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시(詩)는 두고두고 다시 꺼내 읽는 맛이 있다. 읽는 이의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읽히는 게 시의 진짜 매력이다. 연기자 김현숙도 시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중에서도 기형도의 시집을 늘 곁에 두고 읽는다.
지금은 연기자로 익숙한 김현숙은 개그맨으로 먼저 데뷔했다. KBS 2TV ‘개그콘서트’를 무대 삼아 얼굴을 알렸고 연기를 시작한 뒤에도 코믹한 매력이 돋보이는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로 인지도를 높였다. 그가 출연해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 ‘수상한 그녀’ 속 모습도 코믹 그 자체다. 일련의 활약은 김현숙을 코미디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연기자로 보이도록 만들지만 정작 그는 “어두운 감성에 더 가깝다”고 자평했다.
그런 김현숙이 배우가 되길 바랐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20여 년간 읽어온 시는 기형도의 작품들이다. 김현숙은 “기형도의 시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인생의 작품”이라고 했다.
“19살에 기형도의 시를 처음 접했다. 남들은 잘 모르는, 어두운 내 정서에 잘 맞는다고 느꼈다. 가만히 보면 기형도의 시들은 겉으론 어둡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안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연기자 김현숙. 스포츠동아DB
김현숙은 10대 때 읽은 기형도의 시를 20대가 돼서도, 30대를 지나면서도 꾸준히 읊었다.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의적인 느낌을 받는다”며 “곱씹을수록 다른 메시지를 준다”고 했다.
기형도는 29살에 뇌졸중으로 요절한 시인이다. 유년기 우울한 기억과 도시인의 어두운 삶을 담은 개성 강한 시로 주목받았다. ‘입 속의 검은 잎’, ‘안개’ 등이 대표작들이다.
기형도의 시에는 시인이 자라면서 겪은 경험과 감성이 그대로 녹아 있고, 바로 이런 점이 김현숙의 마음을 특히 자극했다. 김현숙은 “지금 돌아보면 나의 유년기의 기억 역시 그리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현숙이 기형도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은유가 많아 더 좋다”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