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오타니, 100년간 잠자던 ML 전설을 깨우다!

입력 2018-04-09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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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18년 베이브 루스의 한 시즌 10홈런-10승 기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전쟁으로 선수 부족했던 보스턴 시범경기에서 루스의 1루수 기용이 계기
시범경기서 150m 장외포로 악어 맞춘 것이 타자 루스 탄생시켜

9일(한국시간)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메이저리그에 충격을 안겼다. 오클랜드 에이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안타와 4구는 단 1개씩만 내준 채 무려 12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이날 1~6호, 10~12호 삼진은 모두 포수의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스플리터였다. 타자들의 스윙 궤적을 피해가는 마구에 현지 언론은 “악마와 같은 스플리터”라고 표현했다. 7~9호 삼진은 시속 99마일(159㎞)까지 찍히는 강속구였다.

정말 무시무시했다. 오타니는 무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따냈다. 이 경기를 지켜본 미국의 많은 매스미디어는 “역사적인 경기”라며 찬사를 보냈다. 오타니는 이에 앞서 타자로서 3연속경기홈런을 쳐내며 투타겸용선수로서 능력을 확인시켰다.

2018시즌 오타니의 화려한 메이저리그 데뷔는 야구역사책 속에서 잠자던 전설의 스타 베이브 루스를 다시 깨워냈다. 공교롭게도 오타니가 노리는 한 시즌 10승-10홈런 도전은 1918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베이브 루스 이후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대기록이다. 참고로 KBO리그는 1982년 해태 김성한이 13홈런-10승을 동시에 달성한 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 전도양양한 왼손투수가 야수로 변신한 계기는?


루스는 191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데뷔해 1917시즌까지 4년간 67승43패를 기록한 전도양양한 투수였다. 1916년에는 23승12패, 방어율 2.07을 기록했다. 9번의 완봉승이 포함됐다.

323.2이닝 동안 단 한 개의 홈런도 내주지 않은 괴물 같은 왼손투수는 1918년 메이저리그 5년차로 아칸소의 핫스프링스를 찾았다. 당시는 아직 플로리다의 그레이프프루트리그나 애리조나의 캑터스리그가 만들어지기 전이다. 모든 선수들이 핫스프링스에 모여 훈련을 했고, 겨울에는 부업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루스가 시즌 준비를 위해 왔을 때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루스의 본격적인 투타겸업은 생각조차 못했다.

루스도 다른 메이저리거들처럼 비시즌 동안 산을 타거나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며 겨울을 보냈다. 매사추세츠주의 추운 겨울 동안 집안을 따뜻하게 하려고 쌓아둔 장작을 매일 도끼로 패며 시간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선수생활 가운데 가장 호리호리했던 22세 시절의 루스는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서 뜻밖에 타자로 출전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 타이 콥(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크리스티 매튜슨(뉴욕 자이언츠) 등의 슈퍼스타들이 참가했다. 그러다보니 팀마다 필요한 선수들이 부족했다.

● 시범경기의 땜질용 1루수가 때린 연타석 홈런이 ML 역사를 바꾸다!

당시 보스턴의 주전 1루수는 딕 호브리첼. 그도 전쟁에 참가하느라 스프링캠프 합류가 늦었다. 에드 배로우 감독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루스를 땜질용 1루수로 낙점했다. 루스는 3월 17일 위팅톤파크에서 벌어진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첫 번째 시범경기에 1루수로 출전했다. 이 경기가 메이저리그의 역사와 야구의 모습, 루스의 야구인생 등 많은 것을 바꿔버렸다.

4회 2번째 타석에서 루스는 장외홈런을 때렸다. 공은 경기장 담장을 넘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설마 했다. 6회 루스는 엄청난 비거리의 장외홈런을 날렸다. 연타석 홈런이었다. 그의 배트에 맞은 타구는 오른쪽 펜스를 훌쩍 넘어서 야구장 밖의 거리를 훨씬 지나 악어농장에 떨어졌다. 너무도 엄청난 홈런에 경기를 지켜보던 두 팀의 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이 경기를 취재하던 보스턴 글로브와 보스턴 포스트는 “루스가 홈런타구로 경기장 밖의 악어를 맞췄다”고 보도했다. 이는 당연히 큰 화제가 됐다.

1915시즌부터 1917시즌까지 3년간 루스는 투수로 출전하면서 4-3-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이런 선수가 비록 시범경기지만 야수로 출전해 연타석 홈런은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타격파워를 보여주자 감독의 생각이 달라졌다.

배로우 감독은 루스의 투타겸업이 투수로만 고정해 출전시키는 것보다 훨씬 팀에 이득이 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결국 루스는 1918년 타자로 95경기에 출전해 317타석에서 11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투수로는 20경기에 등판해 13승7패, 방어율 2.22를 기록했다. 오타니가 올해 도전하는 100년 묵은 기록이다.

루스는 1919년부터 투수보다 타자로서의 비중을 더 높였다. 130경기 432타석에서 29개라는,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홈런을 양산했다. 투수로선 17경기에 등판해 9승5패, 방어율 2.97을 기록했다.

한편 2011년 야구 전문가들은 루스가 위대한 야구선수로 탄생하는 계기가 됐던 그 장외홈런의 비거리를 실측했다. 당시 야구장 도면과 지적도를 참고로 악어농장까지의 거리를 측정했다. 그 결과 홈런의 비거리는 무려 500피트(152.4m)였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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