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진상헌의 재발견, 신영석의 그림자를 넘다

입력 2018-03-3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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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센터 진상헌(왼쪽)의 트레이드마크는 기발한 세리머니다. 얼핏 보면 진지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구를 쉬지 않고 있다. 이는 챔피언결정전 활약의 비결이다. 사진제공 | 한국배구연맹(KOVO)

대한항공 센터 진상헌(32)을 기발한 세리머니로 떠올리면 단면만 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구를 늘 연구한다. 진상헌의 클러치블로킹이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팬들은 ‘도드람 2017~2018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에서 현대캐피탈 센터 신영석(32)과 진상헌의 라이벌 구도를 곧잘 얘기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상헌이 V리그 최고센터로 평가받는 신영석과 어떻게 대등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궁금해 했다. 세터, 레프트, 라이트에서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에 우세를 점했다. 관건은 리베로와 센터였는데 진상헌의 활약에 힘입어 중앙에서도 버티고 있다.

진상헌은 29일 “나와 신영석의 대결이 아니다. (신)영석이가 100점을 올려도 챔프전은 기록이 아니라 승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진지한 선수가 아니었다. 키(198㎝)만 믿고 배구했던 시절이 있었다. 소질이 없다고 좌절도 해봤다. 이런 진상헌을 바꾼 이는 뜻밖에도 신영석이었다.

진상헌과 신영석은 송전초~인창중 동기동창이다. 친구이자 경쟁자였지만 신영석은 저 멀리에 있는 존재 같기도 했다. 철이 들기 전에는 ‘신영석은 신영석이니까 잘 한다’고 쉽게 생각했다. 모차르트와 샬리에르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줄 알았다. “(신영석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선수”였다.

대한항공 진상헌. 사진제공|KOVO


이런 진상헌은 상무에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았다. “(안)준찬이, (신)영석이와 군에 있었다. 그곳에서 신영석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게 됐다. 그 이후 신영석이 하는 것은 전부 따라하려고 했다.” 신영석이 훈련하면 훈련했고, 연구하면 연구했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보니, 어느 날 배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진상헌은 “배구가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오래 하고 싶어졌다”며 웃었다.

진상헌은 2016~2017시즌 직후 프리에이전트(FA)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항공에 잔류했다. 진상헌은 “돈보다 더 큰 것을 얻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승 그리고 팀에 대한 가치를 알 게 됐다는 뜻이었다. 대한항공은 챔프 1차전에서 매치포인트를 잡아놓고 역전패했다. 데미지가 엄청날 상황에서 후배들을 다독인 선수가 진상헌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기 때문에 패했어도 웃을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진상헌과 대한항공 선수들은 링거 주사를 맞아가며 챔프전을 뛰고 있다. 우승에 단 1승 남겨두고 있음에도 진상헌은 “4차전이 아니라 새로운 1차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평정심을 다짐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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