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이바나 교체-듀크 영입, 도로공사의 007 작전

입력 2018-11-1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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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나. 스포츠동아DB

10월 29일 GS칼텍스와의 원정경기 뒤였다. 디펜딩 챔피언 도로공사는 0-3 완패를 당했다. 일주일 전 IBK기업은행과의 시즌 개막전에서 3-2 역전승을 거뒀지만, 이후 2연패. 문제는 외국인선수 이바나였다. 3경기 동안 14득점(공격성공률 28.21%)~19득점(35.42%)~4득점(9.09%)을 기록했다. 이바나는 지난 시즌처럼 공을 힘차게 때리지 못했다. 김종민 감독은 이바나와 긴급면담을 했다. 그는 “어깨가 아파서 공을 제대로 때리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감독이 내심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 이바나 교체과정의 숨겨진 이야기들

사실 지난 시즌 막판부터 이바나의 어깨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래서 김 감독은 이번 시즌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앞두고 “어깨보강운동을 많이 해오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김 감독은 내심 이바나의 어깨가 의심스러워 다른 외국인선수를 선택할 것도 고려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최우수선수(MVP)이자 팀에 사상 첫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안긴 선수를 쉽게 내치기 어려웠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쉽게 끊지 않는 팀 문화도 그 선택을 막았다. 혹시나 이바나가 다른 팀에 가서 잘했을 경우 불어 닥칠 후폭풍도 두려웠다. 그래서 함께했지만 준비과정 때부터 불안했다.

준비과정이 불충분했던 이바나는 훈련 때도 컨디션이 예전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시즌 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어깨에 탈마저 났다. 참고 기다렸던 코칭스태프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대체 외국인선수를 물색했다.

도로공사 듀크. 스포츠동아DB


● 시간과의 전쟁이 된 대체 외국인선수 결정과정

마침 다른 팀에서도 새 외국인선수를 찾는다는 소문이 들렸다. 박정아가 이바나의 몫까지 잘 버티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해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토종선수들의 사기를 위해서도 한시바삐 누군가를 데려와야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외국인선수 교체를 위해 구단의 내부보고와 결재과정이 필요했다. 선수교체 최종승인이 난 것은 구단주의 국정감사를 마친 3일이었다.

시즌 도중인 점을 고려해 V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를 대상으로 검토했다. GS칼텍스에서 뛰었던 듀크가 떠올랐다. 빠른 플레이를 좋아하는 김 감독과 세터 이효희의 낮고 빠른 연결과도 잘 어울린다는 판단이 섰다. 즉시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했다. 도로공사가 흥국생명에 2-3으로 져 1라운드를 2승3패로 마친 4일 밤 태국 촌부리 구단에서 뛰던 듀크로부터 이적이 가능하다는 답장이 왔다. 듀크가 태국리그에서 시즌 2번째 경기를 치르고 나서 연락해온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소속구단과의 협상.

실무자가 5일 태국으로 날아갔다. 임대료를 놓고 힘든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2박3일간의 협상 끝에 7일 듀크의 이적계약을 마쳤다. 촌부리는 협상과정에서 한 가지 요구를 했다. 11일 라이벌 팀과의 중요한 경기를 마친 뒤 듀크를 풀어주겠다고 했다. 도로공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듀크 영입 공식발표를 11일 이후로 미뤘던 이유다.

이바나. 스포츠동아DB


● 도로공사의 마지막 선물과 이바나의 선택


듀크와의 영입협상을 마쳤다는 연락을 받은 8일 김 감독은 이바나를 불렀다. 듀크가 올 때까지 선수들과 함께 지내던 이바나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고 했다. “외국인계약을 담당하는 실무자가 며칠째 보이지 않아 짐작은 했다”고 나중에 통역에게 털어놓았다. 김 감독은 팀 사정을 설명하고 그동안 헌신해온 이바나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구단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제주도는 평소 이바나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다. 구단이 그동안 열심히 해준 선수에게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었지만, 이바나는 즉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섭섭한 마음도 있었을 테고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9일 남편과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만나면 헤어짐도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스포츠에선 일상적이지만, 이별은 항상 슬프다.

김천 이씨 이바나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김 감독은 “어디에서건 좋은 선수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도로공사가 내 선수생활의 마지막 구단이 될 것”이라던 이바나는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선택할 가능성도 크다.

한편 새 도로공사선수가 된 듀크는 11일 태국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프랑스로 돌아갔다. 도로공사의 취업비자서류가 도착하기를 기다린 뒤 모든 수속을 마치고 한국으로 온다. 행정절차가 빨리 마무리되면 듀크의 V리그 컴백경기는 17일 IBK기업은행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러기에는 시간이 아주 촉박하다. 결과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지만 이제 도로공사는 듀크에게 시즌의 운명을 걸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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