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①] 김재원 “데뷔 후 첫 악역, ‘쓰레기’ 소리 듣고 싶었어요”

입력 2019-02-06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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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이 달라졌다. 부드러운 미소에 온화한 표정으로 세상 순둥한 이미지를 자랑한 그가 화려한 문신부터 살기 가득한 표정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파격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그는 최근 종영한 OCN 수목 오리지널 ‘신의 퀴즈:리부트’에서 홍콩 구룡 최대 조폭 조직의 넘버2이자 살기와 광기로 가득한 ‘브레인 또라이’ 현상필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데뷔 후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김재원은 현상필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 연기자로서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촬영 중에는 댓글을 보지 않아요. 시청자 반응에 대해 신경쓰면 감정이 쏠리는 느낌이더라고요. 드라마 쫑파티가 끝나고 나서야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호평이 많아 감사했죠. 기분 좋게 마무리했어요.”

지난 2001년 방송된 SBS 시트콤 ‘허니허니’로 데뷔한 김재원은 어느덧 19년차의 베테랑 배우가 됐다. 그동안 수십 편의 드라마에 출연한 그도 파격 변신에 설렘보단 걱정이 먼저 앞서진 않았을까.

“데뷔 후 줄곧 선한 역할만 했어요. 매 작품마다 사랑받는 역할에 갇혀 있었죠.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칭찬 안에 갇혀 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는 한 번쯤 다 깨부숴보고 싶었어요. 시작 전에 ‘내 마음대로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죠. 내 안에 가둬둔 ‘악(惡)’을 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사실 김재원을 떠올리면 악랄함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동안 어느 누가 김재원이 악역을 소화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또한 자신이 “악을 추구하는 배우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성장기에 선함이 정서 발달에 영향을 받잖아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인생을 배우기도 하고요. 이 때문에 악을 연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어린 친구들도 선과 악에 대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사가 있는 작품이라면 답답함을 해소하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악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김재원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 변신만큼 주목받은 것이 있다. 바로 헤어스타일이다. 어떠한 스타일을 해도 선해 보이는 탓에 고민이 많았던 그는 모히칸 스타일로 옆머리 삭발하는 과감함을 보여줬다.

“멋있어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타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오히려 좋았어요. 사실 현상필 역을 연기하면서 ‘쓰레기’라는 말을 듣고 싶었죠. ‘겉멋 부렸네’라는 평이 아닌 ‘저 친구 쓰레기네’라는 반응이요. 바로 전작에서 너무나도 착한 역할을 연기했는데, 이번에 머리스타일 반응부터 확 바뀌니까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데뷔 후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부터 우수상, 최우수상까지 연기자로서 탄탄대로 걸어온 김재원. 심지어 군 제대 후에는 복귀작인 MBC ‘내 마음이 들리니’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그해 MBC 드라마대상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최근 몇 년간 공황장애를 앓을 만큼 힘든 시기를 겪었다는 이야기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대 후 2011년부터 3~4년간 연말 시상식에서 매년 상을 탔어요. 그러다보니 내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줬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중 ‘리얼스토리 눈’ MC를 4년간 하면서 목소리를 가지고 연기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누굴 위해서 사는 삶인지도 헷갈렸어요. 그때부터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힘들었죠. 촬영 때 상대배우와 이야기를 못하고 대본만 볼 정도였으니까요.”

다행히 김재원은 약을 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공황장애를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드러내고 양해를 구한 후 행동하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약을 통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면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고 연기도 멍해요. 좋은 치료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죠. 정서적으로 온 병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낫게 하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자신의 아픔을 당당하게 고백하면서도 환하게 웃는 그에게서 19년째 따라붙는 수식어가 떠올랐다. 바로 ‘살인미소’와 ‘미소천사’. 지금의 김재원을 있게한 애칭이기도 하지만, 데뷔 후부터 한결같이 따라다니는 수식어를 지우고 싶진 않을까.

“배우가 하나의 애칭을 갖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배우로서 호흡에 대해 연구하다보니 가장 좋은 호흡은 웃는 호흡이더라고요. 웃는 게 몸에 컨디션을 다 끌어올리고 모든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 같아요. ‘살인미소’,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애칭이랍니다.”

탄탄하고 화려한 필로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김재원. 내년이면 연기 20년차인 그는 어떠한 배우로 남고 싶을까.

“어릴 때 최고의 전성기를 겪고 보니 내려갈 곳 밖에 없더라고요. 그 안에서 굉장한 불안감이 생겼죠. 그런데 올라갈 여지가 남아있으면 일이 훨씬 더 재밌더라고요. 인기로 정점을 찍고 이슈몰이도 해봤지만 스타가 되기 보다는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계속해서 나와도 질리지 않는 그런 배우요.”

동아닷컴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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