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해 엄마] 엄마와 엄마에 대한 기억, 그리고 밥상

입력 2019-08-03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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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조이컬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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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사랑해 엄마’,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 조혜련의 ‘처연함’과 정애연의 ‘애틋함’
- ‘마마씬’과 ‘밥상씬’의 감동은 잊을 수 없어

한 작품을 이틀 연속 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다.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사랑해 엄마(원작/연출 윤진하)’를 이틀에 걸쳐, 다른 캐스팅으로 관극하였다.

‘그러려니’했던 이야기에 ‘그러려니’한 눈물을 흘리게 되는 연극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외면하고 말았던 작품인데, 유니플렉스로 무대를 옮겨 앙코르 막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사랑해 엄마’라는 우주의 중심은 당연히 ‘엄마’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서는 개그우먼으로 훨씬 더 친숙한 배우 조혜련과 드라마, 영화, CF에서 보아온 정애연이 엄마 역을 맡고 있다.

사진제공 | 조이컬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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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당연히, 조혜련과 정애연의 ‘엄마’는 달랐다.
분명 같은 대본을 들고, 같은 공간에서 연습했을 테지만 두 사람의 ‘엄마’는 한 뿌리에서 자라난 감자처럼 크기도, 생김새도, 맛도 달랐다.

두 사람의 ‘엄마’가 보여준 눈물의 질감은 많이 달랐다.
조혜련의 ‘엄마’가 처연했다면, 정애연은 애틋했다. 더 이상의 표현은 찾지 못하겠다.

누구나 엄마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만 그 기억과 실제 엄마의 사이에는 얼마간의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 세상에 없는 엄마라면 그 공간은 더욱 크고 멀어진다.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엄마의 기억과 실제로 현실에 존재했던 엄마 사이에 얼마간의 거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엄마가 남겨놓은(혹은 자식과 시간이 어느 정도 만들어낸) 이미지를 평생 쥐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기억이 가진 몇 안 되는 선물 같은 기능일 테니까.

사진제공 | 조이컬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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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가 하면, 두 ‘엄마’에게서 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조혜련의 ‘엄마’가 등이 펴질 정도로 선명하게 묘사된 현실 속의 엄마라면, 정애연의 ‘엄마’는 분명 우리 기억 속의 혹은 기억하고픈 ‘엄마’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현실 속의 엄마와 기억 속의 엄마 사이의 거리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의 크기와 어느 정도 비례하지는 않을까.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에둘러 전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랑해”를 불러내는 방법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두 장면이 무척 좋았다.
억척스러운 삶을 참 성실하게도 살았던 한 여자의 일생을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를 추임새 삼아 짧은 시간, 한 장면에 담아낸 연출이 참신했다. 이 한 장면을 위해 이 연극은 1시간 이상 억척스럽게 달려왔을 것이다. 후에 알았지만, 배우들은 이 장면을 ‘마마 씬’이라 부르고 있었다.

또 하나. 아들과 죽음을 앞둔 엄마 그리고 아빠의 혼령이 함께 밥을 먹고, 밥상을 물리는 ‘밥상 씬’은 두 번을 보아도 명장면이었다. 밥상 장면은 이번 앙코르 공연을 위해 추가된 장면이라고 하는데, 죽어가는 엄마 앞에서 아들 철동이 경험하는 일종의 환상 신이다.

아빠는 철동이 어려서 세상을 떠났기에 실제로 이렇게 세 사람이 오순도순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엄마와 곧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들, 그리고 이제 다른 세상에서 엄마와 재회하게 될 아빠를 이어주는 도구로 작가는 ‘밥상’을 선택했다.

사진제공 | 조이컬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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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씬’은 몇 가지 함축적이고 중의적인 의미를 보여주었는데 모두 ‘죽음’과 연관된 것이었다. 죽음을 앞둔 예수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밥을 먹는 데에 할애했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이다.
우리나라 역시 밥상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밥이 곧 삶이요 생명이다. 그래서 “밥숟가락 놓는다”라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제 그만 밥상 물릴까”하는 남편의 말에 “네에”하고 환하게 웃던 엄마의 표정연기가 아무래도 지워지지 않는다.

가수, MC로 익숙한 류필립(철동 역)과 김경란(선영 역)을 무대에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철동과 선영의 친구이자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백수 ‘허풍’ 역의 손진영은 ‘이모·할매’ 역의 박슬기와 함께 이 작품이 가진 완벽한 다섯 가지 맛에 감칠감칠한 조미료를 뿌려준다.

‘사랑해 엄마’는 아름답고, 선한 연극이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뚜렷하고 울림이 크다. 그 커다란 영향력의 선함이 아주 멀리까지 흘러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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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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