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에도 내야 한 쪽을 비우는 ‘극단적 시프트’가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기습번트로 이 시프트를 깨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포들의 자존심 문제에 번트의 어려움까지 더해지며 ‘정면승부’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사진은 기습번트를 대고 있는 SK 최정. 스포츠동아DB
● 자존심과 어려움, 그 사이
이러한 의문은 KBO리그보다 먼저, 그리고 더 강한 시프트를 시도한 메이저리그에서도 화두였다. NC 다이노스 유영준 감독대행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흥미로운 주제다. 비어있는 내야를 보면 ‘저쪽으로 타구를 굴려라!’며 답답한 팬들이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 대행을 비롯해 롯데 자이언츠 조원우 감독, KT 위즈 김진욱 감독은 “타자들의 자존심 문제다. 중심타자들은 번트를 대서 살아나가는 것보다 제 스윙으로 투수와 야수진을 이겨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습번트를 일종의 ‘편법’처럼 여긴다는 의미다.
대부분 타자들은 ‘정타를 때린다면 시프트를 뚫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LG 트윈스 이천웅은 “왜 타자들이 번트를 대지 않는지 생각하면 답은 오히려 간단해진다. 한 쪽 내야가 비어있다고 지나치게 의식하면 오히려 내 스윙이 안 나온다. 스윙이 제대로 나온다면 아무리 좁은 공간도 뚫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LG 김현수 역시 “번트를 대고 살아봐야 의미가 없다. 내가 1루 주자로서 할 작전이 많지 않다. 극단적인 시프트는 경기 초반에 많이 걸린다. 이때는 내야안타로 1루에 살아나가는 것보다 장타를 치는 게 팀에 보탬이 된다”고 주장했다.
‘의도적 밀어치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이들도 있다. NC 나성범은 “150㎞의 몸쪽 속구에 번트를 대는 것은 오히려 어렵다”며 “팀이 내게 바라는 것은 장타다. 상대 수비가 시야에 들어오더라도 난 투수와 싸운다. 타격감이 정말 안 좋을 때라면 시도의 고민 정도는 하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내 스윙만 하면 뚫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두산 베어스 김재환 역시 “번트를 댄다고 100% 살아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시프트 덕에 안타가 나올 가능성도 있으니 손해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현장 사령탑들의 이야기처럼 ‘자존심’의 문제가 상당한 이유를 차지한다. 장타를 치는 것이 팀에 더 보탬이 된다는 것이 선수들의 의견이다. 그와 동시에 번트가 마냥 쉽지 않다는 것도 정공법을 유지하는 이유다.
● ‘기습번트’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반면 기습번트로 재미를 본 이들도 있다. 한화 이글스 제러드 호잉은 3월 24일 고척 넥센히어로즈전에서 KBO리그 데뷔 첫 타석, 초구를 상대로 3루쪽 기습번트를 대서 살아나갔다. 시프트가 낳은 결과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기습번트 시도를 지양한다. 그는 “장타를 쳐야하는 타순을 맡고 있다. 내 스윙에 집중한다”며 “시프트를 뚫기 위해 강한 타구 생산에 신경 쓴다”고 밝혔다.
롯데 채태인도 올해만 두 차례 번트안타를 때려냈다. 그는 “타격감이 안 좋을 때는 그렇게라도 살아나가야 한다”며 “시프트 탓에 안타를 빼앗기면 아쉽지만 번트안타처럼 행운도 있다. 앞으로도 극단적 시프트가 걸리면 번트를 댈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