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만20세·이종범의 아들’ 여전히 뜨거운 이정후의 세 화두

입력 2018-04-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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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그리고 스무살, 그리고 이종범의 아들.’ 2017시즌 신인왕인 이정후(넥센)은 새 시즌에도 변함없이 ‘뜨거운 남자’다. 스포츠동아DB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는 이정후(20·넥센)였다. 아버지 이종범 MBC스포츠플러스해설위원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며 각종 신인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정후는 올해도 11일까지 15경기에서 타율 0.350, 7타점, 10득점을 기록 중이다. 어느덧 잘하는 게 당연해진 걸까. 이정후를 향한 관심은 지난해보다 덜해진 모양새다. 12일 울산 롯데전에 앞서 이정후를 만났다. 이제 막 20세가 된 약관의 이정후는 2018년의 화두에 솔직하게 답했다.

넥센 이정후. 스포츠동아DB



● 2년차 징크스와 슬럼프, 성숙함이 만든 차이

-지난 시즌 종료 후 벌크업에 매진했다. 8㎏을 찌웠지만 웨이트 트레이닝 도중 오른 약지 골절 부상을 당했다. 아찔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부러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웃음). 지난해 전 경기에 출장했고, 시즌 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표팀에 시상식까지 다녔다. 나도 모르게 지쳤다. 재활을 휴식으로 여겼다. 부상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지만, 좋게 생각했다.”


-시범경기까지 타격감이 좋지 않았다. 부상 여파라는 조바심은 없었나?

“있었다. 수요일에 시범경기 종료 사흘 뒤 개막이었다. 그 사이 감이 오를까 싶었다. 코치님들도 ‘초반에는 안 좋을 수 있다. 시즌은 기니까 멀리 보자’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개막부터 성적이 좋아 다행이다.”


-주위에서 2년차 징크스 얘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

“이것도 마음가짐 차이다. 안 좋을 때 ‘이게 2년차 징크스인가?’라고 생각하면 부진은 2년차 징크스 탓이다. 하지만 사이클 때문에 누구나 겪는 슬럼프라고 생각하면 슬럼프일 뿐이다. 아마추어 때는 물론 지난해 중반까지도 한 타석 결과에 일희일비했다. 선배들에게 ‘프로의 마인드’를 배웠다. 주로 1번타순에 나서니까 첫 타석에 안타를 못 쳐도 3~4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그때 잘 치면 된다. 나에게 매 경기는 경험이자 학습이다.”

넥센 이정후. 스포츠동아DB



● 용돈 인상이 행복한 ‘스무 살 청년’

지난해 등번호 41번을 달고 뛰던 이정후는 올해 51번으로 바꿨다. 늘 ‘롤모델’로 언급하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의 배번이다. 42세에 은퇴한 아버지나 45세인 올해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치로. 팬들은 이정후가 이들처럼 20년 이상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남길 바라고 있다. 이정후는 “아직 멀었다. 언젠가 나도 선배가 되지 않겠나. 그때 다시 물어봐달라”며 “주위에서 미국이나 일본 무대 얘기도 하는데, 난 한국에서도 최고가 아니다. 부족함을 채우는 게 먼저다”고 강조했다. 이제 막 20세. 이정후의 야구는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지난 시즌 종료 후 307.4% 상승한 1억1000만원에 연봉 계약을 맺었다. 1년 만에 억대 연봉, 친구들이 부러워했을 텐데.

“아무래도 그렇다(웃음). 지난해 연봉이 2700만원일 때도 친구들을 만나면 계산은 내가 했다. 지난해 한 달 용돈이 70만원이었는데, 올해 100만원으로 올랐다. 인상폭이 적은 대신 신용카드를 받았다. 체크카드가 신용카드로 바뀐 게 가장 큰 변화다(웃음).”


-스트레스는 주로 어떻게 푸나?

“야구장을 떠나면 평범한 20대 초반 남자다. 지난해는 쉬는 날 친구들을 만나서 놀았는데, 올해는 푹 쉴 생각이다. 휴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직은 잠 안 자도 쌩쌩하지만 지금부터 관리를 해야 롱런한다고 배웠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 발탁됐다. 지난해 APBC에서 첫 성인 대표팀 무대를 밟았다. 이번에도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다.

“병역 혜택 생각하기엔 어리다. 이제 막 신체검사를 받았다. 당당히 1급이다(웃음). 선수라면 태극마크 욕심은 당연하다. APBC 때 ‘이래서 대표팀이 좋구나’라는 걸 느꼈다. 대우 자체가 다르다. (김)하성이 형한테 들으니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우는 더 좋다더라. 국가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은 기분 좋다. 뽑히고는 싶지만, 야구를 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 타석, 한 경기에 집중할 뿐이다.”

스포츠동아DB



● 이정후에게 ‘이종범의 아들’은 꼬리표 아닌 자산

이제 이정후가 ‘이종범의 아들’로 불리기보다, 이종범 해설위원이 ‘이정후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2016년까지 만 18년 동안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그림자 속에 살았던 이정후는 지난해 비로소 본인의 이름을 야구팬에게 각인시켰다. 아버지 이종범 위원은 이정후가 아마추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다.


-아버지가 칭찬을 자주 한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못할 때도 늘 ‘잘했다’고 하신다. 나는 아버지의 직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아버지는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다. 결과가 안 좋을 때, 선수가 어떤 기분인지 이미 수십 년 전 겪은 분이다. 무안타 치고 집에 들어가면 ‘괜찮아. 내일 세 개 치면 되는데 왜 그렇게 풀죽어 있어?’라며 어깨 두드려 주신다. 힘이 된다. 물론 내가 어머니 말을 안 들을 땐 항상 어머니 편에 서신다(웃음).”


-이정후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자산인 것 같다.

“친구들만 봐도 비교된다. 친구 몇몇은 부진했을 때 집에 가면 부모님께 혼난다. ‘왜 야구를 그렇게 하냐?’는 꾸중을 듣는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선수 본인이 가장 강하다.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선수는 없다. 잘하려다가 실수가 나오는 건데, 집에서 꾸중 들으면 엄청난 스트레스일 것이다. 부모님과 이런 문제로 다투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아버지가 이종범인 건 내게 행운이다.”

이정후의 올해 목표는 ‘높은 출루율’이다. 박병호~김하성~마이클 초이스 등 중심타선이 강해 본인만 살아나가면 팀의 점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추어 때도 테이블세터로 주로 나섰지만 내가 치는 것만 생각했다. 출루율은 관심도 없었다. 볼넷으로 나가면 짜증났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이정후는 한 해만에 두 뼘 이상은 성장해있었다.

울산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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