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MLB Tracker] 40년 전처럼 기적이 필요한 양키스

입력 2018-08-08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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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저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메이저리그의 최대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의 운명이 일찌감치 결판나는 분위기다. 8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보스턴(80승34패)이 양키스(70승42패)에 무려 9게임차로 앞서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이달 3~6일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파크에서 벌어진 두 팀의 4연전이 결정타였다. 선발은 물론 믿었던 불펜까지 무너진 양키스가 보스턴에 치욕의 싹쓸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팀당 50경기 안팎만 남은 상태라 양키스가 열세를 뒤집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른 지구였다면 1위를 꿰차고도 남았을 법한 성적의 양키스지만, 벌써부터 지구 우승은 라이벌에게 양보한 채 힘겨운 와일드카드 레이스로 내몰렸다.


● ‘부상병동’으로 전락한 양키스


현재 양키스 라인업에선 투타의 핵심선수들이 대거 빠져있다. 우익수 애런 저지(오른쪽 손목 골절)를 비롯해 포수 게리 산체스(오른쪽 사타구니 염좌), 좌완 선발투수 JA 햅(수족구병 감염) 등이다. 차, 포, 마라고 표현할 수 있는 비중의 선수들이다. 산체스는 지난달 25일, 저지는 지난달 28일, 이적시장 폐장을 앞두고 토론토에서 데려온 햅은 이달 3일(7월 31일로 소급 적용) 잇달아 10일짜리 부상자명단(DL)에 등재됐다.

저지의 공백이 가장 아쉽다. 저지는 DL에 오르기 하루 전 캔자스시티와의 홈경기에서 투구에 손목을 맞았다. 수술 없이 재활을 택했고, 회복에는 최소 3주가 필요한 것으로 발표됐다. 아직 배트를 휘두르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복귀 시점도 오리무중인 실정이다. 당분간 더 지켜봐야 한다. 부상 이전까지 타율 0.285, 26홈런, 61타점으로 타선을 이끌었던 저지가 이탈한 뒤로 양키스는 8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까지 11경기에서 5승6패로 5할 승률을 밑돌았다. 저지는 보스턴 원정 4연패 동안 덕아웃에서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잔여 일정도 만만치 않은 양키스

이제 양키스로선 보스턴과 남은 6경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9월 이후 홈과 원정을 오가며 보스턴과 2번의 3연전을 치른다. 9월 19~21일에는 양키스타디움, 9월 29일~10월 1일에는 펜웨이파크에서다. 보스턴 원정 3연전을 끝으로 정규시즌을 마친다. 이달 초 4연전까지 포함한 올 시즌 13차례 맞대결에선 양키스가 보스턴에 5승8패로 밀렸다.

이처럼 현재 상황은 분명 양키스에 절망적이다. 9게임차를 극복하려면 잔여 레이스에서 보스턴이 승률 5할(24승24패)에 그친다고 가정하더라도 양키스는 무려 35승15패 이상의 경이로운 질주를 거듭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양키스에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도 비추고 있다. 다만 ‘밤비노의 저주’를 끊은 뒤로 그 옛날의 보스턴은 사라진 상태다.


● 1978년 14게임 차 뒤집은 양키스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 양키스는 보스턴을 상대로 기적 같은 역전극을 펼쳤다. 양대리그 공히 동·서부지구로만 나눠져 있던 때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선 초반부터 보스턴의 기세가 대단했다. 반면 1977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이었던 양키스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7월 18일 양키스가 캔자스시티에 7-9로 패하면서는 선두 보스턴과의 간격이 무려 14게임차까지 벌어졌다. 양키스가 47승42패, 보스턴이 61승28패.

2010년 작고한 ‘독재자’ 조지 스타인브레너 당시 양키스 구단주는 결국 빌리 마틴 감독을 해고하며 채찍을 꺼내들었다. 이어 봅 레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로 양키스는 무려 48승20패를 기록하며 같은 기간 37승31패에 그친 보스턴을 마치 거짓말처럼 따라잡았다. 162게임을 치른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99승63패로 동률.

결국 10월 3일 지구 우승을 놓고 원 게임 플레이오프가 펼쳐졌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론 기드리(25승3패·방어율 1.74)를 앞세운 양키스가 보스턴에 5-4 역전승을 거두고 지구 우승을 거머쥐었다. 양키스는 여세를 몰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선 캔자스시티를 3승1패, 월드시리즈에선 LA 다저스를 4승2패로 제압하고 통산 22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지금까지도 두 라이벌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으로 희비가 엇갈렸던 한 해로 기억되고 있다.


#CLIP=1978년 AL 동부지구의 파란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가 지금처럼 동·중·서부의 3개 지구로 나뉜 때는 1994년이다. 그 전까지는 동·서부지구로만 갈려있었다. 양키스가 극적으로 역전우승을 차지한 1978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는 양키스를 비롯해 보스턴, 볼티모어, 토론토,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밀워키 등 7개 구단이 속해있었다. 서부지구 7개 팀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캔자스시티, 미네소타, 오클랜드, 시애틀, 텍사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였다. 내셔널리그 동·서부지구에는 나란히 6개 팀씩이 있었다.

전년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었던 양키스는 1978시즌 전반기 46승38패(승률 0.548), 후반기 54승25패(승률 0.684)로 꽤나 상반된 경기력을 보여줬다. 보스턴의 독주에 밀려 8월초까지는 3~4위를 오르내렸다. 7월 17일(이하 현지시간) 캔자스시티전 패배로 선두 보스턴에 14게임차로까지 멀어졌던 양키스는 5연승과 3연승을 한 차례씩 거두며 10게임차 안으로 진입한 가운데 7월을 마쳤다. 이어 8월 19승8패, 9월 22승8패를 기록하며 보스턴(8월 19승10패·9월 14승15패)을 따라잡았다. 9월 13일 디트로이트를 7-3으로 제압하면서는 오히려 보스턴에 0.5게임차로 앞섰다.

양키스는 시즌 161번째 경기를 끝냈을 때까지 보스턴에 1게임차로 리드했다. 그러나 정규시즌 마지막 날인 10월 1일 양키스가 클리블랜드에 2-9로 덜미를 잡힌 반면 보스턴은 토론토에 5-0으로 이겨 99승63패로 공동 1위가 탄생했다. 다음날 보스턴의 안방 펜웨이파크에서 시즌 100승과 지구 우승을 놓고 운명의 단판승부가 펼쳐졌다.

3만2925명의 관중이 지켜본 이날 경기에서 보스턴은 2회와 6회 1점씩을 뽑아 승기를 잡은 듯했다. 그러나 7회 9번타자인 유격수 버키 덴트의 역전 결승 좌월3점홈런, 8회 지명타자 레지 잭슨의 중월솔로홈런으로 양키스가 5-4 역전승을 거뒀다. 양키스 선발 론 기드리는 6.1이닝 6안타 2실점으로 시즌 25승째(3패)를 신고했다. 양키스에는 기적, 보스턴에는 악몽 같은 시즌으로 남은 이해 보스턴의 사령탑은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양키스 벤치코치로도 일한 돈 짐머였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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