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요즘 심판은 예전 심판보다 못 보나

입력 2018-04-16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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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KBO의 빅 데이터가 확인해주는 요즘 심판의 능력
심판 판정을 향한 비난의 강도가 세지고 잦아지는 숨은 이유는
달라진 미디어 환경, 방송장비의 발달에 심판은 괴롭다
공 하나 하나의 가치는 올라가고 심판 선수의 동업자 정신은 사라진다
소통의 창구는 막히고 심판은 더욱 외톨이가 된다


또 심판이 구설수에 올랐다. 시즌 초반인데도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놓고 선수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두산 양의지의 볼 패싱과 한화 이용규의 퇴장 등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와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심판의 권위의식과 오심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글이 올랐다. 이 사안이 국민청원에 오를 대상인지는 나중에 따져볼 일이지만 어떻게 하다가 심판판정이 이 지경까지 비난을 받는지 상황이 참 안타깝다.

심판 특히 주심은 한 경기에 최소 250번 이상의 올바른 판정을 내려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계속 결정을 내리는 것이 판정인지라 심판의 오심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전보다 갈수록 심판의 결정, 특히 볼 스트라이크 판정을 놓고 비난의 소리가 나오는 빈도가 높아졌다. 기자가 궁금한 것은 이 대목이다.

과연 요즘 심판들이 예전의 심판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그 것이 아니라면 심판판정을 향한 비난이 전보다 많아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수치로 본 KBO리그 심판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의 정확성

KBO리그에 스트라이크존을 추적하는 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2009년부터다. 퀘스텍이라는 시스템은 곧 KBO도 받아들였다. 이후 KBO는 모든 심판들의 볼 스트라이크 판정이 야구 룰이 정한 스트라이크존과 맞았는지 여부를 일일이 체크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나온 수치는 비공개다. 심판들 개인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민감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이 스트라이크 볼 추적시스템에서 90%의 이상의 정확도가 나오면 그 심판의 능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합격점의 일반적인 기준이다. KBO리그는 이 수치가 90% 이상을 꾸준히 넘었다. 메이저리그나 일본의 심판들의 수치와 비교해도 더 높으면 높았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시즌마다 수치의 변화는 있지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다. 결국 어느 한 시즌에 심판이 단체로 판정을 못하거나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심판들은 갈수록 비난을 더 많이 자주 받는 것일까?


●환경은 갈수록 심판에 불리하다

한 마디로 세상이 달라졌다. 방송기술의 발달로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모두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심판이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1987년부터 프로야구를 취재했던 기자의 기억에도 오심은 간간이 발생하는 해프닝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심판의 판정이 불신을 받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당시 심판들은 편했다. 우선 모든 경기가 중계되지 않았다. 문제가 생겨도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상황을 떠들어봐야 답이 없었다. 억울해도 참고 넘어갔다.

오심이 문제가 된 것은 연속사진에 찍힌 장면을 보고난 뒤가 대부분이었다. 그 경기를 커버하던 소수 사진기자의 카메라가 잘못을 가리는 유일한 도구였다. 지금처럼 슈퍼슬로모션 화면과 경기장 내의 모든 타구와 피칭의 궤적을 추적하는 장비의 발달은 오심의 근거로 들이댈 증거를 즉시 찾아준다.

예전에는 관중도 적었다. 매스미디어의 현장 취재도 적었기 때문에 오심이 대중에게 알려질 확률도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또 문제가 발생해도 후유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 심판을 더 힘들게 만든다.

매스컴의 절대 수가 적었던 예전에는 뉴스의 수명은 하루 이틀이 고작이었다. 아주 큰 문제가 벌어져야 며칠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어떤 뉴스가 한 번 터지면 확대 재생산된다. 수많은 언론과 유사언론이 인터넷의 바다에서 양비론을 앞세워 뉴스를 확대 재생산하고 왜곡 혹은 증폭시키는 구조다.

자신의 판단기준은 없고 오직 남의 의견과 뉴스를 반복하는 유사 언론이 많아지면서 오심이라는 파도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해일을 만들어낸다. 그 바람에 대중은 하나의 사건을 여래개의 사건처럼 받아들이기 쉬운 환경이다.


●심판을 편들어줄 사람도 없다

예전에는 심판도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 문제가 벌어지면 뒷배경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할 아군이 있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취재한 베테랑 기자들이 소통 통로였다. 10여년 이상 현장을 지켜본 베테랑 기자들과는 경기를 보는 눈과 깊이가 대중과는 달랐다. 어떤 사안이 벌어지면 그 이면을 보고 양측의 얘기를 모두 듣고 잘잘못을 가리는 균형감각과 판단능력은 아무래도 베테랑 기자들이 프로야구 초심자들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심판들의 애로점도 이해하고 판정의 어려움도 알기에 최대한 그들의 입장을 생각했다. 드물지만 비시즌에는 술자리도 같이 하고 저녁도 하면서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통로가 사라졌다. 심판들이 스스로 대화의 통로를 닫아버렸다. 몇 년 전부터 벌어진 일이다. 지금은 심판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서는 심판장의 허락이 필요하다. 다른 심판들은 모두 심판장 뒤로 숨어 입을 다물었다.

그럴 이유도 있었다. 현장에서 취재진들이 대기심에서 특정 사안에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말이 달라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심판위원회는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모든 대기심에서 취재진과의 접촉을 금지했다. 취재진의 심판실 출입도 막고 있다. 물론 이 결정은 공식적으로 취재진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다. 심판들끼리의 내부 결정사항이다.

이런 이유로 소통의 창구가 막힌 심판들이 일방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지는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KBO는 이과 관련해 “소통에서 혼선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창구를 일원화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경기 도중에 일일이 취재진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앞으로는 문제가 생기면 취재진에게 공동 브리핑을 해주기로 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달라진 심판과 선수들의 관계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많은 심판들이 프로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한 뒤 심판이 됐다. 덕분에 이들 심판들과 선수들 사이에는 프로야구를 했다는 동료애가 어느 수준은 존재했다. 이를 야구계는 동업자 정신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이 동업자 정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 선수로 활동했던 많은 심판들이 물러났다. 세대교체를 통해 더 젊어지고 2군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온 더 능력 있는 심판들이 이들을 대신하고 있다.

새로운 심판들은 프로선수로 활동했던 경력이 거의 없거나 아주 적다. 아마추어 야구경험만 있거나 아예 선수경험이 없는 사람도 심판에 도전하고 있다. 갈수록 메이저리그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변해가고 있다. 게다가 선수의 부가가치가 차츰 커지고 투구 하나 안타 하나 1승의 가치가 예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르고 있다. 한마디로 공 하나에 엄청난 돈이 걸린 것이다.

당연히 선수들은 그 공 하나의 목숨을 내걸 만큼 결사적이 되고 심판의 판정에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선수들은 자기중심적이다.

모든 존을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사실 선수의 존은 존재하지 않는다. 야구 룰 공통의 스트라이크 존이 존재할 뿐이다. 혹시나 심판의 특성에 따라 존이 다르다면 그 것에 선수들이 맞춰가야 하겠지만 선수들은 다른 생각이다. 요즘 선수와 심판 사이 반목의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요즘 젊은 선수들은 심판을 같이 야구를 했던 선배 혹은 동료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왜 심판들이 자신들에게 반말을 하는지 젊은 선수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갈수록 서로를 이해할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초창기 KBO는 공정한 판정을 위해 제도적으로 심판들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보장도 해줬다. 그러나 독립성은 차츰 배타성으로 변해갔고 가끔은 선수들에게 반말하는 심판, 윽박지르는 심판의 모습으로 변질됐다.

여론의 질타도 받았지만 현장과 심판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경기를 무리 없이 이끌게 했지만 지금은 그런 행동이 비난을 받는 때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갑질이라는 단어에서 대중의 눈높이가 어디에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러는 사이 양쪽의 팽팽했던 균형과 견제가 차츰 무너지고 더욱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 분노만 쌓이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KBO는 부랴부랴 선수협의회와 긴급회동을 하고 심판과의 사이에 막혀 있던 대화의 물꼬를 트기로 했다.


●무리한 정책의 추진도 심판을 어렵게 만든다

몇 년 사이 극심한 타고투저로 경기시간이 길어지면서 해결책으로 심판이 등장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말처럼만 되면 좋겠지만 이는 쉽지 않다. 그동안 수백만 번의 반복훈련을 통해 스트라이크존 위에 나만의 3차원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내리는 심판이 지시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존이 넓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보다.

운동은 근육의 기억이다. 판정도 마찬가지다. 프로선수들의 변화무쌍하고 빠른 공을 순간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눈과 머리의 반복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응기간을 줘야 한다. 이런데도 자꾸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라고 강요하면 터무니없는 공에도 심판은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세상 어떤 일도 그렇든 단칼에 결정되지 않는다. 조정기간이 필요하다. 그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 급하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상대에게는 엄격한 우리 사회의 문화가 야구장에서도 적용된다.

정말로 투타의 균형을 맞추고 경기시간을 단축하길 원한다면 마운드를 높이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다. 새로운 정책시행을 예고하고 가을 마무리캠프와 스프링캠프를 통해 선수들이 적응할 시간만 준다면 이는 해결이 가능하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 탓에 갈수록 심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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