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오버타임] 박항서-이동국과 닮은 김학범-손흥민의 운명은?

입력 2018-08-2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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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2002년 가을이다. 어느덧 16년이 흐른 만큼 어느 것 하나 선명한 기억은 없다. 다만 그날 하루 구덕운동장에서 올려다본 부산의 하늘은 유독 높고 고왔던 것 같다. 10월 10일, 부산아시안게임 축구 준결승 한국-이란전이 열린 날이다.

그날 그곳에선 2만5000여명의 관중이 연장까지 득점 없이 비긴 뒤 이어진 승부차기를 숨죽인 채 지켜봤다. 벤치의 박항서 감독도, 그라운드의 이동국도 마찬가지였을 터. 2번째 키커로 나선 이영표의 슛이 크로스바를 때린 순간, 과연 그들 모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잘 알려진 대로 결과는 3-5, 한국의 패배였다.

그 당시 이동국에게는 금메달이 절실했다. 부산아시안게임에 동반 출전한 후배 박지성, 이천수, 최태욱 등은 월드컵 4강 멤버로 이미 병역을 면제받았다. 한일월드컵 개막 직전 대표팀에서 탈락한 그의 안타까운 처지에 연민의 정을 느낀 많은 팬들도 이동국을 응원했다. 안방 아시안게임은 이동국을 포함한 일부 병역미필 선수들을 위해 차려진 밥상 같았다.

박 감독도 우승을 간절히 원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월드컵 4강 신화에 기여한 그는 부산아시안게임을 통해 지도자 변신 이후 처음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아시안게임까지로 한정하려던 대한축구협회에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협회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한 그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항의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동메달에 그친 뒤 그들의 축구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동국은 5개월 뒤 군(상무)에 입대했다. 2006년 4월에는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월드컵이 아니라 수술을 위해 독일로 떠났다. ‘불운의 아이콘’이 따로 없었다. 박 감독은 경남FC(2005~2007년)와 전남 드래곤즈(2008~2010년)를 거쳐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상주상무 지휘봉을 잡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명문구단들과는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K리그에선 이렇다할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박 감독 스스로도 올 2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해 “솔직히 나는 한국축구에서 거의 퇴출된 상태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 김학범 감독(왼쪽)-손흥민.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남자축구대표팀이 23일 오후 9시30분(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치카랑에서 숙적 이란과 16강전을 펼친다. 이란을 넘더라도 금메달까지는 첩첩산중이다. 이제부터는 지면 끝장인 토너먼트 단판승부다.

우리 대표팀의 우승 여부는 어느덧 세계축구계의 관심사가 됐다.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손흥민 때문이다. 그의 여러 친구, 선후배들은 4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미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번에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경력단절 없이 유럽무대를 주름잡을 수 있다. 그의 소속팀 토트넘은 물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손흥민의 활약상과 한국의 경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남자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학범 감독의 행보에도 눈길이 쏠린다. ‘학범슨’이라는 애칭에서 드러나듯 김 감독은 한국축구의 대표적 지략가로 통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그에게도, 한국축구에도 2020년 도쿄올림픽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목표한 대로 아시안게임을 제패한다면 김 감독의 앞날은 탄탄해지고, 2년 뒤 또 한 번 올림픽 메달을 꿈꾸는 한국축구에도 서광이 비출 수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손흥민과 김 감독 모두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하기를 바란다. 손흥민은 훨씬 더 자유롭게 유럽무대를 누비고, 김 감독은 2년 뒤 올림픽에서 웅지를 활짝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6년 전의 이동국, 박 감독과 비슷한 처지지만 결말은 크게 달랐으면 한다. 이동국과 박 감독도 쓰라린 패배를 딛고 일어나 각각 ‘K리그의 전설’과 ‘베트남의 히딩크’가 됐지만, 손흥민과 김 감독에게는 더 큰 기회의 문이 열렸으면 한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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