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메시·호날두도 ‘맨발’이었다, 동티모르 소년들처럼…

입력 2018-06-1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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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의 소년들은 내전의 혼돈과 가난 속에서도 앙상한 맨발로 공을 찼다. 반목과 갈등을 딛고 국제대회 사상 첫 우승을 거머쥐기까지 이들의 꿈과 열정은 흙먼지 속에서 피어났다. 사진제공|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동티모르의 한국인 히딩크 감동실화 ‘맨발의 꿈’

앙상한 맨발로 흙먼지 가르는 소년들
내전도 가난도 ‘꿈의 슛’은 막지 못해
‘빈민가 출신’ 메시·호날두처럼…
월드컵 개막…대표팀, 감동을 부탁해!


“골을 막고 골을 넣고, 그게 전부다.”

1992년 한국 축구를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에 진출시킨 독일 출신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의 말이다. 그는 “축구 자체는 그야말로 원시적이다”며 그 경기의 “근본이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를 저작 ‘축구란 무엇인가’에 옮겨 적은 작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상대 골대에 공을 집어넣으려는 두 팀 간에 자유롭게 흘러가는, 단순한 경기”라고 덧붙였다. 17개 조항으로 이뤄진 FIFA(국제축구연맹)의 경기 규칙도 선수의 수, 경기장 규격, 경기 시간처럼 “경기의 형식적 조건”과, 득점을 통해 “승패를 결정하는 법”, “경기가 중단되는 경우 속행 방식” 등 “경기의 틀만을 지시할 뿐”이다.

그렇다면 “득점 확률을 높이기 위해 모든 팀은 상대 팀의 골대 앞쪽에 병력을 집중배치하고 롱패스로 공을 전달하는 단순한 전략으로 일관”하는 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고 장원재 축구 칼럼니스트는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에서 말한다. 그럴 때 중원지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간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핸드볼이나 농구에서는 경기 중 사건이 대부분 골대 앞이나 바스켓 아래에서 벌어지고, 중원은 전략 전술상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축구에서는 두 골대 사이가 바로 거대한 활동 공간이며 그래서 중요한 전략 전술적 차원을 지닌다”(‘축구란 무엇인가’)고 전직 선수 로터만도 말하지 않았는가.

이 같은 전략과 전술을 가능하게 하는 것, 바로 오프사이드(off-side) 규칙이다.

영화 ‘맨발의 꿈’의 한 장면. 사진제공|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계획성과 즉흥성의 변증법, 매혹으로서 축구”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오프사이드 규칙은 “상대 진영에 있는 선수는 같은 편 선수가 패스하는 순간에, 자신과 상대 골대 사이에 상대 선수가 최소한 두 명 있을 때에만 공을 잡을 수 있다”고 밝혀 놓았다. 그 반칙 여부를 가리는 사람은 선심으로, 골키퍼에 앞선 최종 수비수와 공격수가 ‘동일선상’에 위치하는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사람의 눈으로 이를 명확하게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프사이드 규칙 덕분에 선수들은 “공격을 진행할 때면 언제나 무질서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말했다. 단순하게 말해 오로지 득점하기 위해 모든 선수가 상대 팀 골문 앞에서 얽히고설키는 혼란스러움을 막거나, 키가 큰 공격수의 머리를 겨냥해 공중으로 공을 띄워 올려 보내 골을 넣게 하는 단순함을 방지하는 규칙으로서 오프사이드는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때로 수비수들은 ‘일(一)자’ 형태의 수비를 유지하다 상대 공격수가 돌진하는 순간을 포착해 일제히 상대 진영 쪽으로 달려 나가며 ‘함정’(오프사이드 트랩)을 판다. 골을 넣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아가는 공격수의 본능적인 욕망과 그 ‘동일선상’을 찰나에 깨트리는 수비수의 이성적인 판단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장면이다.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이 “축구에서는 많은 것이 즉흥적 착상에 의존하지만, 오프사이드 규칙을 통해서, 선수들에게 자기 행위를 반드시 미리 계획할 것을 요구하는 계기가 생겨난다”면서 “이런 규칙들 안에 포함된 계획성과 즉흥성의 변증법이 축구를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기호체계로 만든 매혹”이라고 쓴 까닭도 거기 있을 테다.

영화 ‘맨발의 꿈’ 속 감독 역 박희순(맨 왼쪽)과 대사관 직원 고창석(가운데 안경 쓴 이)이 동티모르 소년들을 도왔다. 사진제공|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동일선상’의 공은 둥글다

어쨌거나 명확한 것은 축구 경기장 안에서 모든 이들은 ‘동일선상’에 서 있다는 점이다. 공 하나만으로 지구상 모든 대륙을 아우르며 전 세계인들의 열광을 자아내는 스포츠 경기가 있는가. 관중은 관중대로 계급과 신분과 종교, 인종, 빈부의 차이 등을 뛰어넘어 오로지 자신의 팀을 열띠게 응원하고, 또 일정한 수의 사람과 공간만 있다면 스스로도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선수는 선수대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오프사이드 규칙으로 대변되는 질서 속에서 관중을 열광시키며 오로지 몸과 몸으로써만 대결한다.

2004년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작은 나라 동티모르의 가난한 소년들도 그랬다.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을 지닌 나라들에 맞서 소년들은 6전 전승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소년들은 많은 아시아권 나라들처럼 오랜 식민의 아픔을 겪은 조국 동티모르가 그 생채기 안에서 또 다시 내전에 휩싸이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대회에서 우승하기 2년 전 인도네시아로부터 해방된 동티모르는 소년들의 감동적인 활약에 감사해했다.

소년들은 맨땅에서 맨발로 공을 찼다. 축구는 그들의 꿈이었다. 펠레로 상징되는 브라질의 가난한 소년들도 골목과 모래밭에서 공을 차며 놀았다. 브라질의 현란한 축구는 그렇게 실력을 쌓았다. 디에고 마라도나와 리오넬 메시의 조국 아르헨티나 역시 빈민가 아이들을 축구스타로 키워냈다. 오랜 군부독재의 철권통치가 때로 축구를 쥐고 흔들며 체제선전에 악용했을지언정, 이들 나라 사람들은 축구에서 위안을 찾았고 그에 열광했다.

이들 모두 ‘동일선상’에서 출발했다. 오로지 재능과 끊임없이 꿈을 꾸며 운동장에 나서는 노력으로써 한 발 한 발 달려 나아갔다. 동티모르에서처럼 처절한 내전의 와중에 할아버지가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한 크로아티아의 소년 루카 모드리치도 꿈을 놓지 않았다. 한때 영양실조로 정식 선수가 되지 못할 뻔하기도 한 그는 이제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인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중원을 휘젓고 다닌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소년광부’ 출신인 칠레의 알렉시스 산체스도 그 역경의 영웅 명단을 장식하는 스타로 성장했다. 최근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부상을 당하며 눈물을 흘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골잡이 모하메드 살라는 어린 시절 버스로 8시간의 왕복 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고단함 끝에 조국 이집트를 28년 만에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모두 ‘동일선상’에서 꿈을 꾼 덕분이다. ‘동일선상’을 허무는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비록 그 꿈이 무력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들은 꿈으로써 공을 차고 또 찼다.

“숱한 좌절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그들이 묘연한 활기에 들뜰 수 있는 것은, 더욱더 단순하게 분명해지는 욕망 때문”이었을지도, “위선의 거품을 걷어낸 부의 욕망, 성공의 욕망, 골을 넣어 승리하겠다는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은 둥글고, 경기가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승패를 말할 수 없다. 역전의 희망이 남아 있는 한 정해진 승부란 단 한 게임도 없”으니, 우리는 “그 속에서 끝끝내 쓰라린 생애를 견뎌낼 소중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김별아의 소설 ‘축구 전쟁’ 인용)

영화 ‘맨발의 꿈’의 한 장면. 사진제공|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영화 ‘맨발의 꿈’은?

200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한 동티모르 대표팀 선수들과 당시 감독을 맡은 한국인 김신환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촉망받는 선수였지만 은퇴해 사업에 뛰어든 영광(박희순)이 돈을 벌기 위해 날아간 동티모르에서 현지 소년들과 함께 꿈에 도전하는 이야기. 소년들은 내전의 혼란 속에서도 오로지 축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세상에 나섰다. 연출자 김태균 감독은 실제 현지 소년들을 캐스팅해 사실적인 이야기를 완성했다. 2010년 개봉작.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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