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김현수. 스포츠동아DB
LG 트윈스 김현수(30)의 오랜 신조다. 초록빛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그의 얼굴엔 늘 미소가 뒤따른다. 숱한 위기에 닿았고, 수없이 난관을 넘어서온 베테랑의 태연함이다. 이렇듯 김현수는 2018시즌 LG에 불어 닥치는 풍파에 묵묵히 맞서고 있다. 정신적으로나 전력적으로나 그는 이미 명실상부한 팀의 중심이 됐다. 15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까지 소속팀의 115경기에 모두 출장하며 타율 0.360(445타수 160안타), 20홈런, 99타점을 기록했다. 이날도 결승 2점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3타점의 만점 활약으로 팀의 13-4 승리를 이끌고 3연패 탈출에 일조했다.
● 몸은 달라도 마음은 같으니까
‘타격 기계’ 김현수의 기량을 두고선 더 이상 논할 것이 없다. 타율, 안타, 득점, 타점 등 각종 타격 지표 상위권에 당연한 듯 자신의 이름을 올려뒀다. 2번부터 5번까지 어느 타순에 가져다 둬도 제 몫을 해내는 김현수는 LG 타선의 믿을 구석으로도 통한다. 강력하고도 꾸준한 활약은 김현수가 사랑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팀의 전 경기에 나서고 있다. 체력적인 어려움은 없나?
“힘들다. 힘들지만 경기에 나갈 수 있을 때 많이 나가는 것 자체가 참 감사한 일이다. 감독님께서 선수를 믿어주는 만큼 선수에게도 큰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책임을 잘 지키기 위해 몸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힘들어도 이 정도는 모두 똑같이 힘든 수준이라 생각한다.”
-날이 더워도 에어컨 앞에 가지 않고 덕아웃 앞에 서서 경기를 본다. 이유가 있나?
“나만 더운 게 아니지 않나. 다같이 더운 거다. 에어컨 앞에 서면 시원한데, 곧 그 시원함이 사라지면 더 덥기도 하다. 덕아웃 벤치에 앉으면 경기가 잘 안 보인다. 야구를 더 잘 보려고 자주 덕아웃 앞에 서서 본다.”
-각종 타격 성적에서 스스로를 뛰어넘고 있다. 원동력이 뭘까?
“아무래도 많은 시즌을 치르면서 쌓아온 정신력이다. 2012년에 3할을 못 쳤다. 가장 어려운 시기였고, 가장 많은 걸 깨닫기도 했다. 가장 좋을 때 가장 안 좋은 일이 오고, 가장 안 좋을 때 가장 좋은 일이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상황을 차라리 겹쳐서 생각하는 거다. 편안하게. 항상 기분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덕분에 타격 슬럼프가 찾아오더라도 금세 털어내는 것 같다.
“몸은 똑같을 수 없지만, 마음가짐은 늘 똑같이 할 수 있다. 안 좋은 날도 좋은 날처럼, 좋은 날도 안 좋은 날처럼. 지금 타격감이 좋으니 이걸 유지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언제 최악이 올지 모르니 지금의 영상을 많이 보려고 한다. 최악이 왔을 때, 좋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할 수 있게끔. 항상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주위에선 김현수를 두고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고들 한다. 본인 생각은 어떤가?
“나는 노력형 선수라고 생각한다. 재능이라면 부모님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몸을 물려주신 거다. 나머지 것들은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키 크려고 저녁 8시면 자고 아침 6시면 무조건 일어났다. 부모님께서도 그 시간이면 집에 있는 불을 모두 껐다. 당시엔 인터넷도 잘 되지 않을 때인데 아버지께서 키 크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을 찾아와 냉장고 앞에 붙여두셨다. 고등학교 1~2학년 때까지는 탄산도 안 마셨다.”
LG 김현수.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나를 지키는 일, 후배를 이끄는 일
김현수가 LG에 새 둥지를 튼 뒤 ‘변화’라는 단어가 꾸준히 따라 붙는다. 팀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채은성을 비롯한 유망주 후배들의 잠재력을 터트린 데 앞장섰다는 평가다. 김현수는 얼떨떨하다. 평소 지켜온 자신의 모습 그대로인 까닭이다. 김현수의 철저한 자기 관리는 자연스레 팀 후배들의 좋은 본보기가 됐다.
-LG에 웨이트 열풍이 불게한 주역이다.
“나는 그저 내가 가진 루틴을 따른 거다. 체력이나 힘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웨이트를 한다. 여기에 후배들이 같이 하겠다며 하나 둘 시작하다보니 선수들 저마다의 웨이트 루틴을 갖기 시작했다. 야수를 담당하는 곽현희 트레이닝 코치님께서 워낙 체계적으로 잘 챙겨주신다.”
-함께 중심 타선을 이루는 채은성이 몰라보게 성장하면서 본인의 득점 기록도 올라갔다.
“은성이도 타점이 오르니 자신에게 좋은 것 아닐까? 서로 윈윈이다(웃음). 은성이는 내가 보듬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도 관리를 잘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그걸 지켜보면서 ‘올 시즌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안 나면 내가 미안한 일이다. 다행히 성적이 잘 나와 좋다.”
-참 많은 후배들이 김현수를 따른다. ‘리더’ 김현수는 어떤가?
“난 리더십이 강한 편이 아니다. 성격이 워낙 강하다. 후배들 입장에서는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다. 리더십이 좋은 사람은 언제나 차분할 줄 알고, 언제나 팀을 한결같이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데, 평소에 워낙 많이 떠들다보니 밖에서는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LG 김현수.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야구가 재밌다
“경기에 많이 나가면서 쌓은 노하우다. 후배들도 지금 2~4년 1군에서 뛰다보면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시기다. 나 역시 그런 시기들을 많이 겪다보니 이제는 인상 써도 하루, 웃어도 하루면 웃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야구장에서 웃으면 안 되고, 무조건 전투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매일 야구를 하는데, 스트레스만 받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하는 게 좋지 않나. 그래서 선수들과 많이 웃으려고 한다.”
-평소 상당한 수다쟁이라고 들었다.
“후배에게 장난을 많이 친다. 장난을 좋아하고, 누군가 긴장한 것 같다 싶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아 화장실 가고 싶네’하는 식이다. 그런 이야기로 한 번 웃고 타석에 나가면 더 집중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잘하는 선수들한테는 독설을 많이 하고, 정말 힘들어하는 선수들에겐 이야기나 조금 더 하려고 한다. 여유를 갖자는 의미다. 좀 더 여유 있게. 누가 봐도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이 강해보이니까.”
-벌써 오랜 경력을 쌓았다. 아직도 야구를 하며 설레는 순간이 있을까?
“여전히 야구장에 나와 야구를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 그래서 선수를 더 하고 싶고,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야구를 좋아하고, 아직 재미있다. 내가 원하는 야구를 아버지가 시켜주셨고, 나도 야구를 좋아해서 선수를 했으니 내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김현수에겐 끊임없이 숙제가 주어진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의 주장을 맡은 데다 대회 개막 전까지 소속팀에서 치르는 정규리그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나 혼자 잘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같이 못해서 지는 것이다. 경기에서 이겼다면 다같이 잘한 것이다. 우리 팀에서 간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