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현장] “용기 알아줬으면”…위안부 피해자 위로 담은 ‘허스토리’ (종합)

입력 2018-06-07 1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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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현장] “용기 알아줬으면”…위안부 피해자 위로 담은 ‘허스토리’ (종합)

무려 6년에 걸쳐 치열하게 진행된 ‘관부 재판’. 당시 일본 열도를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뤄냈지만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희애와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의 뜨거운 열연을 오롯이 담은 ‘허스토리’는 관객들의 마음에 어떤 ‘유의미’한 울림을 전할까.

영화 ‘허스토리’가 7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언론시사회에 이어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을 만났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

‘허스토리’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90년대 초반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을 보고 가슴에 돌멩이 하나 얹고 살아왔다. 10년 전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주위로부터 ‘누가 보겠느냐’ ‘힘든 이야기를 굳이?’라는 이야기에 많이 좌절했다”며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부끄러웠다.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3편정도 썼다”고 고백했다.

그는 “과거 기록을 보다가 관부 재판을 알게 됐다. 이 ‘작은 승리’의 기록이 우리에게 왜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더라. ‘작은 승리’ 안에서 큰 서사를 보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간 피해 사례가 대표적인 민족의 희생양이나 꽃다운 처녀의 짓밟힌 자존심 등 ‘큰 상처’로 환원되어 언급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 각자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다뤄봐야겠다 싶었다”며 “어떤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 명의 여성으로서 여러 인물의 삶과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위안부와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극 중 6년 간 관부 재판을 이끌어가는 당찬 원고단 단장 문정숙을 연기한 김희애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여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부담스러운 숙제였다. 최선을 다해서 진짜처럼 보여야 하니까”라며 “문정숙 캐릭터에 맞게 하려고 머리도 자르고 안경도 끼고 체중도 10kg 가까이 찌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투리와 일본어 등 감독님이 굉장히 완벽주의자였다. 요청에 일본어를 세 달 전부터 외웠는데 감독님이 억양이 마음에 안 든다고 살짝 바꾸더라”며 “머리가 좋지 않은 편인데 대사를 다 외워갔다. 그런데 감독님이 대사를 바꾸니까 굉장히 힘들었다. 최대한 언어와 의상에서 거리감 없이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더 큰 책임감으로 임했지만 사투리 때문에 고충이 많았다고. 김희애는 “처음에는 부산 사투리보다 일본어가 더 어려울 줄 알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부산 사투리가 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며 ”어미 처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한 문장에도 억양이 있더라.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고향인 분들은 이상하다고 하더라. 자면서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할머니들 생각하니까 가짜처럼 보이면 안 되겠다 싶더라.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려고 했다. 부산 사투리 선생님과 거의 매일 만나면서 연습했다. 미국 가서도 계속 전화하면서 노력했다. 그 분의 이모와 친구들, 아버님 등 각계각층의 부산 사투리를 익혔다”며 “최대한 익숙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을 연기한 김해숙은 마음이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 분들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겁 없이 달려들었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그 분들의 아픔의 깊이를 단 0.01%도 알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다는 두려움에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해숙은 “‘연기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다. 나 자신을 비우고 하얀 백지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면서 “힘든 작품이었지만 나뿐 아니라 동료들도 열정적이고 뜨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감독님이 그런 마음을 아시고 보듬어주셨다. 하루하루 연명하면서 잘 버텼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꽃신 할머니’ 이옥주를 열연한 이용녀는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는 뉴스도 피해왔다. 그런데 ‘허스토리’의 시나리오를 받고 더이상 피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내 문제고 우리의 문제고 우리나라의 숙제 같다. 다음 세대까지 가지 않고 이 시대에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참여했다”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김해숙은 “관부 재판의 실화를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생존한 분들도 계신데 아픔과 상처를 딛고 일본에 맞선 그 분들의 뜨거운 용기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작은 위안과 큰 울림을 담은 영화 ‘허스토리’는 27일 개봉한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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