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당시 우루과이와 경기를 앞둔 브라질 축구대표팀 선수들. 사진제공|FIFA
그 틈을 우루과이가 비집고 들어갔다. 기지야가 후반 34분 브라질 수비라인에서 가장 약점이었던 비고데를 제치고 골문 쪽으로 달려들며 날린 슛이 네트를 흔들었다. 그 한방으로 승패는 갈렸다. 침묵은 비탄으로 바뀌었다.
시상식은 장례식 같았다. 브라질축구협회의 어느 누구도 우승트로피를 우루과이 주장에게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다. FIFA 줄 리메 회장이 홀로 그라운드에 나가서 우루과이 선수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몇몇 브라질 선수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몇몇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라커룸으로 피신했다. 선수들은 성난 팬들이 두려워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기지야의 그 골은 브라질의 모든 축구팬들에게 영원한 금기어였다. 예상 못한 패배는 몇몇 극성팬에게는 죽음을, 대부분의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슬픔을 안겼다. 선수들은 테러 위험 때문에 한동안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결승골을 내준 골키퍼 바르보사를 포함해 수비수 비고데, 주베날은 오랫동안 브라질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됐다. 말라카낭의 쇼크 이후 20년이 지나도 팬들은 그 경기와 패배의 주역을 잊지 않았다. 은퇴한지 한참 지나서 바르보사를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본 여자 팬이 아들에게 “저 사람이 브라질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든 사람이야”라고 소곤거렸을 정도였다.
2000년 세상을 떠난 바르보사는 “브라질에서 범죄자의 최고형량은 30년이지만 나는 브라질에서 50년을 복역했다”는 한탄의 말을 남겼다.
제4회 월드컵은 브라질에게 많은 슬픔을 안겼지만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입장관중 100만명을 돌파한 성공한 대회로 남았다. 마침내 월드컵이 올림픽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매스미디어 환경과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월드컵의 앞길은 탄탄해졌다. <끝>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