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그라운드 밖의 전쟁…‘예매 혈투’ 체험기

입력 2018-10-2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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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팅.’

‘피’와 ‘티켓팅’의 합성어로 티켓을 구하기가 그야말로 피 튀기게 힘들다는 의미다. KBO리그 포스트시즌(PS)이 딱 그렇다. 수년 전부터 프로야구 가을잔치를 망치던 암표상들은 올해도 KIA 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한화 이글스와 넥센의 준플레이오프(준PO)까지 기승을 부렸다. 이들이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탓에 일반 팬들의 예매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과연 PS 예매 과정이 얼마나 힘들기에 피나는 노력까지 필요한지, 암표상의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직접 그 현장에 뛰어들어봤다.

최익래 기자가 밤잠을 설치며 ‘취켓팅(취소표+티켓팅)’을 통해극적으로 구입한 준플레이오프 4차전 티켓. 중간에 기자 이름이 적혀 있다. KBO리그 포스트시즌 표 구하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고척|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 금손, ‘이선좌’에 가로막히다

기자는 평소 ‘금손’을 자랑한다. 최근 진행된 신화, H.O.T., 아이유 등 숱한 인기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매 역시 가뿐히 성공한 만큼 자신감이 가득했다.

예매 대행사 ‘인터파크티켓’의 서버시간까지 확인하며 지난 17일 오후 2시 정각에 준PO 1차전 예매를 시도했다. 하지만 ‘접속인원이 많아 예매가 지연되고 있다’는 문구가 떴다. 이럴 때를 대비해 휴대전화로도 예매를 시도해봤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0분여의 씨름 끝에 간신히 예매창에 접속했지만 외야석 몇 자리를 제외하면 이미 매진이었다.

‘누구는 접속도 못하고 있는데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예매에 성공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1시간 뒤 2차전, 다시 1시간 뒤 5차전 예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튿날 열린 3~4차전 예매에도 실패했다. 간혹 한두 자리가 풀려도 클릭하면 ‘이미 선점된 좌석입니다’라는 창이 떴다. 팬들 사이 ‘이·선·좌의 저주’라고 불리는 장면이다.

예매 외길 ‘짬’이 몇 년인데 포기할 수 없었다. 이틀 뒤 새벽에 풀리는 취소표를 노렸다. 팬들 사이에서는 ‘취켓팅(취소표+티켓팅)’이라고 불리는 단계로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임했다. 20일 새벽 2시에 모바일 예매를 시도했고 마침내 성공해냈다. 고척에서 열린 준PO 4차전 다이아몬드클럽 좌석이었다. 다이아몬드클럽은 한 자리에 10만5000원에 달하는 최고급 프리미엄 구역이다. 고급 식사까지 제공되기 때문에 조용히 경기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이 선호한다.

워낙 고가인 탓에 재판매가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취재를 위한 예매였으니 정가보다 1만원 저렴한 9만5000원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웃돈의 시대’를 역행한 선택이었다. 중고카페에 글을 올리고 3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와 문자가 쇄도했다.

기자에게 티켓을 양도받은 한화 팬 조윤아(26)씨. 정은원의 팬을 자처하는 그는 “암표상들이 정가의 4~5배를 요구한다. 분통이 터진다.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격분했다. 고척|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 암표, 정가의 2~3배는 우습다

가장 먼저 연락한 구매 희망자에게 답을 했다. 기자임을 밝히고 경기 전 만나 티켓을 전달한 뒤 인터뷰가 가능한지 물었다. 선뜻 알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이들에게는 정중히 ‘이미 양도했다’고 답했지만 ‘5만원 정도 웃돈을 줄 테니 나에게 팔라’는 이들까지 있었다. 잠시 딴 생각을 했지만,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대전에서 2패를 당한 한화는 3차전 승리로 시리즈를 연장시켰다. 4차전이 열린 23일, 경기 시작에 앞서 구매 희망자와 만났다. 한화 팬 조윤아(26) 씨는 “3차전도 고척에 왔었는데 암표상들이 살벌했다. 다이아몬클럽 좌석은 정가의 5배인 50만 원을 요구했다. 아무리 한화가 좋아도 한 경기에 50만 원을 쓰기는 힘들다”며 “팬들끼리의 경쟁도 치열한데 암표상은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화가 나고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팬으로 위장한 채 암표상과 접선을 시도했다. 기자는 매번 ‘도를 아십니까’에 시달릴 만큼 만만하게 생겼고, 이번에도 암표상의 먹잇감이 됐다. 한 암표상은 “한화 응원석 두 장을 20만 원에 팔겠다. 특별히 깎아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블루석의 정가는 한 장 당 4만원. 정가의 2.5배로 판매하면서 생색을 내는 이들이 괘씸했다. 서너 명씩 짝지은 경찰이 제복을 입은 채 돌아다녀도 이들은 굴하지 않고 판매를 강행했다. 경찰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준PO 티켓은 17일과 18일 오픈됐다. 하지만 예매 오픈 10분이 지나도 하염없이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파크티켓 관계자는 “서버를 증설해도 같은 현상은 반복될 것”이라며 손 쓸 수 없다고 밝혔다.


● KBO·인터파크티켓 “방법이 없다”

예매와 양도를 마치고 느낀 점을 PS 예매 주관 대행사 ‘인터파크티켓’ 관계자에게 물었다. 먼저 접속 자체를 막아버린 서버의 증설 계획이 궁금했다. 관계자는 “가령 3만 석을 두고 20만 명이 경쟁한다고 치자. 그럼 17만 명은 접속하지 못한다. 서버를 아무리 늘려도 예매 대기로 지연되는 이들은 생긴다”고 일축했다.

일부 연예 기획사는 콘서트에서 암표의 정황이 확보된다면 공연 당일 그 자리를 찾아간다. 대행사에 예매자 정보를 받은 뒤 실제 입장한 이의 신분증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암표 여부를 파악한다. 하지만 암표임을 확인해도 쫓아낼 법적 근거는 없다.

암표상이 아무리 몇 배 비싼 암표를 판매하더라도 대행사 인터파크티켓과 ‘기획사’ KBO는 손 쓸 방법이 없다. 설령 경찰들이 암표상을 적발하더라도 10만원 남짓의 벌금이 끝이다. 서너 명에게만 티켓을 팔아도 그 이상의 수익을 얻으니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KBO와 인터파크티켓은 “현 시점에서는 팬들이 암표를 구매하지 않는 방법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제 팬들 사이에서도 ‘암표는 사지 말자’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절실한 팬들은 결국 암표에 손을 뻗는다. 한 명이라도 구매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처벌의 강화가 시급하다. 암표 적발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적극적으로 검거를 시도해야 한다. 단순히 경기장 안팎이 문제가 아니다. 중고카페 등 온라인부터 적발해야 한다. 암표상들은 이미 큰 조직을 형성해 큰 규모로 움직인다. 팬들의 야구 사랑을 이용한 불법적 돈벌이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 팬들은 ‘호구’가 아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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