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애잔한 청춘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죠”

입력 2018-03-0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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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임순례는 “기성세대로서 이 시대 청춘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을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담았다. 주인공 김태리에 대해서는 “한국영화에 뚝 떨어진 대단한 선물 같은 배우”라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영화 ‘리틀 포레스트’로 돌아온 임순례 감독

나도 ‘제보자’ 연출 끝낸 뒤 모든 걸 관둘까 생각
카라 일 전념·시골서 생활…자연과 동물로 힐링
김태리, 피겨 김연아 같은 배우…선물 같은 존재


어떤 영화를 선택하는 일은 전적으로 관객의 마음에 달렸지만 간혹 누구에게나 ‘선물’이 되는 영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보는 것만으로 위안과 행복을 맛보는 그런 영화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제작 영화사 수박)가 그렇다.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시골 고향집으로 내려온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직접 지은 농작물로 밥을 지어먹으며 사계절을 보내는 이야기. 특별할 것 없는 이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기획은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연출을 맡은 임순례(58) 감독의 힘이 절대적이다.

30∼40대 영화감독이 주류를 이룬 영화계에서 50대 후반의 여성감독의 존재는 낯설다. 또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제보자’같은 상업영화부터 규모가 작고 개성이 확실한 이번 ‘리틀 포레스트’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실력자는 더욱 드물다. 게다가 동물보호 등 다양한 사회운동까지 벌인다. 에너지가 상당한 감독은 그만큼 웃음도 많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 현장의 임순례 감독(맨 오른쪽). 사진제공|영화사 수박



● ‘청춘’ 향한 애잔함…“기성세대로서 고민”

‘리틀 포레스트’가 담은 위안의 메시지는 이 시대 청춘을 향해 있다. 영화의 원작인 일본 만화와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이 탄생한 데는 ‘젊은이’를 바라보는 감독의 특별한 시선이 작용했다.

“어느 국가든 젊은이가 그 사회의 핵심 코드이다. 내 조카들도 20대, 30대 초반이다.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걸 옆에서 보면 우리 영화의 혜원과 비슷하다. 직업을 확실히 갖기도 쉽지 않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방황하는 것 같다. 아, 이 친구들이 정말 많이 어렵겠구나. 기성세대로서 그들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애잔한 마음이 있다.” 감독의 말은 계속됐다.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 벌써 ‘3포세대’, ‘N포세대’ 같은 말도 오래됐고. 사실 청춘의 특권은 자유로움과 연애, 정렬 그런 건데. 요즘 아이들은 결혼과 육아도 편히 생각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감독의 시선이 향한 20∼30대 관객은 영화에 다양한 평가를 내놓는다. ‘힐링영화’라는 평가는 기본. ‘설탕 없이도 단맛이 나고 소금 치지 않아도 짠맛이 나는 영화’부터 ‘본격 사표 자극 영화’라는 평도 눈에 띈다.

동시에 영화는 ‘천천히 가도 된다’고도 이야기한다. 이는 임순례 감독의 ‘지향’과 닮았다.

“어릴 때 운동회를 하면 보통 7, 8명이 뛰었다. 내 실력대로면 5, 6등은 할 텐데, 달리다보면 뒤의 아이들이 나를 제치려고 마구 달리는 게 보인다. 그러면 그냥 길을 내줬다. 성향자체가 누군가와 경쟁하는 걸 싫어하니까. 누굴 이겨보고 싶단 마음도 크게 없다. 지금도 운전할 때 끼어들면 전부 비켜준다.(웃음)”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왼쪽부터 배우 류준열-진기주-김태리. 사진제공|영화사 수박



● “김태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

임순례 감독은 한양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제8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1996년 ‘세 친구’로 데뷔했고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작품을 통해 황정민과 박해일, 류승범이 동시에 한국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화계에서 ‘캐스팅이 어렵지 않은 감독’으로도 통한다.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어서다. 김태리가 이번 작품에 참여한 것도 임순례 감독의 존재는 중요했다.

“스켈레톤 윤성빈이나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느낌을 주지 않나. 김태리가 그렇다. 한국영화에 뚝 떨어진, 대단한 선물 같다. 김태리는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레 드러내고, 그 생각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친구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새로운 신예도 발굴했다. 김태리의 친구로 등장하는 진기주이다. 독립영화 쪽 신인부터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까지 두루 물색한 끝에 찾아낸 ‘원석’이다. 임순례 감독은 “통통 튀는 매력, 순수한 성격에 탄탄한 기본기까지 갖춘 친구”라고 했다.

임순례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동물보호 운동, 영화계 성평등 운동도 시작

임순례 감독은 “자연과 동물은 가장 관심을 두는 화두”라고 했다. 이런 자연과 동물은 ‘리틀 포레스트’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감독이 스크린에 담은 사계절은 단순하게는 그 계절의 풍광부터, 세밀하게는 각 계절에 심고 키워야 하는 작물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실제로 감독은 벌써 13년째 경기도 양평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예전엔 국내 여행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집이 자연 그 자체이다. 얼마 전 시나리오 작업하러 여러 곳을 다녔는데 우리 집만큼 조용한 곳이 없더라. 하하! 시골에 살고 고기도 먹지 않으니까 웬만한 건 자급자족이다. 밭에 상추 배추 쑥갓 토마토 같은 거 심고. 아침에 일어나 풀 뽑고 물주는 게 일과의 시작이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도 임순례 감독과 뗄 수 없다. 2009년부터 10년째 카라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진돗개도 안락사 위기에 처한 강아지를 제작진이 입양해 키우면서 촬영했다. 현재 동물에 관한 영화도 구상하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등장하는 진돗개. 사진제공|영화사 수박


“‘제보자’ 연출을 끝낸 뒤 정말 모든 걸 관두고 카라 일에만 전념할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그런데 한쪽 마음은 여전히 영화를 쥐고 놓지 못했다.(웃음)”

이달 새로운 활동도 시작했다. 그를 주축으로 여성영화인이 모인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문을 열었다. “미투 운동보다 먼저 공감대를 나눠 출발했다”고 밝힌 감독은 “여성들이 한국영화 현장에서 성적인 억압 뿐 아니라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고, 앞으로 방향을 함께 고민할 생각”이라고 했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영화로 계속된다. 다음 연출작은 화가 이중섭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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