“있지, 심적으로 부담이 있다. 우리 시어머님은 나한테 일을 절대 안 시킨다. 일하지 말고 편하게 쉬라고, 못하게 한다. 친정에서도 엄마가 일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래서 남편이 거의 하는 것 같다. 하하!”


-슬기롭게 명절을 보내는 며느리의 자세랄까. 조언해줄 게 있나.

“음….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라면 힘든 티 덜 내는 게 현명하다. 제일 억울한 게 뭔지 아나. 일은 일대로 하고, 스트레스까지 다 받으면 무슨 소용이야. 잔머리 굴리지 말아야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살짝 애교도 섞어가면서 남편한테 해달라고 하고. 단 시어머니께서 안 보는 곳에서! 어머님들 말씀은 그렇게 안 하셔도 아들이 일하는 거 싫어한다. 어차피 할 거면 가족을 위해 좋은 마음으로 하자. 이게 내 방식이다.”


-얼마 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6이 끝났다.

“만감이 교차한다. 이번엔 특히 감회가 새롭다. 올드미스 영애가 결혼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으니까 말이다. 남들은 결혼은 곧 행복의 시작이라지만 사실은 ‘힘듦’의 시작 아닌가. 그러니 앞으로 풀어낼 이야기도 많지 않을까. 영애의 인생에서 1막은 끝나고 동시에 2막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6’ 포스터. 사진제공|tvN



● 12년째 살아온 ‘영애씨’, 자부심과 아쉬움 공존

김현숙은 2007년 4월 ‘막돼먹은 영애씨’를 시작했다. 올드미스 영애는 길에서 만난 소매치기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만큼 무서울 것 없던 인물.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전부 아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여성이 겪을 법한 부당한 상황과 갈등, 고민에 맞서면서 12년 동안 생명을 이어왔다. 현재 국내 최장수 드라마로 기록됐다. 김현숙이 갖는 보람과 책임감도 상당하다. “중학생 때부터 우리 드라마를 보던 한 팬은 지금 아이 셋을 둔 엄마가 됐다”며 “나도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고 했다.


-한 인물로 10년 넘게 하는 살아가는 일은 어떤 기분인가.

“아쉬움과 자부심이 공존한다. 이제는 제작자 마인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월권은 아니고. 전체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오지랖이라고 할 만큼 많은 이야기를 한다. 드라마가 욕을 먹으면 낙이 없고 힘도 빠진다. ‘영애가 초심을 잃었다’는 말은 정말 힘들었다. 때로는 이걸 내려놔야 하나 싶다가도 또 현장에 가면 생각이 달라지고. 애증의 관계다. 영애도 야생마 같은 기질이 많이 사라졌다. 불의를 보고도 많이 참는다.”


-영애로 살면서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시청자가 반응할 때. ‘막돼먹은 영애씨’가 자신의 인생에 한부분이 됐다는 말을 들을 때.”


-영애는 친구도 많은데, 진짜 김현숙의 친구들이 궁금하다.

“(김)옥빈이. 아! 가수 박선주 언니와 백지연(전 아나운서) 언니와 셋이 자주 만난다.”


-와, 이름에서도 ‘센 언니’ 느낌이 확 온다.

“우리 셋의 조합에 다들 의아해한다. 보이는 것처럼 마냥 센 사람들은 아니다. 하하! 정말 잘 통한다. 와인 마시는 걸 좋아하고, 취하면 선주언니가 직접 노래도 해주고. 우린 마음도 여리고 허술한 부분도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다들 믿지 않지만 은근히 낯가린다. 정말로! 하긴 우리 남편도, 낯가린다는 말을 듣더니 ‘대체 낯의 기준이 뭔데?’ 그러더라. 언니들은 우리 남편을 좋아한다. 진국이라고.”


● 남편은 외조의 왕…나를 ‘바깥양반’으로 불러


-2014년 결혼했으니 이젠 5년 차 부부다.

“남편은 진짜 부산사나이다. 동갑이라 친구처럼 지낸다. 내가 이렇게 밖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지지해줘서 가능하다. 희생을 많이 해준다.”


-호칭은?

“남편은 농담 섞어서 나를 ‘바깥양반’이라고 부른다. 하하! 촬영 끝나고 집에 가면 ‘바깥양반 수고했소! 술 한 잔 하소!’ 그러고. 늘 나에게 ‘천생 연기자다’고 응원해준다. 예술가는 더 많은 걸 경험해야 하니 집안일 걱정 말고 많이 보고 느끼라고. 지금까지 가족한테 많이 희생하고 살았으니 이젠 자신을 위해 살라고. 그런 말을 많이 해준다.”

연기자 김현숙.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아이 낳기 전과 후의 삶은 아무래도 많이 다를 텐데. (김현숙은 2015년 아들을 낳았다.)

“예전에 내 위주였다. 어릴 때 가장 콤플렉스처럼, 어떤 책임감이 컸다. 경제적으로 책임질 게 있어서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었다. 결혼도 하기 싫었고 사실 두렵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두려운 건 있다. 하지만 같이 헤쳐 나갈 힘이 생긴 게 달라진 점이다. 내가 책임질 아이가 있으니 몸도 사리게 된다. 애를 낳고 보니 빨리 죽으면 내 아이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까, 뭐 그런 걱정도 되고. 아이 생각해서 건강도 챙긴다. 옛날엔 내 욕심과 성공이 삶의 목적이었다면 이젠 아이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인생의 화두가 바뀐 거다.”


-어떤 엄마인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남편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너 지금 먹는 거, 노는 거, 다 엄마 카드다’ 그런다. 하하! 철저히 교육한다. 맞아. 나는 능력 있는 엄마이긴 하다. 그래도 바쁜 엄마라서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한다. 우리 엄마 세대는 희생을 강요받았지만 이젠 세대가 조금 바뀌지 않았나. 일하는 엄마가 육아까지 다 잘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니 죄책감 갖지 말아야 한다.”


-남편의 외조가 단연 돋보인다.

“아내는 절대 슈퍼우먼이 아니다. 사실 남편이 거의 맡아서 해준다. 집에서 난 50점도 안 되는 것 같다. 밤샘 촬영을 하고 집에 가면 체력은 방전돼 있다. 그럴 때 남편이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다’ 그렇게 나오면 부부싸움 시작이지. 남편은 녹초가 된 날 보면 무조건 쉬라고 한다. 남편이 육아부터 가사 일을 많이 해주고 있어서 다행히 나는 밖에서 편히 일할 수 있다.”


-부부싸움 할 일도 없겠다.

“가끔? 얼마 전엔 내가 일방적으로 막 잔소리한 적 있다. 정말 미안한 기억인데.(웃음) 밖에서 촬영하고 있는데 휴대전화로 카드 결제 내역이 오더라. 거의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남편이 아들의 집 근처 친구들의 엄마들과도 친해진 모양이다. 다 같이 저녁 먹고 술 한 잔 하면서 시간이 늦어진 거지. 그런 걸 탓하는 게 아니야. 다음 날 어린이집 가야하는데, 애 잘 시간도 지났는데 그 때까지 밖에서…. 그날 집에 가서 정말 바깥양반처럼 ‘노는 걸 탓하는 게 아니라, 아이 생활 패턴은 맞춰야지’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남편이 자기는 지금 육아 우울증인데, 그걸 몰라줬다고 서운해 하더라. 정말 미안했다.”


● 한때 꿈은 세계진출, 이젠 시리즈에 강한 연기자


김현숙은 고향인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연극을 전공했다. 당시 연극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KBS 2TV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출산드라’ 캐릭터로 유명세를 얻은 뒤 ‘막돼먹은 영애씨’를 시작으로 연기에 본격 도전했다. 흥행영화도 여러 편. ‘미녀는 괴로워’, ‘오싹한 그녀’, ‘수상한 그녀’까지다. 지난해 권상우·최강희와 함께한 KBS 2TV ‘추리의 여왕’은 인기를 얻어 28일부터 시즌2를 시작한다.


-은근히 ‘시리즈’에 강한 연기자다.

“안 그래도 ‘추리의 여왕2’를 함께하는 박준금 선생님이 얼마 전 나더러 ”얘, 너 시즌 복 있다‘고 하더라. 맞는 것 같아. 하하! 지상파 드라마에서 1년 만에 시즌2를 방송하는 드라마는 처음이니까. 팀워크가 워낙 좋아서 이런 행운까지 얻었다.”

연기자 김현숙.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연기자로서 김현숙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다 잘할 수 있는데, 요즘 (라)미란 언니가 나타났다. 하하! 언니는 엄마 역할은 정말 독보적이다. 나랑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 언니는 류준열 엄마도 하는데, 나는 신기하게도 엄마 역할이 없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카메오든 뭐가 됐든 좋은 이야기라면 나는 상관없이 많이 하고 싶은데 말이다. 내가 봐도 난 ‘워커 홀릭’이다. 쉬면 감정기복이 심해진다. 매니저한데 분량이 적으면 드라마 두 개씩 잡아달라고 했다.”


-코미디를 주로 하는데, 혹시 다른 장르 욕심도 있나.

“내 기본 감성은 비극이다. 유년 시절 그리 행복하지 않아 그런지 약간 우울한 감성이 더 익숙하다. 오히려 할수록 어려운 연기가 코미디다. 코미디는 눈물을 뛰어넘은 사람이 해야 한다.”


-10년 전 김현숙과 지금 김현숙은 어떻게 달라졌나.

“그때 내 꿈은 세계진출이었지. 하하! 안 된다는 걸 이젠 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거다. 생각해보면 행복지수가 꼭 경제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어릴 때 옥탑방 살면서 꿈을 꿀 때는 막연하지만 많은 걸 바랐다. 이뤄진 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주인공을 해도, 그걸 빼면 나는 조연이이다. 그렇게 경험하면서 현실과 타협하면서 가고 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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