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대처 능력 장착, 최민정 ‘무결점 스케이터’ 진화 비결

입력 2018-02-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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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최민정은 재능, 노력, 정신력을 겸비한 무결점 스케이터로 거듭났다. 최민정이 17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첫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호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노력과 재능 둘 다 있겠지만, 노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생각해요.”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500m에서 17일 금메달을 따낸 최민정(20·연세대)의 말이다. 최민정은 6살 때부터 쇼트트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많은 이들이 이때부터 그의 천재성을 알아봤다. 물론 재능 하나만으로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피나는 노력을 동반해야 가능하다. 최민정이 165㎝·52㎏의 작은 체구로 피지컬이 좋은 서양 선수들을 넘어선 것도 엄청난 노력 덕분이다. 수많은 실전무대를 거치며 멘탈(정신력)을 장착한 것은 덤이다. 이는 최민정이 세계 최고 스케이터의 3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의미다.

여자 쇼트트랙대표 최민정.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무결점 스케이터 진화 비결, 변수대처 능력

기본적으로 쇼트트랙은 변수가 많은 종목이다. 특히 결승에선 상대 선수의 반칙행위로 레이스에 방해를 받더라도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쇼트트랙대표팀 박세우 코치도 “중국 선수들이 작정하고 반칙행위를 하면 우리도 방법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순전히 자기 기량으로 우승하기 위해선 상대 선수의 방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데, 1500m 결승에서 최민정이 그랬다. 4바퀴를 남기고 4위에서 1위로 단숨에 올라선 뒤 격차를 더욱 벌리며 상대가 추월할 기회 자체를 봉쇄했다.

이번 대회 심판진은 레이스 도중 신체접촉에 대해 엄격한 원칙을 적용한다. 비디오판독이 유독 잦은 이유다. 최민정이 13일 여자 500m 결승에서 2위로 골인하고도 ‘임피딩(밀기)’으로 실격 판정을 받은 것도 한층 강화된 신체접촉 규정 때문이다. 같은 날 이 종목 준결승과 남자 1000m 예선에서 중국 선수 네 명(판커신·취춘위·런지웨이·한티안위)이 무더기 실격당한 것은 손을 쓰는 행위에 철퇴를 내리겠다는 심판진의 입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17일 준결승에서 최민정이 보여준 변수대처 능력이 더 인상 깊었다. 한 바퀴 반을 남기고 1위로 달리던 리진위(중국)를 추월하는 과정에서 왼손을 뒤로 뺐다. 찰나를 다투는 시점에서도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변수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 금메달을 따낸 직후 최민정에게 이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니 “(강화한 실격 규정을) 의식했던 측면도 있다. 또 1500m는 500m와 견줘 속도가 빠르지 않다. 원심력을 덜 받으므로 빙판에 손을 대는 횟수가 적다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한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변수에 대처하고 종목의 특성과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해 레이스를 펼치는 챔피언다운 답변이었다.

여자 쇼트트랙대표 최민정.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타고난 천재성을 뒷받침한 노력

최민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훈련량을 소화했다. 아무리 타고난 스케이터라고 해도 피나는 훈련 없이는 변수투성이인 쇼트트랙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 최민정은 남자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서양선수들의 힘과 스피드에 밀리지 않으려 노력했고, 하체의 힘을 키우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최민정 본인도 그간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 선 비결이 노력과 재능 둘 다 있겠지만, 노력의 비중이 더 큰 것 같다.”

특히 한국여자쇼트트랙이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500m에서도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도전정신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 대회 여자 500m에서 보여준 레이스 자체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민정은 엄청나게 빠른 선수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가”라는 이 종목 금메달리스트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의 말은 최민정의 경쟁력을 설명한다. 결승에서 실격 판정을 받았을 때 눈물을 흘린 이유도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피땀 흘려 노력한 대가가 가혹해서였다.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그는 “500m 때와 지금 흘린 눈물의 의미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하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한 게 생각난다는 점은 비슷하다”고 밝혔다.

여자 쇼트트랙대표 최민정.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돌아보면 재미있었다” 멘탈도 1등!

많은 이들은 최민정이 500m에서 실격 당한 이후의 행보를 우려했다. 올림픽에 첫 출전하는 20세 소녀가 자칫 큰 상처를 받지 않을까 가슴을 졸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민정은 이 같은 우려를 순식간에 기우로 바꿨다. 14일 훈련 때부터 싱글벙글하며 오히려 취재진과 팬들을 안심시켰다. “제가 더 잘했으면 상대 선수와 부딪힐 일도 없었겠죠.”

그리고 1500m에서 압도적인 레이스로 금메달을 따내며 모든 아쉬움을 털어냈다. 그는 “500m도 과정에 대해선 후회가 없었다. 돌아보면 재미있는 경기였다. 네 종목에 출전하는데, 첫 출전 종목에 연연하다 보면 다른 종목에 지장을 받을 수 있으니 빨리 잊으려고 했다. 덧붙이자면, 애초부터 500m는 도전하는 종목이었다”고 밝혔다. 천재성과 노력, 멘탈에 변수대처 능력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장착한 최민정의 진화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 최민정


▲생년월일=1998년 9월 9일

▲키·몸무게=165cm·52kg

▲출신교=서현중∼서현고

▲소속팀=성남시청

▲주요 성적(쇼트트랙)=2016년 세계선수권대회 2관왕(여자 1000m·3000m 계주), 2016∼2017시즌 월드컵 4차 대회 2관왕(500m·3000m 계주),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2관왕(1500m·3000m 계주), 2017∼2018시즌 월드컵 1차 대회 전관왕(500m·1000m·1500m·3000m 계주) 및 4차 대회 2관왕(1000m·1500m), 2018평창동계올림픽 1500m 금메달

강릉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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