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이상화, 그대는 월드 스케이팅 레전드니까!

입력 2018-02-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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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 여제’는 끝까지 ‘레전드’의 품격을 보여줬다. 이상화가 18일 강릉오벌에서 펼쳐진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아쉽게 은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며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레이스 내내 아낌없는 응원의 함성을 토해냈던 관중은 끝내 눈물을 글썽인 ‘빙속 여제’에게 “울지 마”를 외쳤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빙속 여제’ 이상화(29·스포츠토토)의 질주는 눈부셨다. 그의 말대로 “후회없는 레이스”를 펼쳤다. 그 자체로 이상화에게 ‘레전드’의 자격은 충분했다.

이상화는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37초33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고다이라 나오(일본·36초94)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2006토리노 대회(5위)에서 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상화는 2010밴쿠버·2014소치 대회에서 연속해 500m 금메달을 목에 건 뒤 평창에서 3개 대회 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세계 빙속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라이벌 고다이라와도 말 그대로 뜨거운 승부를 연출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대표 이상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긴장하지 않은 레전드

단 한 번의 레이스로 순위가 갈리는 이번 대회 특성상 이상화는 14일 1000m에 불참하고 500m에만 초점을 맞춰 준비했다. 2010밴쿠버와 2014소치 대회 때는 1~2차시기 합산 기록으로 순위를 매겼다. 어떻게든 1차시기의 기록을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한 번의 레이스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이상화는 레이스를 두 시간여 앞두고 빠른 속도로 트랙을 한 바퀴 돈 뒤 코치와 대화를 나누고 팬들의 환호에 웃으며 손을 흔드는 등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긴장한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대표 이상화(왼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익숙한 아웃코스와 홈 트랙의 결합

이상화는 고 아리사(일본)와 함께 15조에 편성됐고, 아웃코스를 배정받았다. 기존에는 인코스에서 출발하는 게 유리하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상화의 생각은 달랐다. 이상화는 “어디서 시작하든 상관없다. 2017~2018시즌 월드컵 1~4차대회 때 모두 아웃코스에서 출발했다.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니 어디서 타든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홈팬들의 엄청난 함성도 이상화에게 큰 힘이 됐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대표 이상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최고의 제로백

관건은 100m 구간기록, 즉 ‘제로백’이었다. 제로백을 단축하기 위해선 빠른 스타트가 필수다. 한국스포츠개발원(KISS) 송주호 연구위원도 “스타트만 제대로 되면 충분히 경쟁을 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이날 이상화의 100m 구간기록은 10초20으로 전체 1위였다. 고다이라보다 빨랐다. 이상화의 제로백 기록은 그야말로 레전드급이었다. 400m 구간부터 다소 힘이 떨어진 점이 아쉬웠지만, 그의 폭발적인 레이스는 여전했다.

이상화-고다이라 나오(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고다이라의 그래프가 만든 결과

고다이라의 그래프는 2017~2018시즌 내내 상승곡선을 그렸다. 이번 대회 여자 1000m에서 2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600m 구간까지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페이스를 보여준 터라 500m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이상화보다 앞선 14조에서 레이스를 펼친 그는 36초94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사실상 금메달을 예약했다. 이 같은 부담감 속에서도 10초20의 100m 구간기록을 낸 이상화의 레이스에선 레전드의 품격이 느껴졌다. 단지 고다이라의 페이스가 더 좋았을 뿐이다. 경기 후 트랙을 돌던 이상화는 팬들의 함성을 듣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레전드의 눈물이 팬들의 가슴을 적셨다. “울지마”를 외치는 팬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이상화는 금메달을 차지한 고다이라에게 다가가 축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전드의 품격이었다. 둘의 약속대로 뜨거운 승부를 펼친 뒤 서로를 격려한 장면은 이날뿐만 아니라 평창올림픽의 하이라이트 필름이었다.

강릉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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