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러시아월드컵…한국축구가 대단했던 무대로 기억되길”

입력 2018-03-2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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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모습이 늠름하다.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스포츠동아 창간 1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2018러시아월드컵 선전을 다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남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월드컵이 훗날 보기 좋았던 기억으로 남기를…. 한국축구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모든 이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지구촌을 들썩이게 할 2018러시아월드컵 여정을 앞둔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48) 감독의 소박하면서도 당찬 포부다. 월드컵이 개막할 6월이면 신 감독은 정확히 부임 1주년을 맞이한다.

한국축구의 통산 10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지난해 7월 그는 울리 슈틸리케(독일) 전 감독에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이란(홈)~우즈베키스탄(원정)으로 이어질 아시아 최종예선 9·10차전을 앞두고 또 한 번 반복된 소방수의 운명. 그는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두 경기 전부 0-0으로 비기며 어렵사리 대표팀을 회생시켰음에도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누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주도한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전 감독 재부임’ 논란 속에 신 감독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명장에게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욕심 많은 지도자’로 둔갑했다. 러시아~모로코와 격돌한 10월 유럽 원정에서의 부진이 겹쳐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 변명 대신 묵묵히 열정을 쏟았다. 11월 국내에서 열린 콜롬비아, 세르비아와 평가전에서 희망을 확인했고, 12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챔피언십 우승을 통해 탄력을 받았다.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스포츠동아와 창간 10주년 기념 인터뷰를 가진 신 감독은 “나와 대표팀은 국민을 행복하고, 즐겁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매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모든 걸 쏟아 내고, 한 점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 성남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대표팀과 월드컵 사령탑

-월드컵 개막 즈음이면 부임 1년을 맞는다. 대표팀 사령탑은 어떤 자리인가.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어렵다. 중압감과 압박감이 굉장히 심하다. 적어도 A매치가 열리는 날에는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가급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더라. 매 순간이 고민의 연속이다. 경기력이 좋아도, 나빠도 걱정과 고민을 반복한다.”


-대표팀은 아무래도 프로팀보다는 여유롭지 않은가.

“시간적인 여유가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비상시국 아닌가. K리그부터 일본 J리그, 중국 슈퍼리그를 체크하고 유럽축구를 보기 위해 밤을 지새운다. 해외출장도 많이 다녔다. 지난해 9월 이후 매달 보름 정도는 외국에 머물렀던 것 같다. 주중이면 코칭스태프와 모여 전체 회의를 갖고 개개인이 분석한 부분과 과제들을 토론한다. 선수 점검부터 전략적인 활용 등 다양한 내용이다.”

신 감독은 K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 이력을 지녔다. 오직 성남 일화에만 머물며 1992년부터 2004년까지 K리그 통산 401경기에 출전, 99골·68도움을 올렸다. 그러나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23경기에서 3골을 터트렸으나 월드컵 무대는 한번도 밟지 못했다.


-월드컵을 처음 경험하게 됐다.

“대회 개막이 임박하면 달라지겠으나 아직까진 담담하다. 불안하거나 초조함은 없다. 본래 긴장이나 걱정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다. 지금은 우리의 준비와는 별개로 스웨덴, 멕시코, 독일 등 조별리그 상대국들을 어떻게 공략할 수 있을지에 몰두하고 있다. 월드컵 경험 등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은 다른 코치들이 해주고 있다. 지도자 입장이 아닌, 선수들의 입장에서 최대한 체크하고 돕고 있다.”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 성남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죽음의 조? 대표팀 전선 ‘이상 무’

-솔직히 상대국 전력이 대단하다.


“우리 역시 역대 최고의 준비를 하고 있다. 아주 특별한 지원을 받은 2002년을 제외하면 코칭스태프, 경기 분석 담당관 등 최고의 전문가들이 함께 도우며 노력하고 있다. 정보가 많은 팀이 유리하다. 3월 A매치부터는 조별리그에서 상대하는 국가들의 경기를 직접 관전하며 분석한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들도 코치진에게 자세하고, 세세한 정보들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표팀은 북아일랜드(24일·벨파스트)~폴란드(28일·이상 한국시간·호주프)와 유럽 원정 평가전을 앞뒀다. 같은 기간에 전경준 코치는 멕시코 평가전이 진행될 미국으로 떠났고, 차두리 코치는 독일과 스웨덴 평가전 현장을 연속 찾아간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대국들은 어떤가.

“우리의 경기력이 최우선이다. 부족한 부분을 잘 커버하면 누구라도 우리를 쉽게 보지 못할 것이다. 또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경기는 주도하지 못하고, 볼 점유는 많지 않더라도 결과를 낼 여지는 분명히 있다. 모두가 우리를 월드컵 F조 최약체로 꼽지만 충분히 경쟁해볼 만 하다.”

러시아 월드컵 조 추첨식 당시 신태용 감독(가운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월드컵 프로젝트 ‘착착’

-월드컵 베이스캠프 선정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협회 임직원들과 우리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조별리그가 열리는 니즈니노브고로드, 로스토프, 카잔과 수도 모스크바보다 멀다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행거리는 30분~1시간 안팎이라 큰 차이가 없다. 선수들이 모든 걸 잊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라운드 롤링 작업부터 거의 모든 부분이 끝났다. 선수단 숙소 인근에 유명한 궁전과 호수가 있어서 휴식을 취하는 데도 최적의 공간이다.”

대표팀은 6월 12일 베이스캠프에 입성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규정한 ‘1차전 나흘 전 도착’보다 이틀 앞당겨진 스케줄이지만 빠르다고 볼 수 없다. 선수들의 긴장감을 최대한 덜어주기 위함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순간부터 철저하게 긴장모드다. 앞서 열흘 가량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전훈을 실시하며 시차적응을 끝낼 생각이다.


-베이스캠프 내부 정리는 마쳤나.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의견수렴을 받았지만 3월 유럽 원정 기간을 활용해 선수들과 한 번 더 면담한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호텔 측에도 몇 가지 요구사항들을 전달했으나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만약 게임기가 필요하면 10대 이상 가져갈 것이고, 당구대와 탁구대가 필요하면 우리가 직접 공수할 것이다. 선수들이 원하는 모든 부분을 마련하고자 한다.”

U-20 대표팀 당시 신태용 감독. 스포츠동아DB



● 토너먼트의 강자, 이번에도!

신 감독은 토너먼트 무대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친정팀 성남을 이끌던 2010년 당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궜고, 이듬해 국내 프로·아마추어 최강자를 가리는 FA컵 챔피언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비상시국에 놓인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이끈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FIFA U-20 월드컵에서도 쟁쟁한 경쟁을 뚫고 16강에 진입시켰다. 단순한 ‘소방수’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단판승부에서 쉽게 물러선 기억이 없는데.

“토너먼트 대회에 노하우가 있다기보다 순간순간 선수들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한다. 언제고 만회할 기회가 있는 리그를 진행할 때와 오늘의 패배가 곧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단판승부에서의 심리는 다르다. 리듬과 컨디션 유지가 중요하다. 그래도 상황별, 유형별 주요 시나리오에 대한 대처법은 어느 정도 축적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표팀 멤버들에게는 어떤 주문을 하는가.

“더 이상 변화를 줄 수도 없고, 주기도 어렵다. 한정된 인적구성에서 최상의 자원을 선택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가급적 많은 경기에 뛸 것’을 강조했다. 최대한 많이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소속 팀의 컬러와 감독 철학에 맞춰갈 것을 주문했다. 경기력만 갖춘다면 플레이 패턴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팀에서 잘해야 대표팀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본인이 소망하는 월드컵은 어떤가.

“보기 좋은 월드컵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경기는 이길 수도, 질수도 있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 물러서지 않는다. 효율적으로, 그러면서도 정면 돌파로 한국축구의 위상을 조금이나마 높였으면 한다. 대범한 축구를 보여주겠다.”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만족하나.

“과거를 돌아보면 굴곡이 없었던 것도,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부분은 아킬레스건이다. 그러나 지도자로 대부분의 메이저 대회를 경험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소방수로서 갑작스레 팀을 맡아왔으나 이것도 운명이다. 선수로 미처 이루지 못한 월드컵 꿈을 이뤄내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히 경험을 쌓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 참가에 만족할 한국축구가 아니다.”

성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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