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웃는 남자’, 또 다른 경지에 이른 대한민국 창작뮤지컬

입력 2018-07-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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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한민국도 이런 뮤지컬을 만들 수 있구나. 뮤지컬 ‘웃는 남자’(제작 EMK뮤지컬컴퍼니)가 한국 창작뮤지컬의 또 다른 경지를 보여줬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르의 소설 ‘웃는 남자(L'homme qui rit‧1869)’를 원작으로 만든 이 작품은 탄생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17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투자됐다. 여기에 ‘티켓 판매의 신화’를 이루고 있는 박효신과 ‘뮤지컬계 블루칩’인 김준면(엑소 수호)와 박강현이 타이틀롤을 거머쥐며 화제를 안긴 바 있다. 또 일본 토호주식회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여 내년 4월 도쿄 닛세이 극장에서도 공연된다.

줄거리는 이렇다. 17세기 영국, 어린이 인신 매매단 ‘콤프라치코스’가 기형의 모습을 한 소년 ‘그웬 플랜’을 버렸다. 그는 추위 속을 헤매다 발견한 아기 ‘데아’를 데리고 약장수 ‘우르수스’의 집에 가게 된다. 이후 그웬 플렌은 기이한 미소 덕분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가 되고 그의 공연을 본 조시아나는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웬 플렌 역시 조시아나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우르수스와 그웬 플랜을 사랑하는 데아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걱정한다.


● 압도적인 무대 스케일… 무대+영상+의상 역대급

‘무대’가 공연을 이끌어 간다고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0분 동안 관객들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경이다. 극장에 들어가면서 보이는 ‘그웬 플렌’의 찢어진 입 모양 형태의 무대 가림막 이후로도 조시아나 공작의 의자와 상원의원들의 좌석까지 연결되며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시킨다.

오필영 디자이너는 ‘상처’와 ‘터널’에 착안해 무대를 디자인했다고. 두 사회적 부류가 반대 끝에서 서로 연결돼 존재한다고 가정해 무대를 꾸몄다. 그래서 그런 걸까.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감정은 등장인물들의 의상과 배경의 분위기와는 대조된다. 원색 톤의 의상 밝은 조명,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17세기 귀족들의 무대에선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지만 어두운 톤의 의상과 조명이 있는 가난한 자의 장면은 오히려 따뜻함이 풍겨 나온다.

또한 영상과 더해진 무대는 한국 뮤지컬 사상 최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와 눈보라 치는 벌판, 유랑극단 사람들이 데아와 함께 물을 튕기며 노래하는 강가, 은하수가 연상되는 마지막 장면까지, 무대만 보고 나와도 볼 가치는 충분하다.


● 엑소 수호의 재발견과 주연급부터 앙상블까지 빼어난 실력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에 이어 EMK뮤지컬컴퍼니와 두 번째로 손을 잡은 김준면(엑소 수호)은 ‘웃는 남자’로 뮤지컬 배우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김준면이 표현하는 ‘그웬 플렌’은 소년의 모습이 가득하다. 그는 함께 큰 데아와의 사랑,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갈망, 지배층을 향한 분노와 약자를 위한 마음 등을 순수한 매력으로 연기했다. 또한 깨끗한 음색은 그의 소년미를 더 부각시킨다.

타이틀롤인 김준면을 제외하고도 ‘웃는 남자’에서는 배우들이 빼어난 실력으로 무대를 사로잡는다. 거칠지만 자기 사람에게만은 한없이 따뜻한 우르수스 역에 양준모는 가장 공감가게 하는 캐릭터로 다가간다. 뮤지컬 ‘모차르트’ 넘버 ‘황금별’ 하면 기억나는 배우 신영숙은 ‘웃는 남자’를 통해 새로운 인생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조시아나 공작부인으로 분한 신영숙은 팜 파탈 매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웬 플랜과 순수한 사랑을 하는 데아 역에 이수빈도 뛰어난 가창력과 장님 연기를 펼친다.

주연배우를 제외하고서라도 아역, 앙상블 배우들 역시 눈 뗄 수 없는 실력으로 관객들에게 감탄을 자아낸다. 유랑극단 단원의 모습부터 귀족들로 변신하는 앙상블은 극의 매력을 한층 높인다. 특히 ‘곰’은 시선을 강탈한다.


● 아름다운 멜로디 수놓은 넘버 多, 이야기는 다소 아쉬운

프랭크 와일드혼과 잭 머피 콤비의 작업으로 탄생된 ‘웃는 남자’의 음악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작품에 수를 놓는다. 집시의 열정이 느껴지는 음악부터 데아와 그웬 플렌의 순수한 사랑 느껴지는 넘버, 그리고 클래식하면서도 강함이 느껴지는 귀족들의 넘버까지 각 캐릭터의 이미지가 느껴지는 곡들이 가득하다. 또한 극 중에 투입된 바이올리니스트는 배우들의 숨겨진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근원적인 질문을 안고 가는 뮤지컬 ‘웃는 남자’는 메시지 적으로는 단순하게 가는 것을 택해 아쉬움이 남는다.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빈부의 대립과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170분이라는 시간에 다 담으려다 보니 눈으로 보는 엔딩은 아름다웠지만 다소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웃는 남자’는 초연부터 ‘월드클래스’에 위력을 보여준 것은 확실하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8월 26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월드프리미어로 화려한 막을 올린 뒤 2018년 9월 4일부터 10월 28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된다. 문의는 EMK뮤지컬컴퍼니.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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