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김현수-KIA 버나디나-롯데 손아섭-kt 강백호(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과거 2번타자의 최대 덕목은 ‘작전수행 능력’이었다. 1회 선두타자가 출루하면 2번타자에게 번트나 히트앤드런 등 작전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동봉철, 박종호(이상 은퇴), 조동화(SK) 등이 최고의 2번타자로 꼽혔다.
변화의 시작점은 메이저리그다. ‘세이버매트릭스’의 영향으로 2010년대부터 2번타순에 강타자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생산성이 높은 타자가 한 타석이라도 더 많이 들어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3번타자부터 9번타자는 무슨 수를 써도 2번타자보다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설 수 없다.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 매니 마차도(볼티모어),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 등 리그 정상급 타자들이 2번타자를 맡는다.
크리스 브라이언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KBO리그도 수년 전부터 ‘강한 2번’이 종종 언급됐다. 타고투저 흐름에서 한 점을 짜내기 위한 2번타자의 작전수행 능력은 가치가 떨어졌다. 올해부터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다. 16일까지 리그 2번타순의 OPS는 0.814다. 3번(0.844)과 4번(0.990), 6번(0.849) 다음 네 번째다. 5번타순(0.785)을 제친 건 물론, 리그 평균(0.782)을 상회한다. 2번의 OPS가 5번보다 높은 시즌은 1988년 이후 30년 만이다. 면면도 화려하다. 김현수(LG), 로저 버나디나(KIA), 손아섭(롯데), 강백호(KT) 등 팀의 대표 타자들이 2번을 도맡는다.
KBO리그에서 강한 2번을 최초 도입한 건 LG 류중일 감독이다. 류 감독은 삼성 사령탑 시절 박한이를 2번타순에 주로 기용했다. 또한 201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강정호에게 2번타순을 맡겼다. 류중일 감독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2번타자는 장타력이 있는 선수다. 번트를 잘 대는 선수보다는 생산력이 있는 타자가 2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KT 김진욱 감독은 ‘특급 신인’ 강백호를 2번타순에 배치한다. 김 감독은 “멜 로하스~윤석민~유한준~황재균~박경수까지 뒷 타자들이 한 방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투수들이 (강)백호한테 정면 승부를 한다. 자기 타격을 할 수 있는 요건이다”고 설명했다. 강백호는 “2번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가는데, 더 자주 쳐서 오히려 좋다”는 소감을 밝혔다. 정답은 없지만 대량득점이 빈번한 리그 분위기에서는 강한 2번이 매력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