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대한항공 신영수 과장의 새 인생

입력 2018-09-2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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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 신영수 과장은 2005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대한항공의 공격을 책임졌다. 은퇴 후 운동복 대신 양복과 구두를 갖춰 입은 직장인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현역 시절 경험을 살려 배구 꿈나무를 가르치는 일도 맡았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깐 것이다. 매일 6시에 지하철을 타고 서울 송파에서 발산동의 구단 사무실까지 출근하고 있다. 오전 8시 30분이 회사의 공식 출근시간이지만 이른 아침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지하철로 직장까지 출근하는 새 기쁨을 알았다. 간혹 회사일로 늦거나 동료 혹은 일과 관계되는 사람들과의 저녁자리에 참석하느라 막차시간 즈음에 귀가할 때도 있다. 그 때 필요했던 것이 지하철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이제 몇몇 지하철역의 막차시간은 머릿속에 입력됐다.


● 선수와 2번의 죽음, 첫 죽음을 받아들인 선수 신영수

대한항공 신영수는 2018년 6월 30일을 끝으로 14년간의 프로배구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2005년 실시된 V리그 첫 신인드래프트 1순위 출신으로 대한항공 점보스의 우승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뒤 내린 결정이다. 통산 342경기 출전, 3323득점의 기록은 대전 중앙고 시절부터 특급선수로 큰 기대를 받아왔던 신영수가 자랑스러워하는 훈장이다. 다행히 선수생활 마지막 해에 팀은 첫 우승을 했다. 비록 주전으로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우승멤버의 한사람으로 뛰었다는 사실은 은퇴결정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선수는 2번 죽는다. 첫 죽음은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퇴할 때 찾아온다. 예측은 가능하다. 팬들은 당분간 그의 이름을 기억하겠지만 차츰 그들로부터 잊혀질 것이다. 모두에게 서서히 잊혀진다는 것. 그래서 죽음이다. 두 번째는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하늘의 부름이다.

첫 번째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인 그는 ‘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 신영수 과장’이라는 새로운 명함을 받고 다시 태어났다. 저지와 운동화 대신 양복과 구두가 새로운 유니폼이다. 직장생활 석 달 남짓, 그는 직장인의 애환을 차츰 이해하고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아내는 “선수를 그만두겠다”는 남편의 말에 쿨하게 반응했다. “이제 주사 안 맞아도 되겠네”라고 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 대한항공 선수단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고, 자신도 있지만 잦은 허리부상으로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선수시절 신영수. 사진제공|KOVO


● 은퇴 전의 마음, 은퇴 이후의 현실생활

겉으로 드러내놓지는 않았지만 1년 전부터 은퇴가 다가왔음을 스스로 알았다. 하지만 선수의 마음은 간사하다. 자기 스스로도 더 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지만 단 1%의 가능성에 무모하리만큼 매달리는 것이 선수의 마음이다. 신영수도 그랬다. 스스로 은퇴를 염두에 두면서도 막상 “이제 프런트에서 일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에 즉답을 주지 않았다. 아내의 찬성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기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다른 선택의 길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로선수들은 일반인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많은 연봉을 받는다.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지만 사람들은 많은 액수만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갖는 호기심 가운데 하나가 선수시절과 직장인시절 연봉의 차이다.

신영수 과장도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선수시절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차이가 나서 놀랐다. 하필이면 그 달은 대한항공 직원들의 월급봉투가 가장 가벼운 달이기는 했다. 그보다 먼저 은퇴하고 자리잡은 대한항공 출신 선배들은 신영수에게 “살만큼 충분하게 나온다. 걱정하지마라”고 조언했다.

7월 1일 구단사무실에 양복을 입고 정식으로 출근하기 전에 그는 엑셀 등 컴퓨터 프로그램을 스스로 공부했다. 그 덕분에 기본적인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엑셀과 문서작성을 한다. 물론 그보다 오래 직장생활을 경험한 프런트 직원에 비하면 스피드도 떨어지고 보고문서 내용도 어색한 부분이 많은 것을 잘 안다. 적응하려고 하지만 아직은 회사생활이 여전히 낯설다. 사무실에 전화가 오면 우선 긴장부터 한다.

어떻게 전화응대를 해야 하는지, 다른 부서로 온 전화를 돌려받는 것도 모른다. 나이 36살에 사회 초년생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새삼 느낀다. 그동안 선수단 버스만 타고 생활해온 터라 고등학생이 된 이후 아직 서울에서 버스를 타본 경험도 없다. 아내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것도 서울에서 버스를 타는 법이었다. 아내는 간혹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회사에서 초짜 직원을 늦도록 데리고 다니는 것도 배려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잘 배우고 감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디자이너인 아내는 신영수 보다 직장인의 애환을 먼저 경험해왔고 그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남편의 변신과 선택을 응원하고 있다.

신영수(맨 오른쪽).


● 대한항공 리틀점보스와 신영수 총감독의 비전

큰 덩치 덕분에 11살에 배구를 시작했던 신영수 과장은 여전히 배구와 함께한다. 선수는 아니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맡은 일이 배구 꿈나무를 육성하는 일이다. 대한항공은 최근 야심찬 일을 시작했다. 인천지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배구 꿈나무 교실을 열었다. 150여명의 초등학생이 학년별로 가입해 매주 토요일 인하대 체육관에서 배구를 배운다. 신영수 과장은 꿈나무 교실(대한항공 리틀점보스클럽)의 총감독으로서 어린이들이 배구를 즐겁게 배우고 이를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게 하는 사회공헌 활동의 큰 방향을 잡는 역할이다.

다행히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았다. 아이들이 너무나 즐거워하고 다음 시간을 기다린다는 소문이 즉시 퍼졌다. “우리 아이도 참가 시켜달라”는 많은 요청이 밀려들 정도다. 신영수 총 감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짜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주말을 즐기고 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한항공이 이처럼 유소년배구 사업에 많은 돈과 고급인력을 투자한 것은 KOVO 총재사로서의 책임과 조원태 총재가 취임식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긴 호흡의 투자를 통해 지역 어린이들이 배구를 자주 접하고 이를 통해 배구와 더욱 가까워지고 간혹 운동신경 좋은 아이가 배구 유망주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시작했다.

신영수 총 감독은 유튜브를 보며 다양한 지도방식과 도구를 이용한 훈련 노하우를 찾아낸 뒤 아이들에게 배구기술을 가르친다. 주말마다 현장지도자들과 함께 등급별로 다양한 배구교실에 참가하고 쉴 때는 학부모들과의 소통을 통해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SNS에 개설한 리틀점보스 모임방에는 신영수 총감독이 학부모를 위해 자주 글도 올린다. 아이들이 지금 어떻게 교육을 받고 훈련의 목적이 무엇인지 등을 알린다. 반대로 학부모들도 원하는 사항을 자유롭게 올린다. 이런 상호소통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배구를 더 즐기고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도록 만들고 있다.

신영수 과장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던 박진성 사무국장은 “배구교실이 성공하면 인천 전체로 확대시키고 참가 선수들의 연령대도 다양화시킬 생각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의 균일화와 성공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정착되면 이 것을 바탕으로 여러 곳으로 전파시킬 생각이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렇게 되면 은퇴한 많은 프로배구 선수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도 생긴다. 이를 위해서는 신영수 총감독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계속 지켜보는데 잘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신영수 과장은 훗날 우리 배구역사가 기억할 중요한 변화의 시발점에 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프로팀이나 대학에서 지도자를 한다면 여러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남겠지만 유소년은 내가 최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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